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제 살 깎으며 러 때렸다..러 12조 돈줄, 원유 90% 금수

박형수 2022. 5. 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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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진통 끝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부분 금지하는 대(對)러 6차 제재안에 만장일치 합의했다. EU는 막판까지 제재안에 강력히 반대한 헝가리를 ‘예외’로 인정하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거론돼온 막강 제재 카드가 통과됐지만 이로 인한 에너지발(發) 물가 불안 우려도 커지게 됐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과 우르술라 폰데어 라이엔 EU집행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NYT "러에 가혹한 형벌, 유럽의 희생"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EU 정상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해상 수송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되 송유관을 통해 육로로 유입되는 원유만 허용하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전체 원유 수요의 27%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EU 회원국들은 이 중 3분의 2를 해상으로, 나머지를 송유관으로 공급받고 있다. 이를 통해 EU가 러시아에 지불하는 원유 대가는 매월 230억 달러(약 28조5000억 원)에 달해 개전 초기부터 EU의 러시아 원유 금수 조치는 가장 강력한 대러 제재 카드로 꼽혀왔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러시아가 전쟁 무기 비용을 대는 막대한 돈줄을 차단하겠다”며 “전쟁을 끝내도록 러시아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역시 EU가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90%까지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지금껏 러시아에 부과된 가장 가혹한 경제적 형벌이자, 유럽 국가의 가장 큰 희생”이라고 평가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EU가 하나임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EU 회원국 전체가 이번 제재안을 채택하면 러시아는 아시아 등 대체 수출처를 찾아 원유를 할인 판매해야 하는 데, 이에 따른 손실이 연간 최대 100억달러(약 12조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절충안은 6차 제재안에서 헝가리를 사실상 제외해준 조치다. 앞서 EU는 지난 4일 러시아 원유 금수를 골자로 한 제재안을 내놨지만, 헝가리의 반대에 부닥쳐 3주 넘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 EU는 회원국들에 향후 6개월에 걸쳐 원유 수입을, 내년 1월 초까지 정제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2024년 말, 체코는 2024년 6월까지 각각 제재 동참 시기를 유예하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친(親)러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줄곧 “헝가리의 원유 공급에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제재에 찬성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꺾지 않았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3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러보다 EU에 큰 피해, 단일대오 균열" 우려도


EU는 결국 드루즈바 송유관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며 헝가리를 달랬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폴란드·독일·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 등을 지난다. 이 가운데 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 3개국에 예외 조치가 적용된다. 독일·폴란드는 수혜를 거부하고 원유 금수조치를 원칙대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100% 완전한 원유 금수 조치를 기대했던 EU와 우크라이나엔 반쪽짜리 성과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FT에 따르면 러시아는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EU로 하루 최대 75만 배럴까지 원유 수출이 가능하다. 이 경우 EU로부터 한달에 20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를 벌 수 있게 된다.

헝가리를 지나는 드루즈바 송유관의 모습. 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제재의 부메랑을 유럽이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원자재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가드너는 “러시아의 수출은 올해 약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가 상승으로 손실은 완화될 수 있다”면서 “오히려 저렴한 러시아 원유를 포기하고 새로운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EU는 고유가에 따른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위축된 EU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이번달 물가상승률은 약 50년 만에 최고치인 7.9%로, 이미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이 거세다. 독일의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38.3% 상승했다.

장기적으로 유럽의 단일대오에 균열 요인이 될 거란 우려도 있다. 벨기에와 독일·네덜란드 등은 비싼 값을 치르고 새로운 공급처에서 원유를 구해야 하는 반면, 헝가리는 송유관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를 공급받게 되면, EU 권역 내 시장경쟁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NYT는 “EU의 이번 논란과 핀란드·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논쟁 등을 통해, 유럽 블록의 잠재적 취약성이 드러났다”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단합이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고 지적했다.


러 은행 스위프트 퇴출, 우크라 12조원 지원도


한편 EU는 이날 6차 제재안에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 러시아 국영 방송사 3곳의 콘텐트 송출 금지,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러시아인들에 대한 추가 제재도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90억 유로(약 12조 원)를 대출 형태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미셸 상임의장은 트위터에 “우크라이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강력하고 구체적인 지지”라고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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