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강요된 희생은 약탈이다

2022. 5. 3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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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모든 일엔 늘 대가가 따른다.

토지이용 규제도 그렇다.

그래서 '규제수용 법리'가 중요해진다.

다 보상하려니 액수가 커진다? 그렇다면 애초 잘못된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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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정부의 모든 일엔 늘 대가가 따른다. 토지이용 규제도 그렇다. 생태계나 문화재 보호라지만 묶이는 땅의 주인은 절망한다. 송전, 미사일, 원자력 시설의 입지도 인근 주민에겐 날벼락이다. 그래서 ‘규제수용 법리’가 중요해진다. 수용처럼 공용제한의 피해도 보상한다는 헌법(제23조 3항) 원칙을 일컫는다.

하지만 실상은 각종 핑계로 애먼 소수의 재산권을 옥죄어 왔다. 다 보상하려니 액수가 커진다? 그렇다면 애초 잘못된 규제다. 소유권을 뺏는 건 아니니 재산 가치가 추락해도 참으라고? 그건 약탈이다. 공용제한의 유형은 다양하다. 건축, 설치, 분할, 형질 변경, 채취 등 제한되는 행위에 끝이 없다. 이런 법률은 현재 99개나 되고 개별 규제로는 무려 243개다. 보호, 보전, 정비, 관리, 방재, 육성과 같이 그럴싸한 명분을 들이댄다. 그 결과 용도지역, 용도지구, 용도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한 토지가 각종 제한을 받고 있다. 예컨대 용도구역의 대표 사례가 그린벨트로 아직 전국에 3800㎢나 묶여 있다.

정부의 무책임은 놀랍다. 가령 국토계획법의 도시군계획 시설 규제는 각종 기반시설 입지를 지정하되 그 집행(수용) 때까지 가혹한 제한을 가한다. 그런데 미집행시설은 630㎢로 방대하다. 수십년간 보상도 없이 묶인 사례들에 충격받아 시작된 한 연구의 분석 결과는 끔찍했다. 필지 이력 데이터를 추적하니 10년 이상 장기 미집행률이 6할을 넘었다. 그 경우 15년가량 넘게 방치한 비율은 8할을 상회했다. 수술한다고 마취시켜놓고 의사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 꼴이다. 이쯤 되면 하버드대 헌법학자 마이클먼이 정의한 ‘탈도덕화 비용’은 막대해진다. 피해자들의 좌절과 저항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는 의미다. 무보상을 꾸짖은 헌재 결정(97헌바26)에도 개선 노력은 미미했다. 20년간 미집행된 공원시설 일몰제 도입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적용 시점인 2020년 7월이 다가오자 미집행지들을 도시자연공원구역이라는 새 덫으로 다시 묶었다. 꼼수였다. 보상계획이 일부 발표는 됐다. 강탈 의도가 없다면 실행을 마구 늦추거나 액수를 후려치려는 유혹은 접자.

L씨는 바닷가 집을 꿈꿨다. 백사장 입구 주택들 사이 빈터를 5억원에 샀다. 이후 건축하려는데 당국이 불허했다. 해변 입장객에게 편한 통로라 역설하다가 강풍에 날아갈 건축자재들이 위험하다고도 강변했다. 급기야 법원은 당국이 아예 수용하되 5억원을 L씨에게 보상토록 했다. 돈을 마련코자 그 터를 매물로 내놨으나 감감무소식이다. 하릴없어 건축을 허가하니 이내 팔렸다. 대못 규제를 당국이 철회하며 거래 성사에 진심을 보인 시쳇말로 웃픈 반전이었다. 보상은 공정성 확보는 물론 규제 비용을 나라님이 숙고토록 만드는 핵심 기제라는 점을 알린 미 대법원 ‘루카스 사건’의 브리핑이다. 맞다. 공짜니까 툭하면 과잉규제다.

기존 피해를 전수 조사해 보상하면 필수 규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재원과 역대 소유자들끼리의 손해 배분 같은 난제가 많다. 두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비필수 규제의 해소다. 예컨대 그 자체로 비필수성을 드러낸 장기 미집행 시설은 즉시 해제하자. 둘째, 신설 규제의 명백한 피해는 보상하되 그 필요성과 피해를 주기적으로 재평가한다. ‘그러고픈데 산정이 워낙 힘들어서’라고 시늉만 하던 파렴치를 버리자. 충분히 가능하다. 작금의 코로나 영업손실과 군산 미군 비행장 소음 사례처럼 현저한 피해의 보상은 헌법적 책무다. 공익을 빌미로 힘없는 소수의 희생을 강요치 말자. 바로 그런 게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질타한 ‘공권력 불법행위’다. 과거 되풀이된 구호들만 아직 무성한 규제개혁의 향후 확고한 성공을 위해서도 그렇다.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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