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군인도 변절.. 마약과의 전쟁 실패한 이유
[이준목 기자]
세계 최강대국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에게는, 한편으로 '최대 마약 소비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도 달려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이웃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와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은 대표적인 '최대 마약 생산국'으로 꼽힌다. 마약은 오늘날까지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모두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5월 31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오늘날 미국을 잠식한 마약 문제와, 중남미에 득세한 마약 카르텔들은 어떻게 뿌리내리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를 조명했다. 라틴아메리카 현대사 전문가인 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강연을 맡았다.
▲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 tvN |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를 제외하고 미국인 사망원인 1위로 집계된 것이 약물중독이었다. 지난해 약물과다 사용으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는 10만 명으로 교통사고나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 숫자를 훌쩍 넘어선 수치였다.
그리고 이러한 마약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유통 경로의 중심에는 중남미 국가, 특히 멕시코와 콜롬비아가 있었다. 이 두 나라는 이른바 국제 마약계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며 마약밀매조직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여 국가의 치안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신비로운 자연을 품은 태양의 땅 멕시코는 어쩌다가 '마약의 제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멕시코 노래 '라쿠가라차'의 뜻은 바퀴벌레를 의미한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흥겨운 리듬과 달리 정작 라쿠가라차의 노래 가사는 '바퀴벌레가 이젠 걸을 수가 없네, 피울 마리화나가 다 떨어지고 없기 때문'이라는 듣다보면 섬뜩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세기 후반 일자리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곳곳으로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들에 의하여 전파된 양귀비와 마리화나가 멕시코 곳곳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또한 멕시코의 마약은 당시 느슨하게 국경을 접하고 있던 미국으로까지 흘러들어갔다. 1970년대부터 멕시코에서 미국을 대상으로 국제 마약 밀매업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유행하던 히피 문화-베트남 전쟁 참전군인들을 중심으로 마약 중독 현상이 심화되며 심각한 사회적-국가적 문제로까지 부상했다.
1971년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마약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 닉슨은 이미 1969년부터 멕시코의 국경을 봉쇄하고 멕시코인들의 이주를 제한하는 강경책을 추진했고, 1973년에는 마약범죄를 전담하는 DEA 마약단속국을 창설한다. DEA는 1976~1977년에는 멕시코군과 공조한 콘도르 작전을 통하여 마약 재배지를 소탕하는 데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약시장의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고, 1970~1980년대들어 미국에서는 코카인이라는 새로운 마약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원료가 되는 코카나무 잎의 재배지인 콜롬비아는 멕시코에 이어 마약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미국 코카인 시장의 80%를 독점한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마약왕'으로 악명을 떨쳤다.
당시 메데인 카르텔이 마약 생산과 유통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연간 40억 달러(현재 가치 약 5조 580억)에 이르렀고, 에스코바르는 마약 밀매로 억만장자가 된 최초의 인물로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가 1989년 발표한 세계 부호 7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포브스는 1993년에는 에스코바르의 재산을 90억 달러(11조 3000억)으로 추산했다.
에스코바르가 남긴 'Plata or plomo(은 또는 납)'이라는 표현은 그의 일처리 방식을 상징한다. 은은 돈, 납은 총을 의미한다. 뇌물을 받고 눈감아줄 것인지, 아니면 총알 세례를 받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뜻하는 말로 에스코바르가 실제로 누군가를 협박할 때 자주 썼던 말이라고. 에스코바라는 '시카리오'로 불리우는 청부살인업자들을 다수 고용했는데 한 시카리오는 인터뷰에서 "직접 죽인 사람만 250명, 살인을 도운 것은 3000명 정도"라고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막대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에스코바르는 범죄자임에도 1982년에는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까지 당선됐다. 지속된 내전으로 정부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못했던 메데인 지역에서 돈으로 인심을 얻으며 '가난한 이들의 로빈후드'로 불리기도 했다.
▲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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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이 콜롬비아에서 승승장구할 동안 미국의 마약문제는 점점 악화됐다 1981년 미국 타임지는 '미국을 대표하는 마약이 눈보라처럼 강타하여 사상자가 증가했다'는 표현으로 마약 확산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1980년대초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다시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을 발표한다. 레이건 정부 마약 정책의 특징은 군사화와 공급축소였다. 아예 마약 생산지에 군대를 동원하여 재배 단계부터 싹을 자르는 원천봉쇄 방식이었다. 영부인인 낸시 레이건도 동참하여 그녀가 발언한 "Just say no(그저 아니라고 말하세요)"는 미국의 마약 퇴치 캠페인을 상징하는 구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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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펠릭스의 동업자이던 라파엘 킨테로가 미국의 DEA 요원 카마레나를 납치하여 고문 끝에 살해한 것을 계기로, 미국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는데 개입할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카마레나를 영웅으로 추모하는 특별담화문을 발표했고 마약 카르텔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선언했다.
미국은 이 사건으로 멕시코 정부를 압박하며 미국 요원들이 멕시코내에서 무장 추적활동을 벌일수 있는 수사권을 획득했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마약 카르텔들을 대거 소탕하고 카마레나 살해범들도 모두 체포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1986년 마약 남용 금지법을 발표하며 마약 단속을 위해서는 당사국의 허가없이도 미국이 타국 영토에서 독자적인 수사권을 가질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멕시코 마약왕 펠릭스도 1989년 결국 체포되어 재심을 거쳐 총 77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펠릭스는 이미 체포되기 전에 자신의 카르텔 영역을 측근들에게 분할했고, 잔여 조직들은 이후로도 멕시코 곳곳에 분산되며 건재했다. 미국의 강력한 카르텔 소탕작전이 오히려 멕시코 전역으로 마약 카르텔이 확산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은 셈이다.
에스코바르 역시 위기가 찾아왔다. 에스코바르가 마약 밀매업자라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며 2년 만에 의원직에서 밀려나게 된다. 또한 1985년에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범죄인 인도조약으로 마약 밀매를 비롯한 중범죄자들의 미국 송환이 가능해졌다.
'피의 복수'에 돌입한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비리를 밝힌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 법무장관과 일간지 편집국장을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자신을 방해한 언론인-법조인-정치인들을 향하여 무차별 테러를 감행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약속한 대통령 후보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도 유세 중 에스코바르에 의하여 암살당했고, 정부측 정보원을 제거하기 위하여 100여 명의 승객이 탑승한 민간 항공기 테러까지 저질렀다.
암살당한 갈란의 계승자를 자처한 세사르 가비리아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마약문제 해결을 위하여 미국과의 공조에 나섰다.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에 동시에 쫓기게된 에스코바르는 협상에 나서서 정부의 채무 변제와 보복행위 중단을 조건으로 미국 송환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에스코바르는 자신이 만든 궁전같은 초호화교도소 '라 카테드랄'에서 무늬만 수감되었을뿐 여전히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미국은 에스코바르의 송환을 요구하며 계속해서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다. 위기감을 느낀 에스코바르는 결국 1년 만에 자신이 만든 교도소를 탈옥했고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는 끈질긴 추격 끝에 1993년 12월 은신처에서 에스코바르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며 결국 악명높은 마약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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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콜롬비와 달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오히려 펠릭스의 체포 이후 더욱 강성해졌다. 미국 수사기관의 지명수배 1순위로 꼽히는 호아킨 엘 차포 구스만은 시날로아 카르텔의 수장으로 새로운 마약왕으로 등장했다. 구스만은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의 집과 창고를 매수하며 비밀리에 지하터널을 만들고 마약을 운송했다. 또한 미국 대도시 곳곳에 거점을 만들고 마약 유통을 담당하는 전문인력을 육성했다.
1993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구스만과 경쟁관계였던 카르텔이 청부살인자를 고용하려 구스만을 제거하려다가 오인하여 멕시코 카톨릭의 대주교인 오캄포 추기경을 살해한 것. 카르텔의 세력다툼에 국민적 존경을 받던 추기경이 희생당한 비극적인 사건에 멕시코는 큰 충격에 빠졌다. 사건에 연루된 구스만은 과테말라에서 체포되어 20년형을 선고받았다.
1994년 미국-멕시코-캐나다간의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은 마약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 멕시코의 자유무역량이 급속히 증가하며 마약사업도 급성장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통과한다는 미국-멕시코 국경은 마약유통을 검문-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나프타의 부작용으로 멕시코 농업과 경제가 치명타를 입게되면서 생계가 어려워진 하층민, 미성년자까지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불법마약거래에 가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미국 역시 나프타로 인하여 더 많은 마약이 손쉽게 유입되고 마약 중독, 강도, 살인 등 각종 마약관련 범죄가 미국내에서 더욱 만연하는 대가를 치러야했다.
멕시코 내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멕시코 정부는 2007년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과 '메리다 협정'에 합의하며 3년간 안보협력을 위한 14억 달러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 자금은 대부분 마약 단속 프로그램 강화에 지원됐으며, 칼데론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하여 마약 카르텔들과 전면전을 펼쳤다.
하지만 5년간의 노력과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마약 전쟁'은 오히려 실패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잡혀간 거물들의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내부 싸움과 카르텔간의 경쟁은 더 악화됐다. 2006년 6개의 불과했던 멕시코 마약 범죄 관련 대형 카르텔은 2021년에는 오히려 16개로 증가했다. 6년간 멕시코에서 마약 척결 과정에서 살해당한 이들은 군인-경찰-민간인을 모두 합쳐 6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공권력의 부패와 무능도 마약과의 전쟁이 실패한 또다른 원인이었다. 멕시코에서 가장 잔인한 카르텔로 꼽히는 '로스 세타스'는 핵심구성원들이 바로 특수부대 출신으로 구성된 사실이 밝혀지며 큰 충격을 줬다. 멕시코 정부가 마약 근절을 위하여 육성한 군인들이 범죄자로 변절하면서 일개 범죄조직에서 이제는 막강한 전투력과 무장력까지 겸비한 준군사조직으로 성장한 것.
또한 멕시코 경찰은 연방경찰의 1/10에 해당하는 3200명이 부패혐의로 해고되고 465명이 임무수행 소홀로 면직되는 등, 마약 카르텔을 상대할 역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을 드러냈다.
마약과의 전쟁이 실패한 또다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생상된 마약의 최대 소비국으로서 사실상 마약 전쟁의 원인 제공자였다. 미국의 12살 이상 국민의 8.7%가 한 번 이상 마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보유한 강력한 무장력은, 대부분 미국에서 유입된 무기들 덕분이었다.
2011년 6월에 보도된 '불쌍한 낡은 멕시코'라는 만평에서는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마약을 사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총기를 수출하며 멕시코의 폭력사태에 기여하고 있다는 이중적 면모를 비판하고 있다. "불쌍한 멕시코여, 신과는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다"는 한 멕시코 정치인의 자조섞인 어록은 멕시코의 씁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2022년 1월 한 달 동안에만 멕시코 마약 카르텔 연관 범죄로 614명이 사망했다. 여전히 멕시코에서 마약 범죄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1980~1990년대부터 유행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여파로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치안 예산이 감소하며 공공 치안이 약화된 것도 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사설 경호업체가 경찰의 역할을 대신하여 '공공 안전의 외주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마약, 그리고 거대한 범죄 카르텔과의 전쟁으로 무고한 국민들이 고통받고있는 멕시코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무엇일까. 바로 국민의 삶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가 해야 할 진정한 역할'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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