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기수서 거품 덩어리로..스타트업 '심판의 시대'

류지민 2022. 6. 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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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우려 속 알짜 솎아내기 한창
수익성 낮은 벤처, 보릿고개 대비해야

호황을 구가하던 벤처 업계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내 벤처 기업 사이에서는 ‘단순히 투자를 받는 것보다 누구에게 투자를 받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돌았다. 풍부한 유동성에 투자받을 기회가 늘어나면서 벤처 기업이 VC(벤처캐피털)를 ‘골라잡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변동성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유동성을 옥죄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벤처 투자 열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최근 프롭테크 기업 집토스는 추가 유치에 실패하며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연매출 30억원에 누적 투자 유치 금액 90억원 수준인 집토스의 투자 실패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 충격을 줬다.

침체 분위기인 바이오 업계 사정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핫’한 아이템일 경우 임상 1상 이전이라도 1000억~2000억원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받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수익을 낼 모델이 없거나 투자금 회수 기간이 긴 기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위기다. VC가 깐깐하게 투자 심사를 하고 나서면서 밸류에이션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기업도 수두룩하다.

벤처 투자의 중간 회수 시장 역할을 하는 K-OTC도 쪼그라들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K-OTC 시장에서 거래된 비상장주식 누적 거래대금(5월 25일 기준)은 359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IPO(기업공개) 시장에서는 지난 1월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2월 대명에너지, 3월 보로노이가 증시 진입에 실패했다. 이어 5월 SK쉴더스, 원스토어, 태림페이퍼 등이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면서 IPO 계획을 수정하는 곳이 대거 나타났다. 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시리즈C~G, 프리IPO 등 스타트업의 후기 단계 투자도 덩달아 위축되는 분위기다.

▶깐깐해진 VC 투자 심사

▷수익성 갖춘 기업엔 돈 몰려

벤처 업계 분위기가 급변하자 제2의 ‘닷컴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인터넷 기반 신기술과 서비스를 내세운 기업들은 큰 관심을 모으면서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몸값이 폭등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실체가 없다는 것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거품은 빠르게 꺼졌고, 대부분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했다.

최근 벤처 업계 분위기가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닷컴 버블 당시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기술에 열광했다. 어떤 기업인지 몰라도 이름에 ‘인터넷’이나 ‘닷컴’이 포함돼 있으면 무작정 돈이 몰렸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벤처 업계에서는 바이오·메타버스·NFT 등 신기술을 활용한 분야가 각광받았다. 당장 매출이 없는 기업도 그럴듯한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기대감으로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여기에 풍부한 유동성이 더해지면서 몸값을 천정부지로 키웠다.

다만 과거 닷컴 버블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우선 닷컴 버블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벤처 투자가 주춤한 것이 그런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 스타트업의 기초 체력이 과거보다 탄탄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닷컴 버블 시기에는 제대로 된 기술력 없이 비전만으로 창업한 기업이 많았지만, 이제는 활용 가능한 IT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구현되고 있다.

무엇보다 스타트업 옥석을 가리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지난 20여년간 벤처 투자 시장이 성숙하면서 단계별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투자금이 유입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제대로 된 검증 과정 없이 막대한 돈을 투자받던 과거와 달리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투자가 대세가 된 만큼 한 번에 벤처 시장이 무너지는 일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스타트업 거품론’이 나오고 있는 요즘에도 성장성이 높은 유망 벤처에는 더 많은 돈이 몰리는 추세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는 지난 4월 2300억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가치 2조원 수준으로, 한샘과 현대리바트를 뛰어넘었다.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컴퍼니도 최근 기업가치 1조2000억원을 기준으로 5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여행사 1, 2위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당분간 ‘알짜 벤처’에 돈이 몰리는 투자 쏠림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IPO 시장에서 수익성이 높은 기업에만 수요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비슷하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벤처 기업의 경영 전략도 화려한 외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성장성과 함께 수익성을 투자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VC도 늘어나는 추세다.

VC 업계 관계자는 “성장 가능성만으로 수천억원 밸류에이션을 쉽게 부르던 호시절은 이제 끝난 분위기다. 자금의 여유가 있는 VC도 대부분 보수적인 관점으로 돌아서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업은 투자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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