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회사어도 외국어다

2022. 6. 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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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형 국민대 교수·국민인재개발원장

“대표님은 직원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만 연속으로 2시간 이야기합니다. 긴 시간 집중해서 듣기도 어렵고, 말하는 내용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잘 파악해서 업무에 반영하여 성공으로 연결하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런 경우 상사가 한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중간 컨펌을 자주 받는 것이 좋아요. 컨펌받을 때는 질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에 착수하기 전에 시각자료와 레퍼런스를 활용해 상사의 지시를 구현한 것을 보여드립니다.”

「 업무지시가 명확해야 성과도 커
이유·맥락 등 빼면 낯선 외국어
‘일단 해봐’‘다시 해와’는 피해야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을 위한 커리어 콘텐트 사이트 퍼블리의 인기 보고서에 담겨 있는 Q&A의 일부다. 보고서의 제목은 ‘개떡도 찰떡같이! 4주 만에 회사어 완전정복하기!’ 콘텐트 기획·제작 일을 하는 박민선씨가 ‘회사어도 외국어다’라는 주장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론편·실전편을 제시한다. 박씨는 밀레니얼 직장인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비슷하게 회사어도 ‘듣고 이해하기’ ‘문법 정리하기’ ‘말하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배의 말을 잘 듣는 방법, 기록하는 요령, 이해한 내용을 나의 언어로 체계적으로 말하는 방법, 바쁘고 귀찮아하는 상사도 귀 기울이게 하는 보고 도입부 만들기,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하기 등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박씨의 보고서 후기에는 ‘고맙다’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A통신기업은 사원들을 대상으로 ‘보고하는 방법’에 대해 시험 형식으로 교육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문제〉 다음과 같이 팀장이 얘기할 때 사원이 취해야 할 행동 중 가장 바른 것을 고르시오.

팀장: 저번에 보고했던 그 자료, 좀 더 구체화해서 내일 다시 보고해주세요.

①내 자료는 완벽하다. 수정하지 않고 재보고한다.

②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하는지 밤을 새우며 고민해서 수정한다.

③팀장님께 수정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묻고 방향성에 대해 팀장님과 의논한다.

④내 자료는 데이터가 부족한 듯하다. 뒷받침할 데이터를 빈틈없이 분비하기 위해 첨부를 20장 더 준비한다.

선배 세대는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냐고 속으로 불만을 가지겠지만 실제로 2030세대는 직장생활의 대화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회사어는 일상언어와는 아주 다르다. 선배 세대는 ‘알아서 눈치껏’ 배우며 조직생활에 적응했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부담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밀레니얼 세대는 대면 의사소통에 능숙하지 못하고, 더구나 눈치껏 배우는 것에 서툴다. 무엇보다 이유나 맥락을 알지 못한 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회사어의 목적은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구성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불완전할수록 비용은 늘어나고 성과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호한 표현과 이유와 맥락이 생략된 지시는 팀원의 시간을 낭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동기를 빼앗는다. 리더가 가장 피해야 할 회사어는 바로 ‘일단 해봐’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인 동시에 팀원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회사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연관어는 ‘다시 해와’이다. 일단 해보라고 할 때 대개 상사는 자신도 그 내용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니 팀원도 안갯속에서 헤매는 심정으로 일하게 되고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회사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상사들이 생략해서는 안 되는 내용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또한 팀원들이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최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매뉴얼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새로운 업무를 지시한다면 이유, 맥락, 레퍼런스,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가질 수는 없다. 일을 시키는 상사라고 해서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꾸미지 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실무를 맡게 될 팀원과의 대화를 통해 구체화하고 명료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아울러 팀원이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격의 없이 질문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개떡’은 팀원이 혼자 끙끙대고 고민해서 ‘찰떡’으로 만들 수 없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국민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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