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니' 이런 시를 지은 배경
이호영 2022. 5. 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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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는 안동 김씨 집성촌이다.
이곳 소산마을은 안동김씨가 400여 년을 세거(世居)해 온 동성마을이다.
안동김씨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後安東金氏, 新安東金氏)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銀說)을 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上洛金氏)로 구분한다고 한다.
소산마을은 자전거길로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4km,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조금 더 가면 하회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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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떠나는 안동 문화 여행9] 소산마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마을 입구 넑은 공원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펼쳐지고 청음 선생 시비와 함께 '삼구정'(三龜亭)이 자리한다. 거북바위 3개가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삼구정은 마을 어귀 언덕에 놓여있어 사방이 탁 틔었고, 멀리 '풍산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조선 성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선생이 88세의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이곳 소산마을은 안동김씨가 400여 년을 세거(世居)해 온 동성마을이다. 안동김씨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後安東金氏, 新安東金氏)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銀說)을 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上洛金氏)로 구분한다고 한다.
'양소당'의 의미는 '질박하고 참되며 순수하고 예스러운(質實純古)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정신적인 측면과 삶의 태도에서 꾸밈이 없는 순수(純粹)하고 고졸(古拙)한 경지를 지켜나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을 이름 소산(素山)은 '깨끗하고 희며 빛나는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배우 탕준상이 맡은 '학조대사'가 이 마을 출신이다. 학조대사는 13세에 안동 학가산 광흥사로 출가해 세조를 거쳐 연산군 때까지 국사를 지냈다. 스승 '신미대사'를 도와 훈민정음 보급과 불경 언해 간행 등 불교 문화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한다. 소산마을은 자전거길로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4km,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조금 더 가면 하회마을이 나온다.
[이호영 기자]
▲ 안동 소산마을 청음 선생 시비 청음 김상헌 선생 시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
ⓒ 이호영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는 안동 김씨 집성촌이다. 마을 입구, 큰 비석이 지나는 길손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 마을은 청음 김상헌 선생의 고향으로, 그는 병자호란 때 대표적인 주전파로 청나라에 압송돼 심한 고초를 겪었다.
청음 선생은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안동의 진산 학가산 아래 '목석거'라는 초옥을 짓고 은거했다. 하지만 인조가 명을 버리고 청을 돕고자 하자 이를 반대하고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가 빌미가 돼 청에 압송당하면서 남긴 시(詩)가 바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이다.
▲ 소산마을 삼구정 정자 안동 김씨 양소당 김영수 선생이 지은 정자 |
ⓒ 이호영 |
▲ 삼구정 거북바위 삼구정 정자 안에 큰 바위 3개 있다. 일명 거북바위이다. |
ⓒ 이호영 |
마을 입구 넑은 공원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펼쳐지고 청음 선생 시비와 함께 '삼구정'(三龜亭)이 자리한다. 거북바위 3개가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삼구정은 마을 어귀 언덕에 놓여있어 사방이 탁 틔었고, 멀리 '풍산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조선 성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선생이 88세의 노모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 고택이 즐비하다. 안동 김씨 종택인 양소당을 비롯해 동야고택, 묵재고택, 삼소재, 역동재 등 대대로 전해온 문화유적이 많다.
▲ 안동김씨 종택 양소당 김영수 선생이 지은 고택. 경북 문화재 자료 25호. |
ⓒ 이호영 |
이곳 소산마을은 안동김씨가 400여 년을 세거(世居)해 온 동성마을이다. 안동김씨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후안동김씨(後安東金氏, 新安東金氏)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銀說)을 시조로 하는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上洛金氏)로 구분한다고 한다.
후안동김씨 종택인 '양소당'(養素堂)은 1500년경에 김영수가 지은 목조 팔작지붕으로, 사랑채, 중문간채, 안채로 구성된 □자형 몸체가 중앙에 자리 잡고, 그 오른쪽 뒤편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 소산마을 양소당 안동김씨 종택 양소당 현판 |
ⓒ 이호영 |
'양소당'의 의미는 '질박하고 참되며 순수하고 예스러운(質實純古)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정신적인 측면과 삶의 태도에서 꾸밈이 없는 순수(純粹)하고 고졸(古拙)한 경지를 지켜나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을 이름 소산(素山)은 '깨끗하고 희며 빛나는 산에 둘러싸인 마을'이란 뜻이다.
▲ 소산마을 전경 양소당, 동야고택 등 문화 유적이 즐비하다. |
ⓒ 이호영 |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배우 탕준상이 맡은 '학조대사'가 이 마을 출신이다. 학조대사는 13세에 안동 학가산 광흥사로 출가해 세조를 거쳐 연산군 때까지 국사를 지냈다. 스승 '신미대사'를 도와 훈민정음 보급과 불경 언해 간행 등 불교 문화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한다. 소산마을은 자전거길로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4km,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조금 더 가면 하회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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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전거로 떠나는 안동 문화 여행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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