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 줄다리기.. 항상 여자팀이 이긴 이유

이돈삼 2022. 5. 31.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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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용암마을

마을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전통문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처럼, 마을 이야기도 저마다 다릅니다. 마을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때, 마을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기자말>

[이돈삼 기자]

 용암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 고목. 네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지키고 서 있다. 흡사 성곽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 네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크고 굵은 고목에서부터 비교적 젊은 나무까지 모였다. 오래된 나무이지만 가지가 많이 뻗고, 이파리도 우거졌다. 도란도란 화기애애한 가족 같다.

나무숲에는 마루 넓은 정자가 들어앉아 있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마을 사람들의 쉼터임을 알 수 있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바람도 솔솔 얼굴에 와 닿는다. 마음 같아선, 두 다리 쭈-욱 뻗고 드러눕고 싶다. 금세 낮잠이 몰려올 것 같다.

"시원하요? 어디서 왔소? 여기가 우리마을 쉼터요. 가장 굵은, 이 나무는 수령이 500년은 넘었을 것이오. 해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나무요."

느티나무 앞을 지나던 지재용(83) 어르신이 말을 건넨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마을주민들이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나무 아래에 모여 당산제를 지냈다.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을 빌었다. 당산제를 지내는 날은 마을의 잔칫날이었다.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는 향우들까지도 자리를 함께했다.
  
 용암마을의 담장 벽화. 마을의 당산제와 줄다리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이돈삼
   
 용암마을 풍경. 자연환경은 물론 마을 안팎도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 이돈삼
 
당산제를 지낸 다음엔 주민들이 한데 모여 줄다리기를 했다. 줄다리기는, 다른 지역과 달리 남녀 대결이었다. 남자가 힘이 세거나, 여자의 수가 많거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줄다리기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늘 여자팀이 이겼다. 집안과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 남자들이 부러, 진 건 아닐까?

"정당한 게임이 안 됐지. 할머니들이 회초리를 들고 다니면서 때리고, 방해를 했어. 남자들이 힘을 못 쓰게. 그때 많이 맞아서, 내 키가 안 컸어. 그래서 작아. (하-하-) 그때 매 들고 다닌 분들, 지금은 다 돌아가셨네. 그때가 재밌었는데…."

배기인(85) 어르신의 말이다. 마을의 당산제는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당산제를 거르지 않았다. 예전처럼 성대하게 지내지 않고, 마을사람들만 모여서 간소하게 올렸다. 마음과 당산제와 줄다리기가 마을의 담장 벽화로 그려져 있다. 몇 해 전 학생들이 와서 그렸다.
  
 용암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 고목. 네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용암마을의 느티나무 이야기다. 용암마을은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에 속한다. 월암산과 배봉산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의 경관이 아름답다. 들판도 산자락치고 넉넉하다. 마을은 조용하다. 평범한 농촌이다. 어르신들의 인심이 좋아 보이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주민은 60여 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벼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 마을 위쪽, 연흥사로 가는 길에 큰 저수지가 있어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가뭄이 극심한 올해도 매한가지다.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사는 마을이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때 안 묻은 마을이라고 자부해요. 소나 돼지 한 마리도 안 키우고. 오염시킬 것이 하나도 없어."

박인옥(90) 어르신의 자랑이다. 박 어르신의 연세를 묻는 길손한테 "내가 이 마을 1번"이라고 했다. 가장 연장자라는 얘기다. 마을사람들은 지재용 어르신의 집 마당에 펼쳐진 파라솔 아래에서 망중한을 보냈다. "나는 아직 애기"라는 한부열(67) 어르신도 함께 앉았다. 한 어르신은 서울에서 살다가 내려온 지 2년 됐다고 했다.
  
 용암마을에서 만난 주민들. 사진 왼쪽부터 박인옥, 배기인, 한부열, 지재용 어르신이다.
ⓒ 이돈삼
   
 용암마을 뒤 저수지. 마을사람들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준다.
ⓒ 이돈삼
 
용암마을의 역사가 꽤 오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입구의 논 한가운데에 놓인 고인돌이 그 증거다. 고려 공민왕과 태조 왕건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군유산(君遊山)도 이를 뒷받침한다. 군유산은 영광과 함평의 군계를 이루고 있다.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와 함평군 신광면 송사리에 걸쳐 있다.
마을의 이름은 용바위 전설과 엮인다. 배봉산 입구에 용이 승천했다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생김새가 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용이 하늘로 오른 바위가 있는 마을이다. 그 산에는 지금도 바위가 많다.
  
 용암골 연흥사 대웅전의 목조삼신불좌상. 17세기 중반에 조성한 것으로 조각 수법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이돈삼
 
용암골 연흥사도 마을의 자랑이다.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작은 절집이지만, 마을사람들은 '불갑사의 큰집'이라 부른다. 옛날에는 연흥사가 훨씬 더 크고 번성했다는 것이다.

연흥사 대웅전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와 배롱나무 고목이 눈길을 끈다. 수령이 오래됐다는 걸,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요사채의 단청이나 문양도 아름답다. 대웅전 계단 아래에서 활짝 핀 수련 한 송이도 절집과 조화를 이룬다.

연흥사는 고려 때 각진국사가 창건했다. 정유재란 때 화를 입은 뒤 여러 차례 다시 지었다. 복장 유물로 나온 15∼17세기 때의 묘법연화경 6종 14책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석탑과 승탑, 탱화, 다라니경 목판 등도 귀하다.

17세기 중반에 조성한 대웅전의 목조삼신불좌상의 조각 수법도 빼어나다. 후불 탱화는 자수를 이용해 조성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절집 뒤편 산자락에 있는 마애불도 애틋하다.

마을에서 연흥사를 잇는 숲길도 한적하다. 연둣빛에서 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에 갖가지 여름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길섶에서 만나는 산딸기 몇 알도 오지다. 길손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착한 마을'이다.
 
 용암골 연흥사. 절집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와 배롱나무 고목이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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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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