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일타쌍피'의 유혹
더불어민주당이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완화하는 법안을 발표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다. 문재인정부 5년간 ‘다주택자=투기’란 프레임에 갇혀 계속 때리기만 했던 모습만 봤기 때문이었을까. 민주당은 당 정책위 차원에서 보도자료까지 내고 “불합리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 따라 발의된 법”이라며 “서민과 중산층의 세 부담을 크게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아무래도 일부 다주택자를 포함해 주택 보유자에게 마치 “우리, 달라졌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법 개정안이 공개된 뒤 시장 반응은 민주당 예상과는 정반대 같다.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1주택자들까지도 반발이 나온다. 국회에 제출된 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 개정안은 납세 의무자를 규정한 종부세법 7조에 다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11억원 초과로 명시했지만, 정작 법 8조에 규정된 과세표준에 대한 공제액은 바꾸지 않았다. 즉 자신이 보유한 주택의 공시가격 합계가 11억원 이하인 다주택자는 종부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되지만, 11억원에서 10원이라도 초과한 다주택자는 공제액이 그대로니까 세금 감면 혜택이 전혀 없는 셈이다. 민주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종부세를 내는 다주택자 수는 48만6000명에서 24만90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지만 24만9000명의 세 부담은 전혀 줄지 않는다.
지지층이 싫어하는 ‘부자 감세’ 프레임은 피하면서 일정 기준 이하 다주택자에게 세금 감면의 달콤한 제안을 던진 셈이다. 종부세 경감 혜택을 전혀 못 받을 다주택자 24만9000명은 공교롭게도 2020년 기준 전체 주택 소유 가구(1173만 가구)의 2% 수준이다. 지난해 종부세 고지서를 받는 납세자가 94만명까지 치솟자 민주당은 “국민 98%는 무관한 이야기”라며 종부세를 내는 2%와 나머지 98%를 편 가르기 했는데 이번에는 대상이 전 국민에서 주택 소유 가구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에 민주당은 종부세 과세표준을 매길 때 대통령령(시행령)으로 60~100% 사이에서 정할 수 있는 공정시장가액비율 관련 규정을 “어차피 올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이 100%”라며 개정안에서 삭제했다. 윤석열정부가 국회 허락 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 보유세를 낮출 수 없도록 견제 장치까지 둔 것이니 정치적으로는 그야말로 ‘일타쌍피’ 카드다.
하지만 노림수가 너무 많다 보니 허점도 적지 않다. 개정안대로면 합계 공시가가 10억9000만원인 다주택자는 종부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반면, 11억1000만원인 다주택자는 1000만원 넘게 종부세를 낸다. 저가 다주택자와 고가 1주택자 사이 조세 형평성을 개선한다면서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한 셈이다. 게다가 윤석열정부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해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부담 완화를 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공정시장가액비율 규정을 삭제하는 건 종부세를 내는 1가구 1주택자에게는 사실상 증세로 비친다. 그러니 반발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은 2년 전에도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달성하려다 탈이 났던 적이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는 7·10 대책에서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낮춘다’는 상식과 달리 다주택자 종부세 세율을 최대 3.2%에서 6.0%까지 2배로 올리고 양도세까지 10% 포인트씩 추가 중과했다. 곧이어 임차인 주거 안정을 내세운 ‘임대차 3법’까지 통과시켰다. 다주택자에게 ‘억 소리’ 나는 보유세를 물려 집을 팔게 하고, 양도세로 불로소득까지 철저히 환수하고, 임차인 주거 안정까지 보장하면 ‘부동산 문제는 해결’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펼쳐진 결과는 이미 우리가 경험한 모습 그대로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정권까지 내줬지만 아직 민주당이 실패를 통해 배우기에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아니면 다가오는 선거 때문에 마음이 급했거나.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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