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더러워서, 두려워서, 모범적이라서..멈추지 않는 '아시아인 혐오'

이민우 2022. 5. 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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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하와이에서 흑사병 일종인 선페스트가 확산했다.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정서와 범죄는 지금도 계속된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저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 뿌리 깊은 혐오의 역사를 샅샅이 분석한다.

정 교수는 지난 170여 년간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역사가 세 단계에 걸쳐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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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전쟁 등 위기마다 서구의 '희생양 찾기'
170여년 아시아인 혐오史 샅샅이 분석
한국에서도 반복되는 인종 혐오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1899년 하와이에서 흑사병 일종인 선페스트가 확산했다. 미국 정부는 차이나타운을 진원지로 지목하고 감염자가 발생한 건물을 소각했다. 이때 발생한 화재로 차이나타운은 사실상 붕괴됐다. 미 정부는 아시아인을 공공장소로 소집해 훈증 소독도 시켰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발가벗겨 목욕하도록 강요했다.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정서와 범죄는 지금도 계속된다. 지난 3월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의 한인 미용실에서 괴한이 총기를 난사해 한국인 여성 세 명이 다쳤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저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 뿌리 깊은 혐오의 역사를 샅샅이 분석한다.

위기에 반복되는 '희생양 찾기'

경제 불황, 전쟁, 전염병과 같은 위기를 맞은 사회는 희생양을 찾아 폭력을 행사한다. 불안과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서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마녀, 동성애자, 외국인, 유대인 등은 목숨과 재산, 명예를 빼앗겼다. 1876년 미국 천연두 사태 때는 중국 이민자들이 원흉으로 부각돼 곤욕을 치렀다. 코로나19가 덮친 최근에도 소수 혐오는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된다.

인종 혐오는 경제 위기에도 나타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불황을 겪는 지금이 그러하다. 경기가 후퇴할 때마다 많은 미국인이 이민자를 일자리 쟁탈의 경쟁자로 생각한다. 극우 정치인들은 혐오 정서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활용한다. 정 교수는 "경제 불황은 이민자들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형성된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며 "어두운 시기,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인종적 편견을 작동하는 스위치가 켜진다"고 진단한다.

더러움→두려움→모범적…아시아인 혐오의 변화

정 교수는 지난 170여 년간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역사가 세 단계에 걸쳐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19세기 중반 미국 이주 아시아인들은 각종 전염병의 원흉으로 몰렸다. 그야말로 ‘더럽다’는 인식이 씌워졌다. 19세기 후반에는 ‘두려움’이 추가됐다. 1904년에 벌어진 러일전쟁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정 교수는 "일본의 승리는 근대 역사에서 백인 세력이 비백인 세력에게 처음으로 패배한 것"이라며 "중국인 대량 이주와 일본의 군사력 팽창은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아시아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화했다"고 해석한다.

또 다른 단계는 고학력·전문직 아시아인이 유입된 1960년대부터 나타난다. 근면하고 성실한 ‘모범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신화다. 정 교수는 이 또한 백인 주류 계층이 아시아인을 길들이고 지배하려는 기제였다고 비판한다. 모범과 비모범의 소수민족 대립 구도에서 흑인이 아시아인만큼 노력하지 않아 가난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65년 이민 및 국적법 제정으로 미국에 고학력, 전문직 아시아계 이민자가 대거 유입된 점을 무시한 채 성공한 아시아인을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으로 왜곡해 흑인·아시아인 사이 갈등을 유발했다"고 분석한다.

국내에도 남아있는 ‘아시아인 혐오’

이 책은 아시아인 혐오가 서구사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대표적인 예로 빈국 출신의 피부가 희지 않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국내 정서를 가리킨다. 개화기 엘리트들이 서구의 인종 서열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으며 ‘독립신문’, ‘매일신문’ 등 한글 매체들이 이 같은 이데올로기 확산에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중국인 입국 금지 청와대 국민 청원에 역대 세 번째로 많은 76만여 명이 동의했다"며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서구가 아시아인을 보던 시선 ‘더럽거나 두렵거나’가 재현되는 셈"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혐오를 해소하려면 개인과 집단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자는 누구나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다. 후자는 170여 년간의 아시아인 혐오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고 증오범죄를 공론화하는 제도 마련이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 정회옥 | 후마니타스 | 264쪽 | 1만6000원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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