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나는 제자를 믿지 않는다!

2022. 5. 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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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스승은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분의 신뢰 대상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실망만 안겨드린 못난 제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셨기에, 허물도 눈감아주시고 부족함도 감싸주셨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을 신뢰하기보다 사랑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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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스승은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사랑’해주셨다. 만약 내가 그분의 신뢰 대상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실망만 안겨드린 못난 제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셨기에, 허물도 눈감아주시고 부족함도 감싸주셨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을 신뢰하기보다 사랑하려고 애쓴다.

제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매 학기 첫 수업 시간이면 반드시 요청하는 게 있다. 수업 중 질문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일이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어떤 질문은 수업을 풍요롭게 하지만, 어떤 질문은 수업의 맥을 끊을 뿐 아니라 동료 학생을 지치게 만들고, 게다가 나의 제자 사랑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첫째, 궁금해서 하는 질문은 항상 환영한다고 말한다. 강의 내용 중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고 생각되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던지는 질문은 항상 유익하다.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질문은 자기계발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자질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유형의 질문을 받으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면 명확한 답변을 주고, 모르거나 불확실하다면 다음 수업에서 알려주겠노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선생으로서의 권위는 두루뭉술하게 아는 척하는 게 아니라 솔직함으로 세워진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소유하니 강의가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가르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철들자 이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둘째,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도 환영한다고 덧붙인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안에 대해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역지사지의 토론을 통해 내 견해에 대한 확신이 서기도 하고, 다른 관점을 수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토론을 위한 질문을 통해 배움은 풍요로워지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긍정적인 자신감을 얻게 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때로는 굳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할 필요도 없이, 다른 이들의 토론을 듣는 것만으로도 궁금증이 해결될 때가 많다. 마치 가족들 사이에서는 똑똑한 지적보다 말 없는 공감이 필요하고, 특히 자녀들에게는 장황한 훈계보다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셋째, 하지 않았으면 하는 질문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바로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기 위한 보여주기식 질문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남을 창피하게 만들고 희생양으로 삼는 의도적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질문이 수업 시간에 등장할 경우, 한순간에 수업 분위기가 깨지고 관계는 갈등으로 발전하는 것을 몇 차례 목격했다. 이런 유형의 질문을 용납할 경우 돌이키기 힘든 수업의 역효과로 나타나고 제자에 대한 미움도 움틀 수 있다.

교실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스승과 제자들만의 안전지대다. 모든 종류의 질문이 허용된다.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 사이의 구분도 없다. 제자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스승은 성실하고 진실하게 답변할 ‘의무’가 있다. 진지한 질문과 솔직한 답변만큼 감동을 주는 배움과 소통은 없다. 좋은 질문이 좋은 수업을 만든다. 그렇기에 일방적인 정보제공형 수업보다 좋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수업은 나에게 늘 로망이다.

나는 제자들을 믿지 않는다. 제자들은 내 자녀들과 다르지 않다.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대하면 미워하거나 실망할 일이 없어 세상 편하다. 배신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신뢰의 대상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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