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영준의 시시각각] 코로나와 중국 모식(模式)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는 교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륙의 웅혼함에 매료돼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중국에서 살았지만 요즘처럼 중국 생활, 아니 중국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시작된 상하이 봉쇄는 두 달을 훌쩍 넘겼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봉쇄가 철저한지 모를 것이라며 두 달 동안 2500만 인구의 상하이가 교통사고 제로, 이혼율 제로를 기록했다는 수치를 댔다. 그의 가족들은 봉쇄 이튿날부터 지금까지 하루 두 끼로 식사를 줄였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비축해 둔 식량만으로 지금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정신적 고통이다. 족불출문(足不出門),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아예 발을 내밀지 말라는 당국의 포고문이 봉쇄 첫날 내려왔다. 단지 입구에는 첩첩이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삼엄하게 경찰이 출입을 막았다. 그가 간간이 SNS로 보내온 소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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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진율 0.17% 자유 저당잡힌 대가
한때 대안 떠올랐던 중국 모델
미·중 패권경쟁하며 취약점 드러내
」
한국에서 이런 봉쇄가 시행됐더라면 폭동이 나고도 남을 상황이지만, 엄연히 21세기 글로벌 국제도시인 상하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인이라고 불만이 없으랴만 집단행동을 통한 의사 표현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SNS에 철통 봉쇄를 풍자하는 동영상을 올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유일한 탈출구다. 상하이동물원이 시 전체로 확대됐다며 바리케이드에 갇힌 신세를 한탄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당국을 비판하는 직설적 표현이 들어가면 1초 만에 삭제된다. 인공지능(AI)이 걸러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구 대비 누적 확진자 비율은 0.17%다. 덴마크 54%, 프랑스 45%, 독일 31%, 미국 25%로 대부분의 자유민주 국가들은 20%를 훌쩍 넘는다. K방역을 자랑하던 한국은 35%다. 숫자만으로 보면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알듯이 13억 인구의 자유를 저당 잡힌 대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감염병과의 싸움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거나 유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이 얼마만큼 자유를 희생할 수 있느냐의 정도에 있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균형점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국가 공권력으로 국민에게 전면적인 자유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모범으로 삼을 나라는 없다. 얼마 전 방역의 둑이 터지자 국가 최고지도자가 중국의 사례를 본받으라고 지시한 북한이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해 팬데믹으로 확산되고 전 세계가 이를 극복하는 시기는 공교롭게도 미·중 패권 경쟁이 첨예화되는 시기와 겹친다. 코로나 발생 이전 관세전쟁의 영역에 머물렀던 미·중 대립은 그 사이 경제 울타리를 넘어 국제정치의 전 분야로 번졌다.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또 그것이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않건 미·중 패권경쟁은 진영 대립으로 굳어져 가는 양상이 뚜렷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곧바로 한국·일본을 찾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는 바로 그 시간에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보내 그동안 공들여 온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을 챙겼다. 진영 대립의 국제정치는 필연적으로 가치·이념 경쟁으로 이어진다. 한때 ‘중국 모식(模式)’이란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격심한 정쟁에 휘말리거나 포퓰리즘에 휘둘리면서 취약성을 드러낸 서구 민주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대안적 발전 모델을 중국에서 찾는 흐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흐름이 싹 사라지고 중국 모델은 중국의 약점이 됐다. 중국의 체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이 자유민주 체제의 그것과 융화하기 어려운 것이란 사실을 외부 세계가 깨닫게 된 결과일 것이다. 두 달 이상 이어지고 있는 상하이 봉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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