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과도한 몸값 팍팍 낮춰라..
'先 장악·後 수익' 비즈니스 모델 전면 재정비해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수선화에게-정호승>
울지 마라/ 돈이 없으니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배고픔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투자자를 기다리지 마라/ 거품이라면 거품을 걷어내고/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면 몸값을 팍팍 낮춰라…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읽다 문득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한없는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모양새가 다를 것 없다 싶어서였을지도요.
시 제목이 왜 ‘수선화에게’일까 하는 물음표를 던지곤 했습니다.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왠지 수선화가 스타트업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선화의 학명은 ‘나르시스’입니다. 아름다운 목동 나르시스는 수많은 요정의 구애를 받지만 매몰차게 돌아서죠. 어느 날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를 사랑하게 되어 붙잡으려 물속에 손을 넣지만 잡힐리가요. 이내 흔들려 사라지는 얼굴을 잊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 그만 숨을 거둡니다. 나르시스가 쓰러진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었고,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것’을 뜻하는 ‘나르시시즘’ 단어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스스로를 너무도 사랑한, 그래서 실체 없는 거품을 만들어낸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너무 비약이려나요?
“스타트업에 대한 신규 투자 규모를 지난해 대비 절반 또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최근 연간 실적 발표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소프트뱅크가 운용하는 세계 최대 벤처 투자 펀드인 비전펀드는 지난 회계연도에 34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죠. 초저금리 기조와 팬데믹 시기 급격한 디지털 전환에 힘입어 지난 몇 년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던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습니다. 당연히 스타트업들은 사색이 됐을 수밖에요. 자금 수혈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적 압박까지 받기 시작한 일부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에도 나섰고요.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술 스타트업의 파티는 끝났다”고 표현했습니다.
높은 몸값에 취하고 ‘투자금도 가려 받는다’고 할 정도로 콧대가 높았던 스타트업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거품이 꺼지는 과정일 뿐, 창업 생태계는 여전히 매력적인 분야다”라고 하지만, 이 혹한기가 언제 끝날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즈니스 모델’부터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선 장악, 후 수익’을 외치며 아무리 적자폭이 크더라도 아랑곳 않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식의 성장 전략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죠. 이젠 정말 알짜 스타트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스타트업 옥석 가리기의 모든 것, 이번 호 매경이코노미에서 만나보시죠.
[김소연 부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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