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동 국립극단 부지, BTL방식 복합문화시설 조성 '동상이몽'
서울 용산구 서계동의 국립극단 부지에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는 것을 놓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연계가 동상이몽 중이다. 문체부는 임대형 민자사업(BTL)으로 개발을 서두르지만 공연계는 장르에 따라 반대와 기대의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문체부는 지난 2014년 국립극단이 사용 중이던 서계동의 옛 기무사 수송대 터(7820㎡)에 강북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하는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했다. 옛 기무사 수송대 터는 문체부가 2010년 국립극장 전속이던 국립극단을 재단법인으로 독립시킬 때 국방부와 합의해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2017년 서울시의 도시계획 변경으로 인해 주변 도로와 사유지를 추가로 매입해야 하는 등 여러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체부는 2019년 국토부와 협력해 복합문화시설과 예술인 행복주택(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서울시의 동의를 끌어냈다. 그리고 민자사업 사업비 등에 국회 승인과 기획재정부 심의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31일 1244억 원 규모의 ‘서계동 복합문화시설 조성 임대형 민자사업 민간투자대상 사업 지정 및 시설사업 기본계획 고시’를 냈다.
현재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계동 국립극단 부지 7820㎡에 들어서는 지하 4층~지상 15층의 복합문화시설(연면적 4만1507㎡)에는 공연시설, 복합시설, 업무시설, 민간 수익시설이 포함됐다. 공연시설은 대극장(1200석), 중극장(500석), 소극장 3개(100석·200석·300석)가 들어간다. 소극장은 어린이, 실험, 창작극장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복합시설은 전시실, 도서관, 자료실, 창작공간 등이 포함되며 업무시설에는 운영기관과 예술단체의 사무실이 들어간다.
1244억 원이 투입되는 복합문화시설은 계획대로라면 2023년 공사가 착공돼 2026년 완공된다. 정부 자체 재정이 아니라 민간이 공공시설을 지은 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유권을 이전하고, 임대료 명목으로 공사비와 이익을 분할상환 받는 BTL(Build Transfer Lease) 방식으로 건립된다. 민간사업자는 20년간 복합문화시설에서 나오는 수익 외에 정부로부터 운영비 1004억 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복합문화시설과 함께 조성되는 예술인 전용 주택은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민간참여 공모방식으로 건립되며 200호가 들어선다.
올해 들어 사업에 참여할 민간기업의 사업수행능력 평가와 함께 사업계획서 제출 등의 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 뒤늦게 서계동 국립극단 부지 개발 상황을 알게 된 공연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문체부는 지난 25~26일 두 차례에 걸쳐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업 설명과 공청회 진행을 맡고 윤성천 문체부 예술정책관 등이 참석해 공연계 관계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연극계를 대상으로 한 25일 공청회와 뮤지컬계·무용계 등을 대상으로 한 26일 공청회는 분위기가 상반됐다. 서계동 부지 개발에 대해 연극계가 격앙된 입장이었던 것과 달리 뮤지컬계 및 무용계는 찬성을 표했다.
연극계 관계자는 “현재 서계동의 가건물은 허름하지만 명동극장과는 구별되는 연극인들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하지만 복합문화시설이 건립되면 국립극단 고유의 공간이 사라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연극계 관계자도 “지금 계획대로라면 복합문화시설은 문화적 감수성 없이 상업 논리로 만들어지는 데다 다른 장르와 나눠 써야 한다는 점에서 국립극단의 위상 하락이 걱정된다. 특히나 메인 극장인 대극장은 뮤지컬 전용극장 아니냐”며 문체부에 항의했다.
연극계는 이날 영국의 국립극장 사례를 들어 서계동 개발이 늦어지더라도 현장 예술가들로 위원회를 꾸려 건축 전반에 관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서계동 개발 사업의 명칭에 대해 ‘서계동 복합문화시설 건립’이 아니라 ‘국립극단 시설 개선과 관련한 서계동 복합문화시설 건립’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연극계의 요구에 대해 문체부는 난색을 보였다. 이와 함께 서계동 국립극단 부지 개발을 위해 문체부가 오랫동안 애써온 것을 알아주지 않는 연극계에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성천 예술정책관은 “문체부는 연극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고르게 고려해야 한다. 현재 복합문화시설은 다른 장르의 요구도 반영한 것이다”면서 “국립극단만의 전용 부지가 필요하다면 장기 사업으로 문체부에서 추후 별도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극단 부지만이 아니라 서계동 일대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는 상황에서 복합문화시설 건립이 더 늦어지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뮤지컬계와 무용계는 새로 조성되는 복합문화시설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뮤지컬계의 경우 대극장이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4000억 원이 넘는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부족한 전용 극장 문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며 운영 주체를 주시하고 있다.
무용계에선 복합문화시설에 들어서는 극장 가운데 중극장이나 소극장을 무용 전용 극장으로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무용계 관계자는 “최근 한국 무용수와 안무가가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무용 전용 극장조차 없다”면서 “그동안 올림픽 등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용계는 열심히 도왔지만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해 서운했다. 이번에야말로 문체부가 무용계의 숙원을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예술정책관은 “극장의 규모와 전용 극장 여부 등은 앞으로 예술계의 의견을 좀 더 경청한 뒤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번 서계동 국립극단 부지 개발이 임대형 민자사업(BTL)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장르와 관계없이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앞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립비 수천억 원에도 불구하고 정부 재정 사업으로 건립된 것과 달리 서계동 복합문화시설은 BTL 방식으로 개발되는데, 앞서 지역 문예회관들이 BTL 방식으로 건립됐다가 운영부실과 지자체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여러 차례 불거진 바 있다.
윤 예술정책관은 “그동안 지자체가 문예회관 등 문화기반시설 조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계동 부지에 조성하는 복합문화시설의 경우 계약조건이 매우 세세해서 사업자가 들어오지 않을까 봐 걱정할 정도”라면서 “공연시설과 복합시설의 운영에 대해서도 시설 유지관리 주체와 예술단체의 역할이 확실히 구분돼 있는 등 여러 보완장치가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연극협회는 31일 성명서를 통해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은 예술계에 대한 국가폭력”이라면서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6월 6일 대학로 스튜디오76 소극장에서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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