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의 문화예술톡] 페르디낭드 호들러의 '밤'
누구나 한밤중의 어둠을 마주하며 등이 서늘해지는 공포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는 순간일 수도 있고 근심과 불안으로 인한 불면의 순간에 우리의 자아가 심연으로 빠져드는 순간일 수도 있다.
이렇게 밤이 주는 불안과 공포의 순간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밤’이라는 그림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그림은 스위스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화가인 페르디낭드 호들러(Ferdinande Hodler, 1853~1918)가 1889년에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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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공포와 불안 그려낸 명작
삶과 죽음의 대비 생생히 포착
세상의 신비에 대한 예찬인가
」
희미한 빛이 남아 있는 한밤중에 장소를 알 수 없는 야외에서 남자와 여자 7명이 누워있다. 그중 6명은 곤히 잠을 자고 있고 가운데 있는 한 남자가 놀란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은 형상을 밀쳐내고 있다. 고대 신화를 묘사한 그림들에서처럼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건강한 근육질의 몸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육체에서 보이는 디테일이 매우 사실적이기도 하다. 검은 때가 끼고 주름이 진 손들과 발바닥 등은 곧바로 그림 속의 인물들이 신화가 아닌 현실 세계 속의 인물들임을 직감하게 한다.
호들러는 검은 선으로 인물들의 아웃라잇을 뚜렷하게 강조한 반면 배경의 묘사는 원근법을 최대한 제한하면서 신비로움과 사실적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보는 이들에게 강한 불편함을 안겨준다. 이는 어두운 무채색이 지배적이고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물체의 위협이 이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호들러는 이 그림을 1891년도 제네바 시립미술관 전시에 출품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평론가들과 대중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 결국 출품작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호들러는 대상을 추하게 본다” “선정적이다” 또는 “비도덕적이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미화된 신들과 인간의 몸이 아닌 적나라한 누드를 나타내는 호들러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가혹했고 부당했다.
그는 자비로 제네바의 한 장소를 빌려 이 그림을 전시했고 당시에 매우 큰 액수인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그림을 공개하였는데, 선정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호기심 많은 관람객으로 인해 전시는 성황을 이루었다. 호들러는 전시로 번 돈으로 이 그림을 파리로 가져가서 당시 파리에서 있었던 살롱전에 출품하였고, 이는 천재적인 조각가이고 인간의 육체를 아름다운 조각으로 만들어왔던 로댕과 당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화가인 퓌비 드 샤반느로부터 크나큰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당시 다양한 화풍의 미술이 꽃을 피웠던 프랑스 화단에서의 호들러의 성공은 자국인 스위스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1918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그리고 사후에도 그는 스위스 미술사에서 가장 칭송받는 작가로 남아 있다. 물론 그는 다양한 인물화와 풍경화 등을 남겼지만 유독 ‘밤’ 은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세로 116,가로 299㎝의 수평으로 긴 독특한 구도의 이 그림을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 시립미술관에서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일종의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밤’이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상징을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한 화가의 천재성 때문이기도 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볼 수 없는 미지와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이자 예언자로서 호들러가 지닌 예술가적 비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우리의 삶을 엄습하는 죽음은 이렇게 무섭고 기괴하고 온갖 힘을 내어 밀쳐내어도 피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오는 것일까? 사실 이 그림에는 어려서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호들러의 개인적 역사와 그가 평생 지니고 살았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직접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 속에 유일하게 깨어있는 화가의 모습은 죽음처럼 무섭게 자신의 무의식을 깨우고 잠든 이들이 알아낼 수 없는 세상의 신비와 삶의 숨겨진 이면을 찾아내고자 했던 한 예술가의 날카로운 의식에 대한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실존하는 인간의 찬란한 낮과 삶을 들여다보게 해주기도 한다.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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