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마지못해 하고 있지"..60년 전통 헌책방 거리에 남은 쓸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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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낮, 서울 청계천 앞 전태일 거리와 오간수교 사이에 250m가량 이어지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
청계천 헌책방 거리 평화서점연합회 회장인 현씨는 "코로나 이전엔 청계천으로 나들이 나온 손님들로 근근이 장사를 이어갔는데, 코로나 이후로 완전히 손님이 끊겼다"면서 "임대료가 7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인데다 관리비가 매달 20만원씩 나가는데 현재로선 임대료 충당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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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중고서점 성행하는 사이 크게 위축
상인들 "임대료도 못 메꿔"
[아시아경제 이서희 인턴기자] 지난 26일 낮, 서울 청계천 앞 전태일 거리와 오간수교 사이에 250m가량 이어지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 한때 전공 서적을 사러 온 대학생과 명저를 구하러 온 손님으로 발 디딜 틈 없던 한국의 대표적인 책방 거리였지만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12곳 상점 가운데 8곳엔 주인이 홀로 앉아 자리를 지켰고, 나머지 4곳엔 사람이 없었다.
평화시장 1층 건너편 자전거 도로에서 책방 세 곳을 1시간 가량 지켜보니 지나치는 행인 가운데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상점 입구에 켜켜이 쌓인 책들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리기는 했으나 책을 펼쳐보거나 안으로 들어가진 않는 모습이었다. 32년간 이곳에서 기독성문서적을 운영해 온 현만수씨(76)는 “올해도 벌써 두 곳이 철수했다”면서 “예전엔 점심을 못할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졌었는데, 지금은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마지못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헌책방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사과나 생선과 함께 참고서를 끼워팔던 문화에서 시작된 헌책방 거리는 전성기인 1980년대엔 청계천에 있는 상점만 12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서민들에게 사랑받았다. 서울시는 헌책방 거리가 미래세대에게 전할 가치가 크다고 판단해 2013년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전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헌책방 시장은 200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위축됐다. 서울도서관의 ‘책방 찾기’ 서비스에 따르면 2021년 10월 기준 남아있는 서울 시내의 헌책방은 62곳. 한때 청계천 일대에서만 120여 곳이 운영되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헌책방이 만든 공백은 ‘기업형 중고서점’이 빠르게 메꾸고 있다. 알라딘ㆍ교보문고ㆍ예스24 등 대형 온라인 서점이 본격적으로 중고 책 시장에 진출하면서다. 중고 책 시장 업계 1위인 알라딘은 2011년 종로에서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연 후 10년 만에 매장을 전국 49곳으로 늘렸다. 중고서점의 높은 이익률은 전체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크게 끌어올렸다. 2010년 1380억원이던 알라딘의 매출액은 2020년 4295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10년 25억원에서 2020년 247억원으로 10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 이어 ‘만년 매출 3위’를 기록하던 알라딘이 2021년에 이들을 제치고 영업이익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다.
대형 중고서점이 몸집을 불린 사이 청계천 헌책방 거리 상인들은 임대료조차 메꾸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 평화서점연합회 회장인 현씨는 “코로나 이전엔 청계천으로 나들이 나온 손님들로 근근이 장사를 이어갔는데, 코로나 이후로 완전히 손님이 끊겼다”면서 “임대료가 7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인데다 관리비가 매달 20만원씩 나가는데 현재로선 임대료 충당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평화시장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남아있는 책방 12곳 가운데 자기 점포를 가진 상인은 2곳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상인 대부분이 임대료 부담을 느끼며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4년 11월에 개정된 ‘신도서정가제’의 혜택이 대형 중고서점에만 쏠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중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김씨(72)는 “2014년에 도서정가제가 개정되면서 새 책 구매에 부담을 느낀 많은 소비자가 헌책방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막상 까보니 대형 서점만 배를 불렸더라”면서 “대형 서점과 우리(헌책방)는 헌책 매입 과정부터 경쟁 상대가 안 된다. 그나마 우리 경쟁력이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명저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런 도서들도 전부 대형 중고서점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서희 인턴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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