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의 이코노믹스] 한국 경제에 필요한 공급망 확보 채널로 활용해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사용법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장소에서 “한·미 관계가 첨단기술과 공급망 협력에 기반을 둔 경제안보 동맹으로 거듭나길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한·미 간 반도체 협력을 언급했지만, 강조점은 미묘하게 달랐다. 중국 견제보다는 한·미 간 기술협력을 통한 반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두었다. 반도체 장비의 45%를 미국에 의존하고 반도체 설계기술 확보가 절실한 한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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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중국 견제 위해 제안했지만
14개 참여국 이해관계 조금씩 달라
신통상 질서 구축에는 결정적 계기
원자재·필수물품 확보에 도움되길
」
한·미 기술동맹의 정치적 함의는 복합적이다. 만약 첨단기술 제품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미가 담겼다면 한·중 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반도체 말고도 원자재와 희귀광물 등 다양한 분야의 공급망으로 얽혀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시장이다. 중국 언론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중국 압박에 참여하는 경우 한·중 경제 무역관계와 한반도 문제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날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에 대해 반도체를 계속 공급하는 한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과 전방위적인 반도체 기술협력을 하는데 주저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중국 견제에 의기투합한 유럽연합(EU)과 기술동맹에 준하는 반도체 기술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6일 2차 회의를 마친 미국·EU 간 무역기술협의회(TTC)에서 양 진영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반도체 기술의 연구개발에 공동 참여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한·미 기술동맹은 우리에게 중국도 달래고 미국과도 기술협력을 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중국 주도의 RCEP와 상호보완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지난 23일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했다. 한국의 IPEF 참여는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질서에 한국이 참여하기로 선택을 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과 일본 외교수장들과의 화상 회담에서 두 나라의 IPEF 참여를 강하게 반대하고,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한 것은 이런 시각에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IPEF를 제안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IPEF가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협정이라는 주장은 IPEF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제안한 IPEF는 공정한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탈탄소화, 조세·반부패 등 4개 주제별로 개략적인 로드맵만 제시된 상태다. 공급망은 IPEF가 다룰 여러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막 협상이 시작되는 IPEF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IPEF는 중국이 주도한 역내포괄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경쟁 관계라기 보다는 상호 보완관계인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양 협정의 참여국이 많이 겹친다. 당초 IPEF 참여국은 13개국으로, 출범 사흘 만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가 합류를 선언해 14번째 참여국이 됐다. 그 중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필리핀·태국·베트남·브루나이 등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7개국과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는 RCEP 회원국이기도 하다. RCEP에는 아세안 10개국이 전부 참여하고 있다.
한국이 협상 역량을 펼칠 기회
더욱이 IPEF의 참여국 중에는 IPEF가 ‘반중(反中)연대’ 협정이 되는 것을 우려하는 국가들이 많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IPEF 최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경쟁국 대만의 IPEF 참여에 대해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대만이 IPEF에 참여하면 중국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IPEF를 통해 중국 배제 전략을 실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으로서도 IPEF가 미국의 중국 배제 전략이라는 전제에서 IPEF 협상에 임할 이유가 없다. 한·미 기술동맹은 IPEF 밖에서 추진할 일이다. 우리 정부가 “IPEF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며 IPEF의 개방성·투명성·포괄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뜻이다. IPEF에는 비록 관세인하 등 시장접근이 빠져 있지만, 디지털 경제, 환경, 청정에너지, 탈탄소화 등은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주제들이다. IPEF는 통상중추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이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협상 역량을 펼칠 절호의 기회다. 이런 관점에서 IPEF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마다 국익 따져 IPEF 활용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IPEF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원자재 및 필수물품에 대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협정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제품 외에는 원자재 등을 주로 해외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처지다. IPEF 참여국들이 보유하는 자원과 식량 등 공급망을 확보해 우리의 공급망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IPEF가 첨단 기술제품에 대한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로 발전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수출통제는 공급망 안보에 직결된다. 사안별로 각국이 국제관계와 자국의 사정을 고려해 정할 문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그런 예다. 전 세계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력체 ‘쿼드’의 일원인 인도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제재 참여를 거부했다. 미국과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동국가, 그리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뒷마당 멕시코와 브라질도 러시아 제재는 거부했다. 국가마다 각자 국익을 따져 제재 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반세계화 부추기는 협정 피해야
셋째, IPEF는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청정에너지, 탈탄소화, 조세 및 반부패 등 분야에서 기존 국제규범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규범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통상 이슈에 관한 룰을 만드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규정 중에는 우리 산업에 부담이 될 만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노동기준을 강화하고 노동법을 위반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다든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산업별 탄소 저감 계획을 마련하도록 한다든가, 무역에 있어 환경보호 요건을 강화하는 규정들이 제안될 수 있다. 또한 철강·시멘트·발전산업 등에 대해 저탄소 청정에너지를 구매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특히 디지털 분야에서 미국은 가장 높은 수준의 규범 도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규범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합리적인 요구는 수용하되 우리 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IPEF가 다룰 내용이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기존 국제통상 규범에 합치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IPEF가 반(反)세계화를 부추기는 협정이 돼서는 안 된다. 예컨대, 미국·EU는 지금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명분 삼아 반도체 보조금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미국과 EU도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5월 2차 TTC회의 공동성명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정당화하기 위한 나름의 보조금 지급 원칙(예컨대 차세대 기술 개발, 공급망 안보 등 정당한 공공정책 목적)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WTO 규범과의 불합치를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밖에 IPEF가 다룰 노동 및 환경보호 규정이나 탈탄소화 지원 규정들도 WTO 규범과 충돌될 소지가 있다. 이런 문제들은 IPEF에서 관련 주제를 논의할 때 함께 다루어져야 할 이슈라 할 수 있다.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국제통상법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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