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박찬욱·송강호가 2022년 칸에..20년 뒤 한국영화는?
오월의 칸은 흥미로웠다. 21편의 경쟁작 중 동아시아 지역 영화는 두 편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미국 자본으로만 제작된 영화도 두 편이었다.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과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쇼잉 업’. 이란에서 온 사에드 루스타이 감독의 ‘레일라의 형제들’을 제외하면 16편은 유럽 영화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영화가 두 편이라는 건 이례적이다.
두 편을 선택한 게 ‘한국 영화’ 자체만을 의식한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레에다 감독은 2018년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기생충’보다 한 해 빨랐다. ‘브로커’에는 ‘기생충’ 주인공 송강호가 포함돼 있으니 칸이 이 영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는 탕웨이가 등장한다. 두 편의 한국 영화는 칸이 의식하는 동아시아 영화 리스트로 확장된다.
이것이 한국 영화 산업의 현 지형이다. 동아시아를 아우른다. 피상적으로 언급되는 K-콘텐트 유행과 다르다. 팬데믹과 함께 만개한 OTT 시장 덕분에 한국 드라마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동시대성’을 갖췄다. 하지만 국제적 협업인 영화 제작은 단박에 동시대성을 갖기 어렵다. 고레에다 감독이 오래전 송강호에 관심을 표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는 영화 구상은 2016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함께 칸에 입성했다.
박찬욱 감독은 2016년 ‘아가씨’를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보인 후, 영국 BBC에서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제작했다. 이 드라마는 박찬욱 혹은 한국 영화계가 경계를 넘어서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2020년 ‘기생충’으로 골든글로브 시상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는 한국 영화의 행보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2022년 칸은 그 결과가 등장한 또 다른 곳이었다. 한국어와 탕웨이의 중국어가 통해야 하는 ‘헤어질 결심’의, 일본어와 한국어가 통해야 하는 ‘브로커’의 제작 현장은 ‘한국 영화’의 이름으로 영화라는 보편성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조금 더 내다볼 필요가 있다. 1인치를 넘어서는 여러 제작 방식이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니라, 예외적인 개인을 통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역량 있는 감독이 자국을 벗어나 새로운 보편성을 만들어가는 시도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미국에서 SF를 제작한다. 익숙한 현실은 아니다.
한국 영화가 칸 경쟁 부문에 등장한 건 21세기였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2000년 칸에서 선을 보였고, 2002년에는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임상수의 영화가 칸의 경쟁 부문에 올랐고,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올해 비평가 주간 폐막작으로 상영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나 최근 꾸준히 초대되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의 ‘헌트’ 등 칸의 다른 부문에서도 한국 영화 상영이 늘어갔다. 현재 한국영화는 지난 20년간 축적된 결과다.
문제는 항상 다음이다. 새로운 박찬욱이나 봉준호는 어떤 방식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등장한 게 2003년이다. 그 무렵 한국영화는 새로운 감독들의 등장으로 빅뱅을 일으켰다. 올해 칸의 경쟁은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로 대변된다. 우리는 그 시절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한 건 아닐까. 지금의 한국 영화계였다면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을 제작하는 게 가능했을지 묻게 된다.
올해 칸을 통해 드러난 한국 영화의 여러 면모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영화는 밖으로 나가는 동시에, 안으로도 파고들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야 두 번째 황금종려상이든, 새로운 감독을 위한 황금 카메라상이든, 새로운 오월의 칸을 맞을 수 있다. 새로운 영화가 있을 때 우리는 칸에 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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