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년전 '각별한 지시'도 소용없었다..北 식량난 고통

정영교 2022. 5. 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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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강원도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해 벼 낟알을 살펴보는 모습.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내 식량부족 상황을 언급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식량 부족 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 규모가 2~3개월분 식량에 해당하는 약 86만t으로 추정된다고 31일 밝혔다. 최근 업데이트한 '월드 팩트북'에서 "상당수 북한 주민들이 낮은 수준의 식량 소비와 열약한 식품 섭취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하면서다.

CIA는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제약이 북한 주민들의 식량안보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켰다"며 "(식량) 부족분이 수입이나 식량 지원으로 적절하게 채워지지 못한다면 (북한의) 가정들은 혹독하게 어려운 시기를 격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무역 봉쇄 조치가 식량난을 가중하고 있다는 취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공개한 농업연구원 벼연구소 연구진들의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이와 관련,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지난해 6월 열린 노동당 8기 3차 전원회의에서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식량난을 고백했다. 최고지도자가 식량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직접 언급한 것은 그만큼 '먹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난 1년간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옥수수 위주에서 벼와 밀·보리 농사로의 전환, 선진영농기술과 과학적 물 관리 등을 언급하며 농업 부문의 발전을 강조했다.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8기 4차)에서는 닷새의 회의 기간 중 사흘을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촌 발전 문제 토론에 할애했다.

동시에 농업 담당 부처의 지위와 권한도 격상시켰다. 북한은 내각 부처인 농업성을 한 단계 상위 조직인 농업위원회로 격상시켜 먹는 문제 전반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맡겼다. 북한의 내각 기관 중 '위원회'는 국가계획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교육위원회 등이 있는데, 당국이 집중적으로 강조하거나 비중 있는 국가 전략을 담당하는 부처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최고존엄'의 이런 각별한 관심에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개선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CIA는 지난해에도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올해와 같은 86만t으로 추정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자영농에 준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없다면 농업 부문에 대한 김정은의 지시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월과 5월 사이 북한의 가뭄지수를 보여주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자료. '심각'을 나타내는 검붉은색 점을 북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진 NOAA

북한의 식량난을 더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위협은 '가뭄'이다. 미국의소리(VOA)는 이날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위성자료를 인용해 북한 전역의 가뭄 상태가 '심각'한 수준임을 의미하는 검붉은 색으로 표시됐다고 전했다. 검붉은 색 지역은 4월만 해도 중부 황해북도와 황해남도 일대에 그쳤으나, 현재는 북부 함경도까지 확대됐다는 게 VOA의 설명이다.

북한 기상수문국(한국의 기상청)도 이달 초 관영매체를 통해 북한 지역의 지난 4월 기온은 평년보다 2.3도 정도 높았고 강수량은 평년의 44% 정도에 그쳤다고 밝혔다. 가뭄으로 지난해 파종한 밀과 보리 등 농작물에 피해가 발생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는 곧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며 "최근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외부 도입량이 축소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게 (정부의)기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북한 내 취약계층의 식량 사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김정은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중국과 교역을 확대하는 방법이 있지만, 코로나19 방역과 직결되는 문제라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주민들의 희생을 감내하며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선진영농기술을 통해 자체 역량으로 식량 문제를 극복하려 할 것"이라며 "만약 불가피한 상황에 놓일 경우 미국의 영향을 받는 국제기구보다는 중국 측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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