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4시간 51분(2019년 공직선거법) vs 17분(2022년 검수완박)..안건조정위 심사 여부가 핵심 변수

조강수 2022. 5. 3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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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로 간 검수완박 쟁점과 전망

헌재, 2020년 안건조정위 4시간여 비공개회의 심사로 인정
생중계된 검수완박 안건조정위는 무심사 17분 영상도 존재
한동훈의 법무·검찰, 위헌 판단에 법률 무효 결정까지 겨냥
진보 우위 헌재, 새 정부 첫 정치사건 어떻게 결정할지 주목
조강수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마감 일주일(지난 3일) 전에 공포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이 '헌재의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장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동원,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법사위에 상정·가결했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이 26일 헌재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사흘 뒤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게 발단이었다. 해당 사건의 공개변론이 오는 7월 12일로 잡혔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움직임에 9월 10일 법 시행 전에 결론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수완박 헌법 분쟁의 쟁점과 전망을 짚어봤다.

헌법재판소 건너편에서 바라본 전경. 헌재 재판관을 상징하는 9개의 무궁화 문양이 보인다. 조강수 기자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은 한산했다. 헌재 건물로 눈길을 돌리니 외부 벽면에 부조된 9개의 무궁화 꽃이 보였다. 9명의 재판관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문양은 동일하지만 정작 문양이 가리키는 재판관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두 축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현하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복수의 헌재 관계자는 "지금 내부적으로 권한쟁의 사건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는데 양설이 부딪치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해 설치된 안건조정위원회를 건너뛰고, 정당 소속 국회의원을 편법 탈당시킨 문제 등은 중대한 법 절차 위반이라서 헌재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입법 절차가 기차처럼 쭉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건데 법사위원회에서 일부 하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본회의에서 통과됐으니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다.
한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얼마나 심각한 절차 위반인지, 민주주의에 끼치는 위험이 중차대한지를 공개 변론장에서 치열하게 논박하게 한 뒤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헌재에 청구한 검수완박 법안 관련 권한쟁의심판청구서. 조강수 기자

가처분 신청 외면한 헌재
헌재에 접수된 권한쟁의심판청구서부터 살펴봤다. 청구인은 국민의힘 법사위원인 유상범·전주혜 의원, 청구 대상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광온 법사위원장이다. 박 의장은 법안 발의자인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법사위원으로 사보임하고, 야당이 소집을 요구하면 연장자가 위원장을 맡게 되는 규정에 맞추려 75세로 국회 최고령인 김진표 의원을 법사위로 이동시킨 책임자다. 박 위원장은 국민의힘 측이 깊이 있는 법률안 심의를 위해 요청한 안건조정위 회의를 개회 14분(전체 17분 소요) 만에 종결 선언한 뒤 법사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한 게 문제가 됐다.
청구서에는 "이러한 일련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는 국회법상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서 '위헌·위법'에 따른 무효"라고 적혀 있다. 이 사건의 법률대리인은 정치법(선거·국회·정치자금법) 전문가인 황정근 변호사다. 그는 안건조정위 구성과 의결이 국회법에 따라 작동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꼽았다. 2020년 5월 27일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사건(2019헌라5 결정)을 비교 사례로 들었다. 장제원 등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9년 8월 국회 정치개혁특위 안건조정위원장 등을 상대로 냈는데, 안건조정위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안건조정위에서 비공개 회의로 4시간 51분가량 심사했으므로...(중략) 안건조정위 구성 전 두 달 동안 정치개혁 소위에서도 심사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황 변호사의 주장은 이렇다.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이 확연히 다른 게 두 가지다. 당시엔 비공개회의였지만 이번 안건조정위는 생중계됐다. 또 헌재는 당시 4시간 51분간 심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단했으나 이번엔 17분간 아무 심사 절차가 없었음이 명백하게 나오는 회의록과 영상이 있다. 이런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 것 자체가 처음이다. 원래 안건조정위는 소위원회 안건 상정→축조 심사 및 찬반 토론→표결의 3단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런 걸 다 생략하고 의결만 했다. 명백한 하자로 인한 무효 사유가 아니고 아예 절차를 밟지 않은 부존재로 인한 무효 사유다. 필리버스터 종료를 위한 회기 쪼개기, 민형배 의원 '위장 탈당' 등은 어찌 보면 부차적이다. 편법이긴 하지만 불법은 아니지 않나."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유상범 의원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 신청서를 박광온 위원장에게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 전문가들은 헌재가 본안 소송인 권한쟁의 심판청구에 앞서 제기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심리하지 않은 게 직무유기라는 해석도 내놨다. 헌법재판소법은 권한쟁의심판과 정당해산심판 등에서 가처분을 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 법안의 본회의 상정(4월 30일 검찰청법, 5월 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막기 위해 헌재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하지만 헌재는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고 가처분의 실익은 사라졌다. 법원이 민사·행정 사건에서 가처분 신청이 접수되면 신속히 결정해 권리를 구제하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에 들어오는 가처분 사건은 사회적 파장과 중압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역으로 국정운영과 민생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헌재의 가처분 결정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권한쟁의 심판 사건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승소 결정의 주문이 '심의·의결권이 침해됐음을 확인한다'로 끝난다는 점이다. 사후적 위법 선언에 그친다. 법무부와 검찰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깊어진다.

한동훈이 총대 메는 모양새
검찰총장이 아직 공석인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황태자'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총대를 메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지난 26일 검찰국장 직속으로 검수완박 헌법쟁점연구TF를 발족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위해 2013년 9월 차관 직속 TF를 꾸린 이후 8년 9개월 만이다.
검찰은 검수완박 법안의 내용과 절차가 모두 위헌이라고 본다. 내용의 위헌성부터 본다면 헌법 12조, 16조는 검찰의 영장청구권을 보장하는데, 영장청구는 수사권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의 수사 범위를 제약하기 때문에 하위의 법률로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법무부는 전날 공직자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장관으로 위임하고 검사를 포함한 인력을 증원하는 내용을 담은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연합뉴스

문제는 수사권과 영장청구권이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고 보는 헌법학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엔 절차적인 흠결이 과거 사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2020년 12월 오신환 의원이 관련된 권한쟁의 심판 때는 사보임 절차만이 문제가 됐으나 검수완박 법안에선 "꼼수 사보임부터 시작해 위장 탈당, 안건조정위, 본회의, 국무회의까지 모든 게 꼼수였다"(권성동 원내대표)는 입장이다.
검찰은 '검사의 수사권이 침해됐다'는 선언적 결정을 넘어서 헌법 위반에 근거한 법률 무효화 방안을 찾고 있다. 검찰이 이번 권한쟁의 심판과 관련해 헌재에 낸 의견서에는 '법률을 무효화시킬 만한 절차위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실 법률 무효화는 헌법재판소법상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제청을 거쳐야 가능하다. 현재 검찰은 중대한 절차 위반과 내용의 위헌성을 문제 삼아 법 시행 후 구체적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제기하는 헌법소원, 전례는 없지만 국가기관인 검찰총장이나 검사 명의로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하고 법의 무효를 주장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한쟁의 심판의 경우 청구 취지가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침해됐음을 확인해 달라'는 건데 한 발 더 나가 '법률도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고 추가로 청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한쟁의 의결정족수는 헌재 재판관의 과반수, 즉 5명이 찬성하면 인용된다. 황정근 변호사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주장을 안 해서 그렇지, 헌법상의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해 제·개정된 법은 통째로 무효라는 결정을 헌재가 할 수 있고 할 필요도 있다"며 "다수당의 입법 폭주가 반복되고 있는 건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 법안의 생사여탈권은 헌재가 쥐고 있다. 헌재는 문재인 정부 때 재판관 9명 중 8명이 교체되면서 진보 우위로 바뀌었다. 진보 성향의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이석태·김기영 등 4명에 이미선(51·26기) 재판관이 주요 결정의 판도를 끌어간다.
안창호 전 헌재 재판관은 "헌법 12조의 적법절차 준수는 모든 권력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입법부라고 예외가 아니다"며 "헌재가 오로지 헌법 가치와 헌법 질서 수호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헌재가 계속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또 다른 형태의 재판 거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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