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청소년 흡연 부추기는 '가향 담배'.. 성분 공개 법제화 급하다
달콤하고 청량감 줘 흡연 유도
10년 새 판매 비중 8.3배 폭증
13∼39세 흡연자 65%나 차지
FCTC는 ‘가향 성분’ 금지·제한
미 2024년 이후 멘톨향 판매 금지
한국선 법안 8건 논의 거의 안돼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이다. 담배의 폐해와 금연의 중요성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은 요원하다. 오히려 일반담배(궐련)에서 나날이 변화를 거듭해 지금은 액상 전자담배, 가열담배(궐련형 전자담배), 씹는 담배, 머금는 담배 등 신종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특정 향과 맛을 가미한 가향(加香) 담배, 그 중에서도 캡슐 담배(필터를 물면 안에 든 작은 캡슐이 터져 향을 냄)가 대세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2020년 국내 전체 담배 판매량(35억9000갑) 중 가향 담배 비율은 38.4%로 2010년(4.6%) 대비 8.3배 증가했다. 캡슐 담배 비중은 2010년 0.9%에서 2020년 30.6%로 34배 폭증했다(국회입법조사처 2021년 4월 보고서).
담배에 첨가되는 가향 물질은 설탕이나 감미료(포도당 당밀 벌꿀 등) 멘톨 바닐린 계피 생강 민트 등 다양하다. 모두 담배 특유의 매캐하고 거친 맛 대신 달콤하고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 흡연을 용이하게 한다.
2017년 공주대 신호상 교수팀이 질병관리청 의뢰로 진행한 연구에서 국내 시판된 궐련 60종(캡슐 담배 13종 포함)의 연초 내 첨가물 분석 결과 모든 제품에서 흡연을 유도하는 가향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성분으로 박하향을 내는 이소멘톤 이소푸레골 멘톨이 46종에서 한 가지 이상 나왔고 코코아 성분인 테오브로민은 59종에서, 바닐라향을 내는 바닐린은 49종에서 검출됐다.
문제는 이런 가향 성분들이 흡연 과정에서 인체에 어떤 위해성을 갖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물질은 흡연자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설탕이나 바닐린 등은 연소되면서 발암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발생시킨다. 코코아 성분은 기관지를 확장시켜 흡연자의 폐에 니코틴 흡수를 쉽게 한다. 멘톨은 니코틴 반응 감각을 둔화하고 니코틴 대사를 방해해 중독 가능성을 높인다. 또 담배 연기 성분의 폐 흡수를 돕고 발암물질 분해를 방해해 결국 암 발병 위험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가향 담배가 청소년과 젊은 성인층(특히 여성)을 정기 흡연자가 되도록 ‘입문(gateway)’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비흡연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더 깊게 흡입하도록 해 흡연을 지속시킨다. 실제 2017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에 의하면 13~39세 현재 흡연자의 약 65%가 가향 담배를 쓰고 있었다. 현재 흡연자 중 여성(73.1%)이 남성(58.3%) 보다 가향 담배 사용률이 훨씬 많았다. 또 가향 담배로 흡연을 시작할 경우 일반 궐련에 비해 현재 흡연자일 확률이 1.4배 높았다. 흡연 경험이 있는 12~17세의 80.8%가 가향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는 미국의 연구도 있다.
이 때문에 2005년 정식 발효돼 지금까지 한국 포함 182개국이 비준한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가향 성분 사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가 가향 담배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캐나다와 유럽연합은 각각 2017년, 2020년부터 멘톨향을 포함한 가향 물질 첨가를 금지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궐련 포함 담배 제품에 멘톨을 제외한 가향 물질을 금지해 왔으며, 최근 식품의약국(FDA)이 멘톨향 제품도 2024년 이후 전면 판매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은 캡슐을 포함한 가향 담배 규제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국민건강증진법상 담뱃갑이나 광고에 가향 성분의 첨가 표시를 못하도록 할 뿐 가향 물질의 함유 자체는 규율하지 않고 있다. 담배회사 등이 가향 물질 같은 첨가물 성분을 공개하거나 제출할 의무도 없다. 담배에는 4000여가지 유해 물질이 들어 있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상 담뱃갑에는 나프탈아민 니켈 벤젠 등 6가지 발암 물질 정보만 표기하도록 돼 있고 담배사업법 시행령에 담배(궐련) 한 개비 연기에 포함된 것으로 표기해야할 성분은 타르와 니코틴 단 2종에 불과하다. 2019년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금연종합대책에선 가향 담배의 단계적 금지 원칙을 밝혔지만 이후 구체적인 추진 로드맵은 나오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에는 캡슐 등 가향 담배 제조·수입·판매 금지, 담배 첨가물 및 배출물의 유해성 관리 규정 신설, 제조·수입업자의 담배 구성 및 유해 성분 자료 제출·공개 의무화 등을 담은 법안이 8건(국민건강증진법, 담배사업법 제·개정안) 발의돼 있지만 상임위원회 차원의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 공재형 선임전문원은 “가향 담배의 급증이나 담배 정의를 피하는 제품의 출현(담배 유사 효과를 내지만 현행법상 담배가 아닌 제품), 전자담배를 이용한 담배업계의 ‘위해 감축 마케팅’(궐련 보다 덜 해로운 전자담배에 대해 세제 등 차등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등 담배 규제 관련 현안을 관리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결국 담배 성분 및 배출물 정보의 공개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이용해 담배회사들이 여성과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냄새 없는 담배, 달콤하고 시원한 담배 등 다양한 가향 담배를 (궐련, 전자담배 가릴 것 없이) 많이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담배회사 외에는 담배에 첨가된 가향 물질 정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판단할 근거 확보와 건강 유해성 연구가 어렵다.
공 전문원은 “FCTC 9·10조에서 명시하듯 담배 성분 및 배출물 정보를 담배회사로부터 제출받고 국제·국가적으로 공인받은 기관에서 검사·측정해 검증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해 국민들이 모든 담배제품의 특성과 진실을 알도록 해야 한다”며 신속한 법제화를 위한 국회와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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