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역사·철학 활용할 줄 알아야 성경에 질문할 수 있다

우성규 2022. 5. 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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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그리스도인] <2> 박영선 원로목사의 독서론


책 읽는 그리스도인 두 번째 순서로 한국교회 대표적 강해설교가인 박영선(74·사진) 서울 남포교회 원로목사를 만났다. 박 목사는 한 달에 한 권씩 한 줄 평을 곁들여 성도들에게 ‘이달의 도서’를 추천한다. 역대 목록을 보니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삶을 위한 신학’(2015년 12월)과 같은 신앙 분야 이외에 미술사학자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2021년 3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2021년 8월)와 같은 문학 역사 철학책들이 포함돼 있다(그래픽 참조).


윤철호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는 ‘설교의 영광, 설교의 부끄러움’이란 책에서 한경직 옥한흠 이동원 박영선 이재철 정용섭 유기성 이찬수 목사 등의 설교를 분석하며 특히 박 목사에 대해 “그의 설교엔 서론이 없다. 결론도 없다. 본론만 있다”고 평가했다. 군더더기 없이 말씀의 맥락과 본질에 집중한다는 상찬이다. 박 목사가 1985년 펴낸 ‘하나님의 열심’이 2017년 전면 개정돼 지금도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는 이유다. 성도를 성경 본문으로 곧장 끌고 들어가 당신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그가, 한편으론 도움과 위로가 되는 책들을 추천하는 이유를 지난 26일 남포교회 목양실에서 언급했다. 욥기 시편 이사야 등 구약을 종횡무진하며 펼쳐진 이야기 일부를 압축한다.

-그리스도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이외에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문학 역사 철학을 활용할 줄 알아야 성경에 여러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느냐’란 질문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윤리나 교훈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성경이 우리를 이끕니다. 문학엔 콘텍스트가 있습니다. 맥락이 중요합니다. 작품을 읽을 때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단어나 자구에만 얽매이진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독 단어나 구절에 매여 맥락 없이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스토리를 못 쫓아오면, 다시 말해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면 본문에 뭘 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단어들을 뽑아서 교훈집처럼 만들게 됩니다. 지당하신 말씀의 집합이 되어 좋은 말들만 담깁니다. 명예 성공 우애 사랑 등 단어는 나열되지만 거기엔 문맥이 없습니다. 대화할 때 제일 듣기 싫은 게 설교라고 합니다. 왜 싫으냐. 설교는 지금 둘이 만난 정황을 벗어나 저쪽이 모르는 문맥을 꺼내 들으니까, 맥락이 다른 본문을 얘기하니까 공감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이런 말이 안 되는 말이 있냐’라고 물어야 합니다.

인문학은 질문하게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이집트로 가서 마누라 빼앗길까 봐 속이는 아브라함이 도대체 언제 믿음이 생긴 건지 질문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떠받드는 게 아닙니다. 욥기 시편 이사야서 등 구약 내내 이런 질문의 연속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에서 중요한 건 도전입니다. 인간에게 이게 전부냐고 묻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인문학이 복음의 새로움을 더 잘 이해하게 돕는다는 의미입니까.

“그럼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정답입니다. 불교는 네가 죽어라 그러면 해탈이다 그럽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구원은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구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부정적, 소극적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걸 넘어서는 차원의 정체성을 논하는 것입니다. 많은 책을 읽는 이유는 책마다 저자들이 인간답게 서 있는 현재의 위치에 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현 위치를 알아야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달의 추천도서는 어떻게 고르십니까.

“제가 읽어보고 좋으면 추천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니 성도들이 따라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갈수록 추천이 어려워지긴 합니다. 추천할 것은 거의 다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와 인생의 목적을 제시한 책입니다. 창조의 완성인 구원을 말합니다. 없는 것을 만드는 창조 정도가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듯 망한 것을 뒤집는 역전이 바로 구원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도 있는 세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점을 얘기해야 합니다. 도덕적 이분법이 목적이 아니고 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책’은 무엇입니까.

“꼽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변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를 신학교 1학년 때부터 읽었습니다. 부흥사인 존스 목사님은 설교가로서 권위란 은사가 있습니다. 같은 내용도 그가 설교하면 권위가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깊이 주장한 신학자 칼 바르트의 책도 좋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담장 너머를 볼 수 있는 정도가 될 뿐입니다. 중요한 건 이제 품는 겁니다. 자신이 선 위치에서 두 팔을 벌려 포용하는 것만큼이 자기입니다. 다음세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잘못이 있더라도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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