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쇼크' 경기 침체로 이어질까.. 소비 위축 가시화

배준희 입력 2022. 5. 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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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의 시작은 매출 감소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기업 이익을 가격(P)과 수요(Q)의 함수로 도식화한다면 작금의 기업 입장에서는 Q를 방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다. 매출 성장률이 꺾인다면 지금 같은 초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비용 압박을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 전가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Q의 감소에 따른 비용 충격은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부터 하나둘 충격이 전염되면서 강도 높은 비용 통제에 돌입하고 ‘인건비 감축 →가계 실질소득 감소→매출 감소 가속화’의 악순환 고리에 갇힌다.

초인플레이션으로 세계 경제가 신음하는 가운데 미국의 거대 유통 기업이 부진한 실적을 내자 경기 침체의 서막이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경기 침체 논쟁을 집중 분석한다.

▶경기 침체 신호탄?

▷실물 시장 침체 우려 대두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중 가장 설명력이 높은 것은 소비다. 이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는 초인플레이션 국면 아래 소비 관련 실물 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그러던 중 우려할 만한 대목이 불거졌다. 최근 미국 양대 유통 기업이 부진한 실적을 내놓자 소비 침체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미국 양대 유통 기업인 월마트와 타겟이 ‘어닝 쇼크’를 기록한 것이 발단이 됐다. 타겟의 1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3%가량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나빠졌다. 주당순이익(EPS)은 약 2달러로 월가 전망치 3달러를 밑돌았다. 1분기 영업이익률은 5%로 1년 전(10%)보다 반 토막 났다. 브라이언 코넬 타겟 최고경영자(CEO)는 “유류비와 물류비, 직원 보상비용 등이 치솟아 예상한 것보다 수익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코넬 CEO는 최소 8%였던 타겟의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6%로 낮췄다.

시장 우려를 키운 대목은 매출이었다. 타겟은 식료품 등 필수소비재 수요는 여전히 강하지만 TV 같은 일반 상품 판매는 예상보다 적었다고 설명했다.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싼 자체상표(PB) 상품을 더 많이 사고 있다고도 했다. 이런 설명이 미국 소비 시장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유통 기업 수장의 입을 통해 전해지자 시장 충격은 상당했다.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 그마저도 가격이 저렴한 품목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확인되자 경기 침체 우려가 대두됐다.

실물경제를 집어삼킨 ‘인플레이션 쇼크’가 경기 둔화로 연결되는 경로를 세분화해 풀어보면 이렇다.

기업 비용은 크게 변동비와 고정비로 구분된다. 통상 변동비는 매출과 상관관계가 높은 항목으로, 매출원가나 물류비 같은 항목을 떠올리면 된다. 고정비는 인건비, 임차료 등이 포함된 판매관리비가 대표적이다. 매출이 얼마를 찍든 임직원 월급은 지급해야 하고 물건을 팔려면 매장 임대료도 줘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정적인 비용(fixed cost)이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업종을 막론하고 변동비 압박이 가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고정비를 쥐어짜 비용 수준을 낮추거나 단위비용당 매출을 증가시켜 손익 구조를 효율적으로 손봐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국면에서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유례없는 인플레이션 흐름이 맞물려 대부분 기업 판관비(고정비) 부담마저 커졌다. 가령, 오프라인 유통 기업은 물건을 판매할 공간이 필수적이므로 매출을 늘리려면 고정비 부담이 큰 유형자산과 노동력을 추가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고정비 부담이 큰 상당수 기업에서는 ‘영업레버리지의 역습’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고정비가 존재하는 비용 구조 아래 매출 증대에 따른 이익률 개선을 ‘영업레버리지’ 효과라고 부른다. 이는 비용 구조가 변동비로만 이뤄져 있을 때보다 고정비가 존재함으로써 매출액 증가율보다 영업이익의 증가율이 더 큰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고정비가 영업이익을 움직이는 효과를 빗대 ‘레버리지(지렛대)’라고 부른다. 매출액 상단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영업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고정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매출 감소가 불어닥쳤을 때 매출 감소 비율보다 이익이 더 큰 폭 줄어드는 ‘영업레버리지의 역습’을 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비용 구조의 누수를 방지하고 효율화하는 데 제한이 따르는 상황에서 매출마저 정체 내지 역성장하는 장면이 연출되자 출구 없는 경기 침체 우려가 닥칠 것이라는 공포가 금융 시장을 짓눌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美 CEO 57% “침체 피할 수 없다”

▷짧은 침체 대비할 필요

상황이 이렇자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 중이다.

미국에서는 기업 CEO 절반 이상이 앞으로 리세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을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경기 순환 국면을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GDP 성장률이 감소(마이너스 성장)하면 경기가 리세션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GDP 성장이 아예 멈추거나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수준이 상승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결합한 용어다. 단,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실물경제에서 다시 목격된 적은 없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는 최근 2분기 CEO 신뢰지수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가 “앞으로 몇 년간 물가 상승률이 내려가겠지만 미국은 매우 짧고 약한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0%는 “물가 상승률이 향후 몇 년간 계속 높은 수준일 것이며 미국의 성장이 상당히 느려질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을 예상했다.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이 잡히는 연착륙을 전망한 CEO는 12%, 미 경제가 심각한 경기 침체에 직면하는 경착륙을 예상한 CEO는 11%였다.

최근까지 목격된 여러 상황과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콘퍼런스보드의 조사 결과처럼 물가의 ‘피크 앤 하이’ 패턴이 유지되는 가운데 짧고 약한 침체를 겪는 경우다. ‘피크 앤 하이’ 패턴은 물가 수준이 직전 고점보다는 낮지만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흐름을 뜻한다.

김현 다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기존보다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공급망 관련 물가 상승 압력과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식량 물가, 그리고 완만한 속도로 상승세가 둔화되는 원자재 가격 등이 공존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점 확인 후 완만한 하락을 진행하는 ‘피크 앤 하이’ 형태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현 상황에서는 그나마 차선의 시나리오로 평가된다. 엄밀히 말해,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짧은 기간 실물경제의 수요 감소가 목격되더라도 이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작금의 공급망 병목 현상은 단기에 급증한 현 시장의 수요를 공급망이 감당할 만큼 따라가지 못해 빚어진 현상이다. 달리 말해, 시장과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요 감소가 발생하면 공급 측면의 ‘쇼티지 쇼크’가 일정 수준 상쇄되면서 상품과 서비스 거래가 활발해지고 이를 통해 시장이 다시 균형 상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1994년 연착륙 재현 가능성 낮아

▷최악은 디플레이션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앙은행의 강력한 긴축이 실질금리 급등으로 이어져 기업의 성장률이 훼손되고 그 결과 자산 시장이 무너지는 등 디플레이션의 현실화다. 초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욱 치명적이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소비의 절대적인 수준이 다소 감소할 수 있지만 소비 행위 자체를 멈추지는 않는다. 필수소비재 품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가령, 우리 돈 2000원가량 하는 콜라 한 병이 2100원이 되고 2300원이 되더라도 콜라를 사 먹는 행위 자체를 멈추지는 않는다. 구매 빈도가 다소 줄어드는 패턴을 보일 뿐이다. 1분기 미국의 유통 기업에서 저가 품목으로 소비 행위가 압축적으로 이뤄지는 장면이 목격된 것이 단적인 예다.

반면, 디플레이션은 이야기가 다르다.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소비자들은 구매 행위 자체를 망설이고 이는 ‘소비 절벽’으로 이어진다. 가령, 2000원짜리 콜라 한 병이 다음 날 1900원이 되고 그다음 날 1800원이 될 것 같다면 소비자들은 구매 행위를 아예 포기한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 명확하므로 굳이 상대적으로 비싼 값을 치르고 ‘오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미 연준이 기업이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수준으로 금리를 인상해 ‘질서 있는 경착륙’을 얼마나 잘 이끌어내느냐다. 지금까지 보여온 연준의 경기 진단이 국면마다 적절했는지에 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연준 내부는 물론 외부 전문가도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연착륙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과거 연준이 금리를 올려 경기 후퇴 없는 연착륙이 이뤄졌던 때는 1965년과 1984년, 1994년 등 딱 3번 있었다. 하지만 당시 거시경제 여건과 지금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똑같은 경로를 거쳐 연착륙을 가능케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가령, 미국은 1993~1994년 동안 설비 투자가 연간 10% 이상 증가하는 등 과잉 투자 조짐이 목격될 만큼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고용 상황이나 산업 구조도 다르다. 당시는 정보기술 혁명으로 신기술이 직장에 대거 도입되면서 베이비붐세대의 노동 생산성이 절정에 달했다.

연준의 경기 진단도 차이가 있다. 1994년 연준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경기 호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플레이션이 닥치기 전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반면, 현재 연준 의장인 파월은 인플레이션을 수치로 확인하고 나서야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여 국면마다 경기 대응 능력을 두고 논란을 자초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10~20% 정도로 보지만 공급 충격이 심화하면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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