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굴암보다 100년 앞서 제작된 석불이 있다고? [중앙선 역사문화기행]
[최서우 기자]
흔히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굴하면 경주의 석굴암을 떠올린다. 워낙 정교하게 불상을 잘 새기고, 원근법과 같은 각종 조각기법이 총동원되어서 오늘날에도 석굴암에 대한 찬사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사실이다.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도 석굴이 있다. 이름은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는 사람들은 이 부처 앞에서 안전한 여행을 기원했다고 한다.
삼존석굴 북동쪽에도 명물이 있다. 바로 부림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의 전통 돌담길이다. 오늘날의 잘 다듬어진 벽돌로 이뤄진 담장과 달리 투박한 돌들로 이뤄져 있다. 제주도 돌담길처럼 야생이 살아 있는 돌담이라고 해야 할까?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8일 부계면의 두 명물을 보러 길을 나섰다.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은 상주영천고속도로의 동군위 나들목에 가깝다. 나들목에서 내려와 넓게 뚫려 있는 79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오면 오른쪽 편으로 삼존석굴로 가는 길이 보인다. 대구광역시나 호남지역에서 출발한다면 중앙고속도로 동명동호 나들목에서 내려, 동명지에서 79번 지방도를 따라 팔공산터널을 타고 오면 된다.
▲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좌상. 9세기 말에 만들어진 신라시대 불상이다. 왼쪽 파인애플과 그 아래 오렌지, 바나나가 눈에 띈다. |
ⓒ 최서우 |
불상을 보니 상당히 자비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라 마음이 평안해진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어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불상에 동전을 남기고 갔다. 불상 아래에는 수많은 과일을 공양한 것 같은데, 특히 왼편의 파인애플과 그 아래에 있는 오렌지와 바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특히 이런 날 부처님께 공양할 때는 전통 과일로 엄격하게 선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로자나 부처께서도 세월의 변화를 인정하신 것인가?
▲ 군위삼존석굴 모전석탑. 1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 있다. 무너집 탑을 근래에 쌓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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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에 가까이 가보니 중앙의 아미타불의 모습이 특이하다. 경주 석굴암과 달리 양쪽 어깨가 다 옷으로 덮여 있고 상체의 묘사가 상당히 뛰어나다. 하지만 하체의 경우 발이 드러나지 않고 옷 안에 가려졌는데, 좁은 석굴에서 석상의 무게를 줄이는 대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장인의 고민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 부처님오신날에는 석불을 바로 앞에서 뵐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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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앞에서 본 아미타여래 삼존석굴.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아미타부처 왼쪽은 대세지보살. 오른쪽은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 뒤 광배의 일부는 당삼채 양식으로 조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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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봤을 때 아미타부처 왼편에 있는 이는 대세지보살상, 오른편에 있는 이가 관세음보살상이다. 특히 관세음보살상의 연꽃무늬 광배가 상당히 인상 깊은데, 일부가 당나라의 삼채 양식으로 이뤄져 있다.
아미타불의 턱과 관세음보살의 광배는 이곳이 신라의 통일이전과 당풍의 양식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삼국통일 이후까지 제작된 석굴임을 증명한다. 또한 최초 조성연대가 경주 석굴암보다 약 100여 년 빠르다는 것을 말한다.
좁은 공간에서 불상의 무게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어찌보면 군위 삼존석불이 있었기에 경주의 석굴암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 석굴암 제작자 김대성이 군위 석굴도 참조했을지 궁금해진다.
한밤마을 돌담길
아미타부처를 뵙고 북동쪽에 있는 한밤마을로 향했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삼존석불에 이어 보물 제988호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보호수로 보이는 아름드리나무가 하나 보이는데, 이 마을에도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 마을 앞 아름드리 나무 - 한밤마을의 신성함은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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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뢰 장군과 그의 조카 홍경승 선생의 추모비. 이 곳이 부림 홍씨의 집성촌임을 말해준다. 묘비 앞 잔디밭은 임진왜란 시절 홍 장군이 주민들을 의병으로 훈련했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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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두 분의 성씨가 부림 홍씨다. 오늘날까지도 이 가문의 종택은 여기에 있어 이들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시조는 고려 중기 재상을 지낸 홍란. 그는 원래 대야(大夜)였던 이 마을을 대율(大栗)로 고쳤는데, 어둔 밤 '야' 자가 불길하다고 해서 먹는 밤인 '율' 자로 고쳐 부르게 한 것이다. 대율을 우리말로 풀면 한밤. 이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실제 이 마을에 밤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 보물 제988호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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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길의 시작 - 길이 상당이 좁은데, 소가 지나갈 수 있는 만큼의 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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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마을 돌담길 - 옛 전통기와와도 잘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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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부계면의 두 명물인 군위삼존석굴과 한밤마을. 석굴은 자연동굴에 새겨진 신라시대 모습 그대로, 한밤마을의 돌담은 처음 쌓은 모습 그대로 남았다. 만든 이후 사람의 손이 덜 타고 거의 그대로 두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보호해야 할 명물로 된 것이 아닐는지? 군위삼존석불의 자비가 아미타불을 참배하러 오는 보살들과 한밤마을에도 가득하기를 원하며 길을 나섰다.
▲ 한밤마을의 중심 - 대율리 대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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