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신드롬은 내려놓으세요"..미국 최악도시에서 20년째, 이 목사가 신학도들에게

박이삭 2022. 6. 1. 11: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0%흑인에 빈곤층 절반, 범죄율도 높지만
이태후 목사, "빈자의 이웃되라는 부르심에 순종할 뿐"
이태후 목사가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노스센트럴 지역에서 대학입학을 앞둔 동네 청소년 아야샤(왼쪽), 브라이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태후 목사 제공

2년 전 즈음인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 무릎에 목이 눌린 흑인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곳곳에서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태후(57) 목사가 머물고 있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노스센트럴 지역은 유독 조용했다.

주민 90% 이상이 흑인이고, 그 가운데 절반이 빈곤층이며, 미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동네 중 한 곳인데도 말이다. “그들이 모를 리 없지요. 하지만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급박한 제 이웃들에게는 시위가 사치스러웠는지도 몰라요.” 이 목사의 말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줌(Zoom)으로 만난 이 목사는 평온해 보였다. 그가 살고 있는 노스센트럴 지역은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 가운데 하나다. 이 목사는 2003년부터 동네 주민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먹고 사는 일부터, 위로와 격려와 기도로 주민들의 필요를 채워준다. 동네 아이들을 위해서는 여름 캠프를 열어주면서 섬기고 있다. 지난 2년여의 코로나 팬데믹은 또 다른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40년 만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면서 동네 식료품 배급 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최악의 조건을 지닌 동네를 사역지로 택했을까.
“선택이 아닌 순종이다. 20년 전, 어디서 사역해야 할지를 두고 반 년 이상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라’는 확신을 주셨는데, 그것이 없었다면 기쁨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곧바로 이 길에 들어설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포기가 필요하다. 주님이 확실한 답을 주셨을 때 그외의 것들, 이를테면 신변의 안전이나 경제적 안정 등을 포기할 수 있었다. 포기하지 못할 때 삶과 사역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이태후 목사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할 각종 물품들을 포장하고 있다. 이태후 목사 제공

이 목사가 사는 동네는 ‘식료품 사막(Food Desert)’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신선한 야채를 살 수 있는 수퍼마켓이 없고,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햄버거 닭튀김 감자튀김 정도만 판다. 주민들이 비만과 당뇨, 고혈압 등 여러 질환에 시달리는 이유다. 아이들도 소아비만·당뇨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빈곤과 함께 찾아오는 우울과 트라우마는 지역 주민들을 괴롭힌다. 아이들은 수시로 멸시와 냉대를 경험한다.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사역에 대한 무기력감이 밀려들진 않을까.
“이런 사역을 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메시아 신드롬’이다.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그런 열심과 절박함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직 주님 만이 이루실 수 있다’는 진리다. ‘위대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마라. 대신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이뤄가라’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이어 이 목사는 “(사역의 열매를 맺으려면) 10년은 푹 썩어야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다”면서 “같은 마음을 품고 사역하는 이들과 교제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려움과 좌절감, 답답함을 함께 나누고 해소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가난한 이웃들과 늘 함께하는 그의 눈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비칠까. 그는 “언론에 등장하는 교회는 전체 한국교회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교회들 중에서도 지역 사회의 필요를 채우려고 애쓰는 교회가 많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 같았다.

이태후 목사가 본보 인턴기자와 줌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이 목사는 현재 주민과 동네 아이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센터를 겸한 선교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특별한 사역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가장 보람된 일은 사람을 키운 일이고, 아쉬운 일도 사람을 잃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준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했다.

박이삭 인턴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