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투자 광풍 시대의 횡령 범죄

김경택 2022. 5. 3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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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거액의 횡령 범죄가 자주 적발된 때가 있었을까.

일반 기업뿐 아니라 신뢰를 담보로 하는 금융회사에서도 횡령 피의자들이 잇따라 덜미를 잡혔다.

금융 당국 한 관계자는 "최근 횡령 사건은 죄다 작정한 범죄 같다"면서 과거 자신이 조사했던 횡령 사건을 언급했다.

이런 횡령 범죄를 막으려면 당연히 회사 내외부의 통제·감시 장치를 강화하고 범죄자를 엄단하는 법제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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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택 경제부 차장


올해처럼 거액의 횡령 범죄가 자주 적발된 때가 있었을까. 일반 기업뿐 아니라 신뢰를 담보로 하는 금융회사에서도 횡령 피의자들이 잇따라 덜미를 잡혔다.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탓이었을까.

금융 당국 한 관계자는 “최근 횡령 사건은 죄다 작정한 범죄 같다”면서 과거 자신이 조사했던 횡령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횡령범은 100억원가량을 빼돌려 금을 샀다는 증빙 자료까지 갖고 있었는데 그만 통째로 금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불안한 마음에 금을 사서 차에 싣고 다니다가 모두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 현금으로 놔두면 다 써버릴까, 누가 가져갈까 하는 걱정이 들어 비교적 안전한 금으로 바꿔 숨겨 놨는데 모두 도둑을 맞았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였다. 물론 범죄 수익을 은닉하려던 범죄자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는 출소한 후 금을 찾아 현금화에 성공하면 형사처벌의 보상을 받고도 남는다는 판단에 치밀한 범죄를 구상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정말 작정한 범죄가 많았던 것 같다. 우리은행 직원은 6년간 은행 계좌에 있던 614억원을 빼내 상당액을 주식 투자에 썼다. 최근 수사 과정에선 동생의 페이퍼컴퍼니로 약 50억원을 보낸 혐의도 드러났다. 10년간 돈이 빠져나가는 줄도 몰랐던 우리은행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직후 이 직원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았다. 뜻밖의 자수에는 횡령한 돈만 잘 세탁해 놓으면, 최소한의 수감 생활 이후 남은 삶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법하다. 횡령 기간은 이미 돈을 감춰 놓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16년간 4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새마을금고 직원도 얼마 전에 자수했다. 범행 수법은 기존 고객의 적금 만기 등이 다가오면 새로운 가입자의 예금으로 막는 식이었다. 경찰 수사에 압박을 느껴 자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수에 따른 감형을 내심 기대하면서 자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들 공통점은 장기간 돈을 만지는 업무를 해온 사람이라는 점이다. 새마을금고 직원은 30년간 고객 예금 관리 업무 등을 맡았다고 한다. 그의 오랜 노하우는 고객들의 예금·보험 상품을 해지해 돈을 빼돌리는 범죄에 활용됐다. 우리은행 직원은 본점에서 10년가량 근무한 차장급으로, 자신이 관리하던 계좌에 있던 돈을 횡령했다. 앞서 자동차 부품 회사인 계양전기에서 24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붙잡힌 직원도 재무팀 소속이었다.

임플란트 제조업체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2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명 ‘파주 왕개미’는 이 회사 재무팀장이었다. 만약 이들이 몰래 빼돌린 돈으로 투자 수익을 계속 냈더라면 아마 더 오래 감시망을 피했을 수도 있다. 이런 횡령 범죄를 막으려면 당연히 회사 내외부의 통제·감시 장치를 강화하고 범죄자를 엄단하는 법제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범죄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자는 말로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팬데믹 시대와 함께 불어닥친 투자 광풍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베팅만 하면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다던 국내 주식시장은 이제 바닥을 언제 칠지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코인으로 몇 십억, 몇 백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도 당분간 듣기 어려워졌다. 판 커진 도박장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도박꾼들이 다른 매력적인 도박장을 찾아다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대개 삶 전체를 판돈으로 건 도박에서도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시인 보들레르가 삶의 진짜 매력을 “도박의 매력”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흥행에 성공할 또 다른 도박장이 어디에 개설될지가 궁금하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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