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그 댓글에 '심쿵'하다
기사와 칼럼에 붙은 댓글에서 가르침을 받곤 한다.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 미디어가 대세가 되면서 더 잦아진 일이다. 댓글의 반응 속도와 커버리지는 기자의 취재력을 추월한다. 나도 모르게 “댓글이 스승”이라고 자주 말하게 된다.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시작하는 욕설과 비방이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땐 학창 시절 욕쟁이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래도 부족한 제자를 친히 살피고 가르쳐 주시는 게 어딘가.
독자들의 재기발랄한 압축과 비유는 천재시인 앞에 섰을 때의 좌절감을 준다. 나의 직업은 이래저래 매일 위협받고 있다.
후배 기자의 기획과 취재에 관여하고 기사를 윤문(潤文)하는 일(데스킹)을 하면서, 이젠 후배의 ‘스승들’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처음엔 ‘대리 출석’ 해주는 심정으로 댓글을 읽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도강(盜講)’의 보람이 크다.
그러다가 최근 한 댓글에 ‘심쿵(심장이 쿵 하고 설렘)’을 경험했다. 본문 기사는 MZ세대의 생각과 행동을 같은 세대의 기자가 밀착 취재하고 새로운 스타일로 보도하는 디지털 기획 ‘밀레니엄 실험실[밀실]’이었다. 지난주 주제는 명품을 대여해서 쓰는 2030. 명품백을 4만원에 빌리고 “샤넬 오픈런을 왜 하죠”라고 묻는 20대 여성, 친구 결혼식을 위해 핸드백을 빌리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특별한 하루를 위해 수백만원짜리를 사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500만원 들고 오픈런 했는데 원하는 물건을 못 샀다”며 소유가 아닌 대여의 효능감을 강조했다. 고객의 90%가 MZ 세대인 한 명품 렌털업체는 매출이 2년 새 6배 늘었다고 했다.
기사를 데스킹하면서 젊은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댓글이 걱정됐다. 당당·당돌한 젊은 영혼이 상처받을까 염려됐다. 역시나 “허영심에 찌들었다” “없는데 있는 척하는 게 한심하고 불쌍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당하게 빌리고 예쁘게 들면 돼”라는 소수 응원이 있었지만, 다른 세대 의견에 귀 기울여보자는 기획 취지에 부합하는 댓글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짤막한 댓글 하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젊음이 명품이다.”
머릿속에서 ‘댕’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MZ를 향한 염려와 배려가 동시에 느껴졌다. ‘젊음이라는 명품을 이미 갖췄는데 다른 치장이 왜 필요하니’라는 충고, ‘젊은 생각 또한 명품 아니겠니’라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그 젠틀한 메시지는 젊은 취재기자에게도 힘이 되었으리라. 이 칼럼은 ‘명품 댓글’에 다는 대댓글이자, 이름 모를 스승께 바치는 헌사임을 밝힌다.
김승현 사회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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