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완 부홀렉의 경이로운 세계
한국에서는 ‘더 세리프 TV’ 디자이너로 유명한 부홀렉 형제는 제품의 실용적 측면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니멀한 디자인을 부각시켜 독창적인 디자인 세계를 써 내려가는 세계적 형제 디자이너다. 둘의 공통점은 산업디자인을 넘어 자신만의 창조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으로 형 로낭은 손으로 캔버스에, 동생 에르완은 컴퓨터 코딩 작업으로 자신만의 아트워크를 이어가고 있다. 〈엘르 데코〉의 두 번째 북 에디션을 기획하면서 렌티큘러로 제작할 이번 커버 아트워크에 어떤 아티스트가 적합할지 고민한 끝에 에르완 부홀렉에게 신작을 의뢰하기로 했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마감이 한창이던 어느 날, 한 장의 디지털 레터와 함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시골집 이야기와 부르고뉴 지역의 지도를 형상화한 지오메트릭 아트워크, 뉴 패브릭 작업, 한국에서 영감받은 컬러들과 신작 드로잉 ‘퓨처 패스트(Future Past)’ 시리즈 세 점을 보내왔다. 그가 쓴 편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아트워크로 손색없기에 별도의 번역 없이 소개한다.
신작을 의뢰했을 뿐인데 곱절의 이야기가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능과 직감이 자연의 땅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람이 만든 것과 자연이 가진 야생성에 관심이 많은 이유다. 몇 년 전 나는 아내, 친구 한 명과 부르고뉴에 있는 오래된 농장과 근처 토지를 매입해 건축물을 재건해 왔다. 이곳 생활은 내가 자라온 생활로 돌아가는 과정 같았고, 굉장한 힘을 주었다. 거칠고 단순한 생활이었지만 재밌는 상황들이 계속 이어졌고, 이런 일련의 과정은 디자인 작업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나는 코딩으로 아트워크 작업도 하고, 나무로 스툴 같은 물건도 만들고, 그렇게 완성한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샤를로트 뷔아르 부네송(Charlotte Vuarnesson)과 기욤 르 데브아(Guillaume le De′ve′hat)라는 두 건축가와 함께 비워내고 다시 채운 이 시골집은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기 위한 공간 프로젝트였고, 대부분의 재료는 이미 그곳에 있거나 가까운 곳에서 공수한 것들이었다. 우리끼리 ‘BackFutureHome’이라고 이름 지은 이곳의 이야기와 내 작업이 맞닿아 있는 요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디지털 드로잉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디자인하는 과정은 반복 작업을 통해 하나의 룰을 정의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과정에서 코딩을 많이 사용하고, 그 코드 속에서 자연과의 관계도 도출해 내는 편이다. 대부분의 디자인은 아주 오랫동안 의미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순간성’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예술적인 드로잉은 우리가 직접 느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나는 한국 독자들에게 내가 느낀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디자이너로서 스케치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 같다. 그렇다면 디지털 드로잉 연작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결론적으로 두 작업의 숨은 에너지는 같다. 그러나 이 작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개념에 가까운데, 특정 질문이나 미스터리에서 출발한다. 반대로 디자인은 명확한 걸 추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목적 면에서 굉장히 다르다. 나도 온전한 예술 작업으로 보지 않는다. 디자인과 드로잉 중 선호하는 것은 두 작업은 상호보완적이라 모두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내 그림은 결국 디자이너가 그린 것이므로 아트 신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팬들을 위해 완성한 신작 드로잉의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 내 작업은 엄청난 양의 사실들로 구성되는데, 이런 사실을 전체적 시야를 가진 구성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엘르 데코〉 코리아를 위해 그린 그림은 한국에서 찍은 사진에서 영감받은 작업이라 무엇보다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자주 방문했고, 한국 문화와 한국인을 정말 좋아한다. 이상하게 한국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에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정말 멋진 컬러와 밝음, 강함과 활기참이었다. 언젠가 이런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울 곳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많은 종류의 생선과 해산물, 강렬한 컬러의 플라스틱 바구니, 엄청나게 많은 스크린이 섞여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 내가 그린 많은 드로잉은 그곳에서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하나, 동대문에서 찾을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제품들이 지닌 형태와 컬러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본 경험과 이미지들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토대가 됐다. 부디 한국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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