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칸 2관왕..박찬욱 "범아시아 영화 더 많이 나오길"

나원정 2022. 5. 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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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상
'브로커' 송강호 남주연 韓최초

한국영화가 100년 역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본상 2관왕을 차지했다. 28일(현지 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브로커'의 배우 송강호가 한국 최초 남우주연상을,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2009년 ‘박쥐’로 함께 칸을 찾아 심사위원상을 받은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나란히 수상하는 진풍경을 빚었다. ‘브로커’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 배우들과 한국에서 찍은 첫 한국영화다. 한국영화 2편이 같은 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동시 수상한 것도, 외국 감독이 찍은 한국영화로 수상한 것도 모두 처음이다.

영화'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첫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이 28일(현지 시간) 폐막식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AP=연합]


안소니 홉킨스·비고 모텐슨 제치고 송강호


영화 '브로커'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받은 한국 최초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가 상패를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
송강호는 칸영화제 7번째 참가 만에 첫 수상이다. ‘아마겟돈 타임’의 안소니 홉킨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의 비고 모텐슨 등을 제쳤다. 폐막식 무대에서 “메르시 보꾸”라고 불어로 감사부터 전한 그는 “수많은 영화팬 여러분께 이 영화를 바친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4년 일본 배우 아기라 유야가 ‘아무도 모른다’로 역대 최연소인 열네 살에 상을 받은 이후 아시아 배우로는 18년 만이다. ‘아무도 모른다’ 역시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송강호는 2019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을 비롯해 봉준호‧이창동‧박찬욱 등 한국 대표 감독들과 작업에서는 수상과 인연이 없었으나 고레에다 감독과 첫 만남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칸 현지에서 만난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은 “‘기생충’ 때 받았어야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상”이라 했다.
송강호는 폐막식 후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좋은 작품에 꾸준히 도전하다 보면 최고의 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을 받고) 독려받는 과정이 있는 것이지 상이 절대적 가치라 생각지 않는다”면서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우리 국민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단 한 순간도 나태할 수 없고 노력해야 하는 긍정적 환경을 만든다”고 했다. 상업영화 데뷔작 ‘브로커’에서 미혼모 연기에 도전한 가수 겸 배우 아이유(본명 이지은)는 올해 칸에서 가는 곳마다 글로벌 K팝 팬을 몰고 다니기도 했다.

3번째 수상 박찬욱 "영화관이 곧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과 배우 박해일이 28일(현지 시간) 폐막식 레드카펫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
2004년 ‘올드보이’로 칸 심사위원대상 첫 수상 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은 경쟁부문 수상이 불발됐던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의 신작으로 세 번째 상패를 쥐었다. 박 감독은 영화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폐막식 무대에서 “우리가 이 질병(코로나19)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도, 우리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키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고 믿는다”고 수상 소감을 밝힌 그는 이어 수상자 기자회견에서도 “영화관이 곧 영화”라면서 “각각의 작품에 맞는 플랫폼이 있다. 극장용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폐막식 직후 한국 취재진과 만난 그는 “영화관을 한동안 멀리하다가 다시 찾았을 때 느낀 충격 같은 게 있다. 오랜만에 가서 보니까 와~ 영화란 것이 이런 거였구나, 소명의식 같은 것이 생길 만큼 놀라웠다”면서 “영화가 영화일 수 있는 아주 그런 기본에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다”고 했다.
올해 두 편의 한국영화가 수상한 데 대해 “꼭 한국영화만이어서가 아니라 제 영화에는 중국인 배우(탕웨이)가 나오고 ‘브로커’는 일본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각본과 연출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아시아의 인적 자원과 자본이 교류하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며 “유럽에선 1960년대부터 힘을 합쳐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부러웠다. 앞으로 범아시아 영화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짚었다.

엔데믹 수상 세레모니…함성 유도, 진한 입맞춤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로이터=연합]
올해 칸영화제 폐막식은 코로나19팬데믹 종식을 선언하는 듯한 무대였다. 호화 유람선 무대의 신랄한 계급 풍자 코미디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로 최고상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영화의 독특한 점은 우리가 함께 보는 데 있다는 점이라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관중석을 향해 다 같이“기쁨의 원초적 절규”를 내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2017년 ‘더 스퀘어’ 이후 또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는 스웨덴의 알프 셰베리, 미국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독일의 미카엘 하네케 등 황금종려상 2관왕에 오른 9번째 감독으로 합류했다. 이 그룹에 포함된 벨기에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은 유럽의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된 이민자 아동을 비춘 신작 ‘토리와 로키타’로 신설된 칸영화제 75주년 특별상을 받았다.
이를 비롯해 올해 칸영화제는 별도 마련한 특별상, 공동수상이 쏟아졌다. 칸 영화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 1948년생 프랑스 노장 클레어 드니의 ‘스타즈 앳 눈’, 1991년생 벨기에 신성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가 함께 받았다. 돈트 감독은 2018년 장편 데뷔작 ‘걸’로 칸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뒤 두 번째 장편 만에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며 감격의 눈물을 내비쳤다. 심사위원상은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코녜티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여덟 개의 산’을 공동 감독한 펠릭스 반 그뢰닝엔과 샤를로트 반더미르히가 나란히 호명돼 수상 무대에서 뜨거운 입맞춤을 나눴다.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당나귀의 시선으로 인간세상을 그린 우화 ‘이오’로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한 폴란드의 제르지 스콜리모우스키 감독은 소감 말미에 “이오(EO‧이랴)!”라고 외치며 빼어난 감정 연기를 펼친 극 중 당나귀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럽영화 수상 강세, 특별상·공동수상 쏟아져


여우주연상은 이란의 윤락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실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홀리 스파이더’(감독 알리 압바시)에서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 분한 자흐라 아미라 에브라히미가 받았다. 각본상은 ‘보이 프롬 헤븐’의 타릭 살레 감독에게 돌아갔다. 한국영화를 제외하면 주요 부문 대다수를 유럽, 특히 프랑스어 영화가 차지했다.
올해 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 감이 없다는 기사(유로뉴스)가 날 만큼 경쟁부문이 유난히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매 작품에 대한 평단의 의견이 이렇게 엇갈린 칸영화제는 처음”이라면서 “하지만 후반 며칠 동안 열렬히 환영받는 수작들이 폭발하며 회복했다는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찬욱 감독, 박해일‧탕웨이 주연의 독특한 수사 멜로극 ‘헤어질 결심’은 영화제 기간 각국 10개 평단이 별점을 매기는 ‘스크린데일리’ 등에서 최고 평점(3.2/4점)을 받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은 아니다”(버라이어티)라는 평가가 많았다. ‘브로커’는 ‘스크린데일리’ 평점 1.9에 그치며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뱅상 랭동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예측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 거장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과 동생 뤽 다르덴이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신작 '토리와 로키타'로 75주년 특별상을 받고 포토콜 순서에서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
단편 황금종려상은 중국 영화 ‘더 워터 머머스’의 젠잉 첸 감독이 받았다. 황금카메라상은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초청작이 싹쓸이했다. 미국 영화 ‘워 포니’를 공동 연출한 지나 감멜 감독이 황금카메라상, 황금카메라특별언급상은 ‘플랜 75’의 일본 감독 하야카와 치에가 받았다.
올해는 공로상인 명예황금종려상조차 공동 수상이었다. 17일 개막식에서 미국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가 받은 데 이어 1986년 1편 이후 36년 만에 속편 ‘탑건:매버릭’을 들고 비경쟁 부문을 찾은 배우 톰 크루즈가 받았다.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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