[여의도포럼] 노동 복지 교육 혁신과 개혁의 기술

2022. 6. 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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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새 정부 110대 국정과제나 대통령 취임사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그저 그랬다. 새 대통령의 색깔을 드러내는 간판 정책이나 업적으로 삼을만한 대표 브랜드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는 30여년의 세계화 질서가 급속 재편되고 안으로는 잠재성장률이 추세적 하락을 거듭하며 2% 선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새 정부가 ‘개혁을 통한 도약’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면 5년 내내 저성장과 고용 위기, 양극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교육과 노동, 연금개혁을 강조하며 한국 경제의 한계를 개혁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미뤄졌던 사회 분야 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올리고 지속가능한 복지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 규범, 기술 진보에 맞는 교육을 주요 목표로 설정한 것 등은 모두 적절한 선택이다. 문제는 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어떻게’가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시정연설에서는 1940년대 영국 전시 내각의 연정과 협치를 예로 들었지만 우리 정치 현실에선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다만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하는 개혁 방식이 80년대 영국의 노동개혁처럼 정면 돌파보다 2000년대 초 독일의 하르츠 개혁처럼 초당적 협력과 타협의 길에 가깝다는 점이다. 여소야대라는 국회 사정도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개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여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선택도 없다.

성공 사례로 내세우긴 어렵지만 우리도 세계화 개혁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 시점에선 개혁의 콘텐츠보다 개혁의 기술(art of reform) 측면에서 많은 참고가 된다. 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선언은 예상을 뛰어넘는 대담한 구상이었고 호주 시드니 방문 중 발표라는 형식을 통해 극적 효과를 더했다. 곧이어 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관합동 세계화추진위원회가 개혁의 사령탑으로 들어섰다. 김영삼정부는 95년 교육개혁 선언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을 거쳐 96년 총선 승리를 계기로 노사관계 분야 등에서 개혁의 강도를 한층 높여 나갔다. 개혁 밑그림은 청와대에 새로 설치된 정책기획수석실이 그렸다. 고인이 된 박세일 교수와 윤 대통령의 취임사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이각범 교수는 정책기획수석 자리를 주고받으며 교육과 노동, 복지개혁뿐 아니라 사법과 공정거래 등 경제사회정책 전반을 세계화 패러다임으로 쇄신하고자 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많은 미완의 과제가 김대중정부로 넘겨졌다. 그러나 지난 30년 한국 경제가 제2의 도약기를 맞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감한 세계화 개혁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탈세계화 시대의 또 다른 30년을 이끌어갈 새 경제 패러다임을 세우고 노동과 교육, 복지 시스템 혁신에 정치적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지방선거와 매일매일의 여론 동향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고를 때 개혁 의지가 주요 선택 기준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대통령비서실이나 내각은 거시경제의 불확실성과 급변하는 신경제안보질서에 대응하기 바쁘고 총리실은 규제 혁신에 총력을 쏟고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시정연설에서 밝힌 국정 개혁의 철학과 방향을 구체화할 설계도라도 준비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교육과 노동, 복지개혁은 각 부처가 알아서 추진할 가벼운 과제가 아니다. 성장동력 회복과 좋은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라는 관점에서 체계적 개혁 패키지를 짜고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이익집단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할 지난한 과제다.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개혁의 동력을 모으려면 개혁의 사령탑부터 정해야 한다. 여기서 전문가를 모으고 어젠다 선별과 추진 전략의 큰 줄기를 잡아야 한다. 별도 위원회 설치 없이 기존의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를 활용할 수도 있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중심이 돼 정책기획위원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공론화를 통해 개혁의 초기 모멘텀을 끌어올릴 수 있다. 개혁 과제가 구체화되면 각 위원회와 해당 부처가 이해관계자들과 대화와 타협에 나서면 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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