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본세](35) "세금 뜯어가는 정부, 이것 4가지는 꼭 지켜라"
갑자기 도로 공사가 많아졌다. 한적하던 양평 시골길 이곳저곳이 파헤쳐지고 있다. 지하 수도관 매립, 도로 확장…. 필자 동네에도 아스팔트가 깔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현상이다.
"누가 모를 줄 알고? 선거 되니까 돈 풀어 선심(選心) 행정 하려고 그러지? 그게 결국 다 우리가 내는 세금인데…."
안전벨트를 조여 맨 아내의 푸념이다.
선거철이면 도로가 파이고, 연말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이 바뀐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내가 낸 세금은 잘 쓰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밭농사 지으려고 관정(管井)을 하나 파도 악착같이 세금을 뜯어가는 정부다. 돈 좀 있지 싶은 사람에게는 종부세 폭탄을 마구 던진다. 합의된 정부 폭력이 무서워 피할 수도 없다.
피 같은 돈, 정말 적절한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 걸까. 도대체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거 감시하라고 뽑아 국회로 보내준 대표(국회의원)들은 일 잘하고 있는 건지, 영 미덥지 않다.
세금은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왕은 어떻게 하면 더 뜯어가려고 쥐어짜고, 시민들은 한 푼이라도 덜 빼앗기려고 뭉친다. 가혹한 '삥뜯기'에 혁명의 깃발이 올라가고, 거리에 붉은 피가 뿌려진다.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 서구 민주주의는 그렇게 발전했다.
중국 역사에서도 흔한 일이다. 왕조는 부패하고, 관리는 사리사욕을 채운다.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민란이 발생하고, 역성혁명이 일어난다. 소설 삼국지는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난다.
점잖은 공자(孔子)님도 가혹한 세금에 대해서는 분노했다.
제자 중에 염구(冉求)라는 자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 노(魯)나라 관리 잡을 얻었다. 그런데 이자가 세금 뜯어가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얘기를 들은 공자는 격노하며 이렇게 말한다.
非吾徒也. 小子, 鳴鼓而攻之, 可也.
그는 더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제자들이여 북을 울려 그를 공격하라. 행동에 나서라.
공자가 화났다. 논어 여러 구절 중에서 가장 격정적인 용어로 쓰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혹한 세금은 최고의 분노였다.
멀리 볼 것도 없다. 평생 모은 돈으로 달랑 집 한 채 갖고 있는데, 그 집에 종부세 폭탄이 날아들었다. 반발이 안 생길 수 없다. 열심히 산 게 죄냐?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내줘야 했던 데는 세금 요인도 적지 않았다.
도대체 세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역에 묻는다. 42번째 괘 '산택손(山澤損)'을 뽑았다.
산을 의미하는 간(艮, ☶)이 위에, 연못을 뜻하는 태(兌, ☱)가 아래에 있다. 산은 연못의 물을 빨아들여 숲을 키운다. 연못은 물을 덜어내 산을 더 무성하게 한다. 그래서 괘 이름이 '덜어낸다'라는 뜻을 가진 '損(손)'이다.
'산택손' 괘의 전체 형상은 '아래 것을 덜어 위를 돕는다'라는 것이다. 백성이 가진 재산을 덜어 위(上)로 올려보내니, 그게 바로 세금이다.
내 것을 덜어 위로 보내면, 어쨌든 내게는 불리하다. 말 그대로 손해(損害)다. 그런데 주역은 이를 손해로 보지 않는다. 연못의 물은 줄어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산의 숲이 무성해진다 논리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 도로를 깔고, 학교도 짓고, 치안을 유지한다. 그렇게 나라 토대가 튼튼해진다. '적게 덜어내지만, 하나로 모으면 큰 이익을 만들 수 있다(小損大益)'는 주역의 논리와 연결된다.
주역의 시대 세금은 혁명의 도화선이 아닌 '상생의 인프라'였던 셈이다.
단, 조건이 있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말한다.
有孚, 元吉, 可貞, 利有攸往. 二簋可用享.
믿음이 있어야 길하고, 정도를 지켜야 유리하다. 두 그릇으로 제사 지내면 충분하다.
첫 번째 조건은 믿음(孚)이다.
백성들은 '내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기꺼이 세금을 낸다. 선거 겨냥해 도로공사를 몰아서 하는 군수를 믿고 어떻게 세금을 낼 수 있겠는가. 정부의 폭력이 무서워 세금을 내지만 마음이 흔쾌하지 않다.
둘째 정도(貞)다.
정부는 국민에게 얻은 돈을 당연히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取于民, 用于民). 정권 유지를 위해, 권력자 개인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될 일이다.
'무안 비행장은 고추 말리는 곳으로 변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그런데도 세금 십 수조 원 투입될 가덕도 공항 건설이 추진 중이다. 역시 선거용이다. 옆 공항 놔두고 뭣 하는짓인가…. 제발 정도껏 해라.
셋째 아껴 써야 한다.
주역의 시대 천자(天子)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9개의 솥(鼎)과 8개의 제기 그릇(簋)을 사용했다. 천자의 위세가 그만큼 높았다. '산택손' 괘에서는 그걸 제기 그릇 2개로 줄여도 된다고 했다. 그만큼 백성에게 거둔 돈은 아껴 쓰라는 얘기다. 국민의 피 같은 돈이다.
주역이 제기한 세금의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은 시의에 맞게 징수하라는 것이다.
損益盈虛, 與時偕行
덜어내고 채워 넣고, 가득 차고 비우는 것은 모두 시의에 맞아야 한다.
경기가 안 좋아 장사를 망쳤는데도 세금을 걷어가면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심하면 민란이다. 그럴 때 세금을 깎아주고, 오히려 재정을 풀어야 한다. 그게 바로 시의에 맞는 조세 행정이요 재정의 기초다.
지나치게 많이 걷어도, 적게 걷어도 문제다. 너무 많이 걷으면 백성들이 곤궁해지고, 궁극적으로는 정부 세수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세금을 너무 적게 걷으면 재정이 악화해 경제 탄력성이 떨어진다. 결국 모두에게 피해다.
시의에 맞게 징수하라! 주역은 현대 재정학의 평범한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산택손' 괘가 꼭 국민-국가 간 세금 관계만을 설명하는 건 아이다. 오히려 덜어냄과 채움의 큰 도리를 일깨우고 있다. 세금은 그 한 부분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하려는 얘기는 바로 이것이다.
有得必有失, 有失才有得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어야 비로소 얻는 게 있다.
덜어냄과 채움은 달리 있지 않다. 덜어내야 채울 수 있다. 여유가 있으면 적절히 덜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삼겹살 외식을 해야 고깃집 직원 보너스 챙기고, 돼지 농가에 돈이 흘러갈 것 아닌가. 내 돈이라고 움켜쥐고 있으면 경제가 돌지 않는다. 결국 나도 가난해진다.
세금도 같은 원리다. 내 통장을 덜어 정부 곳간을 채우고, 정부는 곳간을 풀어 다시 국민의 통장을 채운다. 그렇게 정부와 국민은 세금을 통해 서로 의존하고, 돕는다. 주역 '산택손' 괘는 그 순환을 가능케 하는 게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동네 골목길 아스팔트 포장이 선거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필자는 모른다. 어쨌든 마을은 좀 더 깨끗해졌고, 고급스러워졌다. "선거라도 있으니 동네 아스팔트 깔린 거 아녀? 아내의 말에 비시시 웃음만 나온다.
한우덕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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