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찰랑~ 황금빛 춤사위에 추억이 영근다

남호철 2022. 6. 1. 22: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충남 보령의 이색 풍경
충남 보령시 천북면 대림농장 폐목장의 보리밭.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과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빛 보리밭 사이에 허물어져 가는 옛 창고가 이색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충남의 대표 여행지로 꼽히는 ‘보령’ 하면 대천해수욕장이 떠오른다. 과거 해수욕장 물놀이로 이름을 날린 데다 머드축제에 집트렉, 스카이바이크 등 즐길거리가 더해지면서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이런 보령의 여행지도가 변하고 있다.

요즘 보령에서 떠오르는 곳은 천북면 일대다. 천북굴단지 위주로 알려졌던 지역에 누렇게 변해가는 청보리밭, 목장 동물들을 만나고 체험하는 우유창고, 거대한 공룡이 반기는 맨삽지 등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여행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공중 즐길거리인 집트렉과 스카이바이크.


천북면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낙농가 밀집 지역이다. 전부 목장·목초지라 해도 될 만큼 축산업이 발전한 고장이다. 소여물 용도로 재배한 보리밭은 여행지로도 인기를 끌었다. 대림농장의 ‘천북 폐목장 청보리밭’이 대표적이다.

이 보리밭은 올해 초 종영한 TV드라마 ‘그해 우리는’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초 촬영된 제8화에서 주인공 일행의 여행 장소로 나온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웅이와 연수의 빗속 키스신의 배경이다. 동화 같은 장면으로 인상을 남긴 만큼 드라마 방영 이후 청보리밭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보리밭과 중앙 하늘과 맞닿은 언덕 위의 허물어진 창고 건물은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컴퓨터 바탕화면 같다.

보리밭은 당초 사과 과수원이었다. 나무를 뽑아낸 뒤 소먹이용 초지를 조성한 지 4년 됐다. 보리밭 규모는 3만3000㎡(약 1만평). 6월로 접어들면서 청보리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푸른 물결이 황금물결로 바뀌고 있다. 한 줄기 바람에 찰랑이며 흔들리는 보리가 황금빛 춤사위를 펼친다. 누구나 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넉넉한 풍경이다.

올라가는 길은 3곳이다. 천북신흥교회 쪽 입구에는 붉은 꽃양귀비꽃이 강렬하다. 50m가량 완만한 경사를 따라 걸으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창고에 닿는다. 드라마 세트장 같은 창고는 슬레이트 지붕의 사과 저장고였다. 2003년 매미, 2010년 곤파스 등 태풍에 지붕이 날아간 뒤 비바람에 삭고 무너져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공중에서 보면 가운데 지붕 골조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텅 비어 있다.

창고 주변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보는 마을 풍경도 정겹다.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보리 밟지 마세요’라는 당부의 글이 담긴 현수막도 걸려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막무가내로 보리밭에 들어가면서 훼손된 보리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보리 재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번째다. 지난해엔 소먹이용 보리를 심어 일찍 수확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왔지만 수확이 끝난 뒤라서 헛걸음하는 여행객이 안타까워 올해는 늦게 수확해도 되는 식용 보리로 바꿨다. 오는 15일을 전후해 베어낸 뒤 타작할 예정이다.

이 보리밭 풍경은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 무료로 개방한 뒤 많은 사람이 찾아와 밟고 뜯고 구르면서 보리 훼손이 심할 뿐 아니라 협소한 주차공간 등으로 사고 우려가 있어서다. 보리밭 대신 초지로 활용될 계획이다.

창고에서 반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뒤돌아보면 보리에 가려진 채 교회 종탑만 우뚝한 풍경도 훌륭하다. 끝에서 보리밭 가장자리를 따라 주차된 곳으로 금세 갈 수 있다. 쉬엄쉬엄 사진 찍으며 둘러봐도 30분이면 넉넉하다.

우유갑 모양 건물이 독특한 ‘보령우유창고’.


보리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보령우유창고도 문전성시다. 2018년 초 오픈한 체험장 겸 카페로, 유기농 유제품 판매는 물론 유기농에 대한 저변 확대를 위해 체험서비스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우유를 재료로 만든 음료와 빵도 판매하며, 목장 견학, 유기농 치즈와 버터,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우유를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다. 우유갑 모양인 이곳의 앙증맞은 외관과 젖소들이 노니는 개화목장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여행객이 많다.

학성리 맨삽지 앞에 조성된 거대 공룡 조형물.


천북굴단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학성리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는 맨삽지가 있다. 113㎡의 면적에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산 것으로 보이는 공룡의 직경 20~30㎝ 발자국 13개가 나열된 형태로 2015년 처음 발견됐다. 해변에는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루양고사우루스와 프로박트로사우루스 공룡의 거대한 조형물이 서 있다. 뜬금없고 생뚱맞아 보이지만 당시 한반도 전역이 공룡 서식처였다는 자연사적 가치를 대변해준다.

옥마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보령 시내 일대. 멀리 해저터널로 연결된 원산도 쪽으로 해가 저물고 있다.


보령은 서해안에 위치한 만큼 일몰 명소가 여럿이다. 높은 곳에서 차분하게 해넘이를 보고 싶다면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찾아보자. 저녁노을에 붉게 물드는 해변과 무논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여행메모
천북신흥교회 옆 보리밭… 학성리 맨삽지 물때 맞춰야

보령 천북 폐목장 보리밭은 ‘천북신흥교회’를 찾아가면 쉽다. 이곳에 주차도 가능하다. 인근 한국농업경영인 천북면회 마당이나 도로변 등에 요령껏 주차해도 된다. 다만 도로에 차량통행이 많아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보리밭에서 보령우유창고 카페까지 직선거리는 1㎞ 정도. 차량으로 1~2분 걸린다. 주차비와 입장료 모두 무료다. 다만 반려견 동반 시 1000원을 내야 한다. 반려견을 가급적 데리고 들어오지 말아 달라는 정중한 표현인 듯하다. 조형물 등을 배경으로 사진 찍어도 음료 구매를 강권하지 않는다. 매장에서 음식물을 사서 마구간 형태로 꾸민 카페에서 즐긴다. 액자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창가 자리가 인기다.

학성리 맨삽지에 들어가려면 물때를 맞춰야 한다. 만조에는 길이 끊기지만 만조 전후 2~3시간 외에는 섬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섬에 가도 별다른 표지가 없어 공룡발자국 화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까지는 차량으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주변에 주차공간도 있다. 공사중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보령=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