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지난 4월 중순부터 국악계가 한바탕 시끄러웠다.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이 발표되자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 한국국악협회 등 국악 관련 130여 단체가 성명을 내고 새 교육과정 시안의 부당함을 성토했다. 5월 15일에는 ‘국악 교육의 미래를 위한 전 국악인 문화제’가 열렸는데 여기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까지 나서서 울먹이며 국악 교육의 정상화를 호소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교육부가 발표한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에 국악 관련 내용이 빠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발표되면 교과목마다 ‘성취기준’이란 항목이 제시되는데 이것이 학교의 수업과 평가 그리고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이 성취기준에 따라 교과서가 편찬되고 일선 학교의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에는 6개 항목의 성취기준 속에 국악에 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즉 음악 과목의 성취기준에는 그 속에 국악의 어떤 요소와 개념을 학습해야 하는지도 제시돼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국악인들은 새 교육과정 시안이 서양음악 위주로 편성돼 국악이 배제되거나 축소됐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국악 내용은 삭제되거나 축소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새 교육과정 시안 연구팀은 “국악 내용의 삭제가 아니라 교육학적 설계 원리 및 새로운 문서 양식으로 통합, 재배치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교육부 측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새 교육과정이 서양음악 위주로 편성됐다는 의심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안 개발 연구진 대부분이 서양음악 전공자로 구성된 점만 보아도 그렇다. 또 기존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들어 있던 ‘음악 요소와 개념 체계표’도 이번에 빠졌는데 여기에는 자진모리, 중모리, 시김새, 한배 등 국악의 고유 용어를 서양음악의 용어와 구분해서 명시했었다. ‘음악 요소와 개념 체계표’를 삭제한 것은 세계 보편성과 편의성을 이유로 국악 고유 용어를 서양음악 기준의 공통 음악 용어로 일원화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사안이 국악계의 반발을 산 것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 초중등 학교의 음악 교육은 서양음악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2015년의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국악이 약 30%의 비중을 차지하게 됐는데 이제 다시 2015년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국악인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국악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5월 16일 “국악계의 우려를 반영해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국악 관련 내용이 들어가도록 1차 연구 최종 보고서에 반영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장단(長短)이나 율명(律名) 등 국악 고유 용어가 적힌 ‘음악 요소와 개념 체계표’도 삭제하지 않고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음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양 일변도의 교육을 받아왔고, 압도적인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다. 다행히 지금은 여러 분야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서양의 문화가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그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편식하는 것이 세계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자각이 일어난 것이다.
문화는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그리고 문화는 그 다양함으로 인해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 간다. 생각해 보라. 모든 사람의 얼굴이 똑같다면, 모든 문화가 획일적이라면 얼마나 단조롭고 또 지루할 것인가!
음악만 해도 그렇다. 서양음악이 들어오기 전 우리는 적어도 천여 년 동안 국악을 연주하고 향수(享受)해 왔다. 국악에는 우리만의 가락과 흥이 배어 있다. 이것은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우리 고유의 개성이다. 그리고 이 개성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과 서양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 그저 다를 뿐이지 어느 얼굴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악과 서양음악은 그 질적 우수성을 따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 보편성이라는 잣대로 국악 고유의 용어를 서양음악 기준의 공통용어로 일원화하려는 시도도 재고돼야 마땅하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평범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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