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다중이 히어로'의 매력

장혜령 2022. 5. 28. 12: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OTT 리뷰] 디즈니플러스 <문나이트>

[장혜령 기자]

 디즈니플러스 [문나이트] 스틸컷 (IMDb)
ⓒ 디즈니플러스
 
3월 30일 공개 후 매주 한편씩 공개된 6부작 [문나이트]는 마블 사상 거침없으면서도 이질적인 히어로의 탄생을 알렸다. MCU와 연결고리가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연관성이 극히 적다. 단독 콘텐츠라 할만한 독립성이 보인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히어로다. 신비롭고 매력적인 이집트 신화로 중무장해 그 특별함은 배가 된다.

오은영 박사를 소환해야 할 것 같은 상처 받은 금쪽이었던 과거사가 중반부 펼쳐진다. 사실 마크는 해리성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다. 과거 동생 죽음의 죄책감과 엄마의 정서 학대로 이어진 트라우마는 자아 분열을 유발했다. 안타깝게도 이를 이겨내기 위해 정반대 성향의 자아 스티븐을 만들어 친구이자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결국 MCU는 트라우마나 장애를 가진 사람도 히어로가 될 수 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일원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스티븐, 마크, 추후 밝혀지는 가장 폭력적인 제이크라는 인물까지. 세 캐릭터가 한 사람의 자아인 셈이다.

그동안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히어로는 있었지만 자아 분열로 힘겨워하는 일은 없었다. 해리성 장애는 주로 빌런의 몫이었고 대체로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었다. 히어로라 하기엔 무리, 무엇보다 치료가 시급한 환자다. 하지만 [문나이트]의 본체는 이 단점을 적극 이용한다. 본인도 버거워 어쩔 줄 몰라라는 핸디캡을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이고야 마는 것. 저주인지 모를 병을 자신만의 능력치로 끌어올리는 주인공은 이상하지만 매력적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다중이
       
 디즈니플러스 [문나이트] 스틸컷 (IMDb)
ⓒ 디즈니플러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잠들기 두려워하는 스티븐(오스카 아이삭)은 족쇄를 채워 감금한다. 분명 목요일에 잠들었는데 꿈같은 주말은 사라지고 눈 떠 보니 일요일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상황이 반복되며 출근이 힘들 지경까지 이른다. 대영박물관 기념품 숍 직원으로 일하는 스티븐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집트관 전시물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는 큐레이터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속상함만 쌓이는 처지다.

그러던 어느 날, 콘슈의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 용병 출신 '마크 스펙터(오스카 아이삭)'와 만나게 된다. 그는 실제로 나타난다기보다는 거울, 유리, 물 등 반사 가능한 매개체에서 말을 걸어왔다. 때로는 머릿속에서 속삭이거나 눈 깜박이는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꼭 주변 사람들이 피투성이로 쓰러져있고 기억이 까맣게 지워져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매일 정신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뒤죽박죽 하다. 하루가 너무 길고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며칠 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스티븐은 잠들지 않으려 노력하나 또다시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영적 지도자 아서 해로우(에단 호크)에게 쫓기게 된다. 거기에 마크의 아내라는 파울리(메이 칼라마위)까지 나타나며 복잡하게 흘러간다. 결국, 암미트를 부활시키려는 아서 해로우를 막기 위해 초월적 히어로 '문나이트'로 거듭나며 본격적으로 마크와 스티븐, 파울리의 묘한 삼각관계도 시작된다.

오스카 아이삭의 무한대 스펙트럼
  
 디즈니플러스 [문나이트] 스틸컷 (IMDb)
ⓒ 디즈니플러스
 
캐릭터가 달라질 때마다 성격을 적재적소에 드러내는 오스카 아이삭의 연기는 물오를 대로 올랐다. 수많은 배우들이 해리성 장애를 연기했지만 이번 캐릭터는 결이 다르다. 가장 최근에 선보인 <23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맥어보이를 떠올려 볼 수 있겠지만 비교 대상으로 부족하다.

독보적인 천의 얼굴, 타고난 연기자라 말해야 할까. 온순하고 평화주의자인 스티븐과 다혈질에 호전적인 마크를 완벽히 소화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지 모른다.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까지 더하면 연기 스펙트럼은 실로 엄청나다. [문나이트]의 제작까지 맡았다.

조연을 전전하다 눈에 띄는 주연을 맡은 것은 고양이와 함께 외로이 떠도는 뮤지션으로 분한 <인사이드 르윈>이다. 이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청년 포,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메인 빌런 아포칼립스,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고갱 등을 연기했다. 히스패닉 계열이지만 전형적인 역할보다 다양한 인종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으로 <듄>의 레토 공작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준엄하고 무게감 있는 제국의 리더이자 아스라이 사라져간 인물로, 짧지만 큰 인상을 남겼다.

달의 기사, 이집트 신화 본격 해부
  
 디즈니플러스 [문나이트] 스틸컷 (IMDb)
ⓒ 디즈니플러스
 
드라마는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의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를 버렸다. 대신 낯선 이집트 신화를 파고들어 독창성과 신선함을 더한다. 북유럽 신화로 탄생한 MCU의 '토르', '로키' 시리즈처럼 훗날 한국 신화로 만들어질 시리즈도 상상해 볼 이유다.

'엔네아드'라는 아홉 신들이 모인 단체는 아바타를 지정해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결과에 따라 '우샤브티'라는 돌인형에 봉인하기도 한다. 그중 새 머리를 한 '콘슈'는 달의 신이자 죄지은 자를 처단하는 신, 치유의 신이자, 복수의 신이다. 따라서 '문나이트'와 '미스터나이트'는 모두 달과 관계있다. 달이 차오르면 힘이 세지고 치유의 갑옷을 입으면 다치고 죽더라도 특별한 회복력으로 싸울 수 있다.

반대쪽에는 심판의 신이자 죽음의 신인 '암미트'가 아바타로 아서 해로우를 지정했다. 콘슈와 암미트 모두 악인을 처벌하지만 암미트는 죄짓기도 전에 미리 심판에 나서 혼란을 가중한다. 마구잡이로 인간 세상을 헤집어 놓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콘슈와 아바타는 고군분투하며 세상을 구한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디즈니플러스 [문나이트] 스틸컷 (IMDb)
ⓒ 디즈니플러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스티븐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매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추리해야 하는 캐릭터 마음과 동화된다. 시청자는 다음 화를 목 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매번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처럼 하다가 또 다른 떡밥만 투척하고 끝내버리는 영리한 회차 편집에 시청자들의 아우성은 최고조가 되어갔다.

이는 장르 영화계의 듀오 감독 '저스틴 벤슨'과 '아론 무어헤드'때문에 가능했다. 둘은 [문나이트]에서 2,4회를 연출했다. 듀오 감독의 특별한 연출력은 많은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았다. 국내 최대 장르 영화제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이미 인정받았던 감독이다. 영화제작자 겸 연출자인 두 사람은 <레졸루션>, <스프링>, <타임루프: 벗어날 수 없는>, <싱크로닉>을 함께 했다. 이집트 신화 및 다양한 문화적 전문성이 필요한 1,3,5,6회는 이집트 출신의 '모하메드 디아브'감독이 연출했다.

MCU는 기존 작품과의 연계성을 유지하는 작품과 독자적인 작품, 새로운 문화와 다인종 히어로를 등장시키는데 분주하다. 6월 8일 공개를 앞둔 [미즈 마블]이 그 주인공이다. MCU의 미래를 짊어질 10대이자 어벤져스와 캡틴 마블의 팬으로 덕업 일치를 이룬 캐릭터다. [미즈 마블]은 <스파이더맨>, [호크아이] 이후 선보이는 틴에이저 히어로이면서도 여성이며 아랍문화권을 기반으로 한다.

다채로운 히어로를 내놓고 있는 MCU가 한국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울 날이 당겨지고 있는 게 아닐지, 기대해 봐도 좋을 징조다. 지경을 넓혀가는 MCU의 다음 행보를 눈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행복한 비명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