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난 텍사스서 최대규모 총기행사..'2개의 미국'

전웅빈 2022. 5. 2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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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밸디 롭 초등학교 총기 참사가 벌어진 미 텍사스주에서 최대 로비 단체 중 하나인 미국총기협회(NRA)의 연례 컨벤션 행사가 시작됐다. 행사 이틀째인 28일(현지시간) 총기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행사장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행사장이 마련된 휴스턴의 조지 브라운 컨벤션 센터 주변은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반면 행사장 안쪽에선 최신형 무기가 전시됐고, 이를 체험하고 구매하기 위한 총기 애호가들로 가득했다. 한쪽은 총기 규제 강화를, 다른 한쪽은 수정헌법 2조 보호를 위한 정치투쟁을 논의했다. 외신들은 갈라진 미국의 적나라한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신 총을 경험하라’

“자유, 총기, 수정헌법 2조를 기념하는 애국자들과 함께하세요. 14에이커(5만6656㎡)가 넘는 행사장에 인기 있는 회사의 최신 총과 장비가 전시됩니다.”

NRA가 행사를 홍보하며 안내한 문구다. NRA는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이벤트로 올해 행사를 꾸렸다. 행사장에는 골동품 권총부터 최신형 자동 소총까지 다양한 크기의 총기와 탄약이 전시됐다. 수백 곳의 공급업체 직원들이 부스를 마련했다고 한다. NRA는 행사장 실내 부스를 마련한 업체들에 0.3㎡당 21달러씩을 받았다.

총기 참사로 미국 사회 전체가 애도하고 있지만, 행사 참석을 취소한 곳은 ‘다니엘 디펜스’ 한 곳뿐이었다. 이 업체는 참사 때 범인이 사용한 ‘AR-15’를 제작한 업체여서 총기 규제 측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업체 마케팅 부사장 스티브 리드는 “이번 주는 우리 제품을 홍보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CNN에 말했다. 해당 부스는 총기 대신 테이블과 팝콘 기계로 채워졌다.

외신들은 NRA 행사장이 온종일 전국에 온 총기 애호가들로 붐볐다고 전했다. 행사장에 온 많은 사람은 유밸디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했지만, 대부분 총이 아니라 정신 건강과 학교 안전 약화가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NRA 측도 “우리는 이것이 고독하고 정신 나간 범죄자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7살의 오스틴 화이트헤드는 다음 생일 선물로 받을 AK-21 돌격소총을 골랐다. 그는 “유밸디의 일부 희생자와 같은 8살 남동생이 있다. 그런 비극으로부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총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며 “총은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보호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네바다주 엘코에서 왔다는 엘리자베스 톰 박사도 “총이 악한 게 아니다. 총은 자동차처럼 선이나 악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도구”라며 “자동차 사고가 잦다고 차를 나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 중 누군가가 무장했더라면 훨씬 더 상황이 빨리 끝났을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행사장에는 고스트 건(유령 총)을 광고하는 부스도 있었다. 해당 부스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8월부터 고스트 건 구매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지금 당장 구매하라’는 문구가 적혔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스쿨버스는 영구차가 아니다.”

25년간 교육자로 일했다는 다나 엔리케스는 급하게 적은 팻말을 들고 행사장 주변을 오갔다. 그녀는 “예전에는 (교사인 저에게) 아이를 맡기면 안전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안전을 약속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을 촉구하는 엄마들’(Moms Demand Action),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전국교육협회’ 등 총기 규제 옹호 단체 수천 명도 휴스턴 곳곳에 모였다. 컨벤션 센터 건너편에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있었다. 롭 초등학교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부 시위자들은 NRA 회원들이 행사장에 들어갈 때마다 팻말을 흔들고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희생자가) 당신의 자녀일 수 있었다”고 소리쳤다.

아나스타시아 카스트로는 “지난해 형이 총에 맞아 숨졌다. 유밸디에서 사건이 났는데도 이곳에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총기 폭력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 노조 베키 프링글 회장은 “총이 많을수록 더 많은 폭력이 발생한다. 공격용 무기는 금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CNN은 “총기에 대한 미국의 격렬한 분열이 휴스턴 시내에 생생하게 드러났다”고 전했다.

정치권도 분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델라웨어대 졸업식 연설에서 최근 연이어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언급하며 “폭력이 너무 많다. 너무 많은 두려움과 슬픔이 있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비극을 금지할 수 없지만,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는 있다”며 총기 규제법 통과를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 모든 미국인이 손잡고 목소리를 내고 협력해야 한다”며 “파괴적인 세력에 좀 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9일 텍사스주 유밸디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할 예정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NRA 연설에서 “악의 존재는 법을 지키는 시민들이 무장해야 할 최고의 이유”라며 총기 소유를 옹호했다. 그는 “그들(총기 규제 옹호자)은 총기 몰수를 원한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며 “일단 첫 단계를 얻으면 다음 단계가 이어지고, 수정 헌법 2조의 완전한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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