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레시피 | 준비가 되면 그때 움직여라

2022. 5. 27. 06: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리더에겐 성공만이 목표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 성공에는 실패의 위험이 항상 뒤따른다. 해서 리더에게 꼭 필요한 것은 실패 시의 대응과 조직의 복원력 방안이다. 리더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의 계획과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실패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때 진정한 리더십의 차이가 드러난다.

▶성공만이 아닌 실패도 준비해라

‘준비’는 ‘어떤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마음 가짐이나 주변 조건 등을 미리 채비함(출처: 다음 사전)’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행동의 결과가 성공적이고 긍정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회의나 보고를 준비할 때 흔히 각종 데이터를 만들고 체크한다. 새 상품 출시를 앞두고 열리는 마케팅 회의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파는가’이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그 깊이를 더해야 비로소 제대로 준비한 보고가 되는 것이다. 제품을 시장에서 팔고, 그것을 경험한 소비자의 반응과 그 소비자가 이 제품의 충실하고도 긍정적인 전파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홍보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현재의 시장 분석, 경쟁사의 대응과 제품 출시 계획, 대리점이나 영업망의 반응, 각종 이벤트와 홍보 행사 등을 종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보고 시 상사들의 예상 질문, 참고 자료, 외국의 사례, 시장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대비 등도 함께 준비하는 것이 보통의 직장이다.

가장 기본적인 자료만으로 회의나 보고에 임하는 것은 사실 준비가 아니다. 그것이 통용될 수 있는 경우는 상사의 지시를 받거나 가벼운 중간 점검 혹은 점검을 위한 간단한 미팅에 한해서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 보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 마음 가짐이나 자료의 준비가 미흡한 것은 준비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사의 잦은 보고 요청으로 자료가 축적될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고, 상사 자체가 보고를 그저 일과성의 요식 행위로 치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는 직장 생활에서 매우 필요하고도 중요한 과정이다. 준비된 사원과 결핍 사원의 차이는 그 결과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고의 횟수가 누적이 되면서 확연해진다. 그 어떤 리더도 보고나 회의석상에서 일반적인 질문에 대답도 못하는 직원을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단 이러한 준비는 그저 부하 직원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리더에게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다. 우리는 흔히 ‘준비된 일꾼’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선거철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뽑아 놓으면 결국 ‘과연 무엇을 준비한 것인지’라는 의문과 함께 배신감마저 치미는 경험을 사람들은 이미 많이 했다. ‘준비’는 직장에서 특히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준비된 리더의 지시는 우선 부서원에게 신뢰와 성공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는 효과가 있다. 비록 리더의 준비된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얻는 교훈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리더들은 성공만을 목표로 설정하고 준비한다. 하지만 리더에게 더 필요한 것은 실패 시의 대응력과 조직을 복원시키는 방안이다. 리더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의 계획과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실패는 예고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때 진정한 리더십의 차이가 드러난다. 오로지 성공만을 목표로 삼고 모든 것을 준비한 리더는 실패 앞에서 당황하고 주저앉고 심지어는 부서원들에게 ‘이런 결과로 인해 나는 당신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낸다. 이런 조직에게 또 한 번의 기회나 성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은 물론 실패의 경우까지 준비한 리더는 실패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며 곧바로 ‘플랜B’를 가동하는 기민함과 대응력을 보이기 된다. 이는 단순히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조직을 가동시키는 에너지이다. 부서원들은 플랜B를 준비한 리더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정확한 다음 행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리더에게 준비는 단순히 자신의 승진과 출세를 위한 ‘스펙 갖추기’가 아니다. 리더는 한 부서를 이끄는 책임자로서 부서와 부서원에 대한 유한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권한과 함께 책임감을 더 빛나게 하는 요소이다. 어느 직장이든 임기응변에 능한 꾀돌이 리더도 있고, 묵묵히 전진하는 돌쇠 스타일의 리더, 혹은 무능력한 허수아비 리더도 있다. 리더에게 준비는 지구력과 순발력 등 예상되는 모든 변수에 대한 대비이다. 육상에서 장거리와 단거리를 모두 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는 없다. 단거리 선수는 100, 200m 혹은 400m 릴레이 경기에만 출전하고 장거리 선수는 5000m나 1만m 경기에 출전한다. 이는 단거리나 장거리 육상에서 필요로 하는 훈련의 형태나 사용되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은 이 장거리와 단거리 경기가 모두 이루어지는 경기장이다. ‘나는 단거리에 주특기가 있어서 장거리는 사양할게’라는 ‘배포 있는 통큰 양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직장은 모든 경기에 임해서 최소한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철인 경기장’과 더 가까울 것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준비는 이 장거리와 단거리를 모두 뛸 수 있는 능력의 교집합을 크게 하는 것이다. 회사라는 무한 경쟁 체제에서 자신의 부서를 지킬 수 있는 준비, 부서원의 성과와 과실을 공정하게 칭찬하고 보상받게 하는 준비, 또한 일은 죽어라 했지만 결과에서 억울한 이가 없게 실패를 분석하는 능력의 준비, 주어진 업무에 최소의 희생과 땀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준비, 그리고 풍부한 경험과 더불어 그 경험을 반짝이게 하는 신선한 감각을 유지하는 준비, 최소한 부서원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들고 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준비, 협업 혹은 단독 진행의 득실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의 준비 등등이 바로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인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학습이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과연 상사와 동료가 어떻게 일하고 대응하는지에 대한 것, 그리고 내 업무에 대한 풍부한 경험에서 학습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학습에는 물론 예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목표는 흥미를 생산하고, 흥미는 관심과 집중을 불러온다. 당연히 관찰력은 욕망과 열의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리더를 꿈꾸는 직장인에게 지금 당장 준비할 것은 무엇일까. 일단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구분해 써내려 간다. 어느 쪽이 더 많은가. 그렇게 나의 장점과 약점에 대한 정확한 분석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부족한 쪽을 채워 양쪽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것, 그것이 직장에서 리더로 가기 위한 준비의 첫 걸음이다. 이때 전제가 있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평가를 해야 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그것 역시 훈련이다.

여기 준비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리더가 있다. 바로 일본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존재로 지금도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다케다 신겐이다. 물론 일본 전국시대의 주인공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이다. 하지만 다케다 신겐은 이 세 사람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그는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투를 하는 법을 몸소 전장에서 가르쳐 준 인물이다. 그는 전투에 임하면 패배를 모르는 장군이었고, 영주로서 자신의 영지를 번성시켰으머 백성을 안정시킨 현명한 지도자로 부하와 백성의 자발적 충성과 존경을 이끌어낸, 끊임없이 준비하는 리더였다.

▶산처럼 무겁게, 불처럼 빠르게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00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에도막부를 열었다.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오다 노부나가, 전략과 책략의 귀재 도요토미 히데요시, 인내의 화신이자 최후의 승리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명에 대한 일본인들의 존경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에 오른 후 부하들에게 뜻밖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에게는 스승이 있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 두 분은 정치와 용인술, 전쟁을 알려준 무서운 스승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두려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다케다 신겐이다. 나는 그에게 패하고 도망가면서 변을 지릴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 전투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인내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라고 표현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칭찬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케다 신겐은 오랜 기간 완벽한 준비를 하고 통일 기치를 든 채 상경길에 올랐다. 영주들은 전투를 하기 전에 그에게 무릎을 꿇었고, 저항하던 이에야스는 철저히 무너졌다.

다케다 신겐은 1521년 영주 다케다 노부토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노부토라는 가이 지역을 통일하고 전국구 다이묘로 이름을 떨친 명장이었다. 하지만 노부토라는 폭군이었다. 백성들은 전란에 시달렸고, 가신들은 충성만 강요하는 노부토라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신겐이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노신 그룹이 노부토라를 감금하고 장남 다케다 신겐을 영주로 추대했다. 신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방했다. 기록에는 다케다 신겐이 노부토라의 폭정과 특히 동생 노부시게에 대한 편애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노신 그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리고 만만한 신겐을 선택했는데 신겐의 카리스마가 아버지를 능가해 노신 그룹이 후에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케다 신겐은 척박한 가이를 부유하고 풍요로운 영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소모적인 전투를 중지했고, 백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성이나 해자 건설도 중단했다. 그리고 ‘7공3민’ 정책을 ‘5공5민’으로 바꾸었다. 즉 영주에게 7할을 공물로 바치고 농민이 3할을 갖던 것을 똑같이 5할로 나눈 것이다. 그러자 가이에 부가 쌓이고 신겐의 권력은 안정되었다. 그러나 가이를 둘러싼 주변 시나노국 영주들은 어린 신겐을 얕보았다. 그들은 공격해 들어왔지만 다케다 신겐은 시나노국의 스와 요리시게 가문을 멸문시킨 것을 시작으로 후지사와 요리시카 가문, 가시하라 기요시게 가문, 다카토 요리쓰구 가문 등에 승리하며 시나노국을 점령했다. 1년 후, 가이의 옆 나라이자 신겐에게 있어 최대의 경쟁자인 에치고의 주인이 바뀌었다. 우에스기 겐신이 영주가 되었다. 이 지역은 다케다 신겐, 호조 우지야스, 우에스기 겐신의 3강 구도로 재편되었다.

흔히 다케다 신겐을 ‘가이의 호랑이’, 우에스기 겐신은 ‘에치고의 용’이라 부를 정도로 두 사람은 라이벌이다. 두 사람의 목표는 같았다. 시나노 국을 평정하고 교토 상경길에 올라 천황의 명을 받아 쇼군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국력, 리더십, 군사력, 능력은 엇비슷해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느라 상경길이 늦어졌다. 두 사람의 피 튀기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겐신은 1만8000명, 신겐은 2만 명의 군사로 맞섰다. 신겐은 별동대로 겐신의 배후를 습격할 계획이었지만 영민한 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신겐의 본진을 공격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는 후방에서 신겐의 별동대를 저지하게 했다. 겐신의 습격에 신겐 군은 무너졌다.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는지 이 전투의 승리자는 없었다. 양군은 모두 6000명이 전사했다. 특히 신겐은 동생 노부시게와 측근 가신을 잃었다. 신겐과 겐신은 서로를 인정했다. 겐신은 신겐의 변화무쌍한 전략을, 신겐은 겐신의 용맹한 전투력을 부러워했다.

▶완벽한 한 번의 승리를 경계하라

그 무렵 오다 노부나가가 급부상했다. 오와리의 영주 노부나가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2만 대군을 4000명의 군사로 급습, 이마가와를 단숨에 베고 강자로 떠올랐다. 질풍노도의 전략과 예측 불허의 전술을 펼친 노부나가 군대는 무적이었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게 장남과 아내를 죽이라 명령했다. 이는 ‘노부나가, 신겐 둘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라’는 최후 통첩이었다. 고민과 갈등 끝에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선택하고 영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때, 기다리고 준비한 다케다 신겐은 1571년 상경길에 올랐다. 그는 노부나가와 전면전에 앞서 이에야스를 타깃으로 삼았고 바람처럼 진군했다. 군소 영주들은 다케다 신겐의 깃발만 보아도 칼을 버리고 창을 거꾸로 쥐었다. 젊은 이에야스는 채기로 다케다 신겐과 맞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전투는 애초 싸움이 되지 않았다.

신겐 군의 중심은 기마부대로 양동 전술에 능했다. 기마부대는 곳곳에서 출몰하며 이에야스군의 방어 태세를 무너뜨렸다. 하마마쓰 성에서 이에야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케다 신겐은 이에야스를 성에서 끌어내기 위해 부대를 여러 방향으로 진군시켰다. 이에야스는 신겐의 전략에 넘어갔다. 이에야스는 젊은 혈기와 ‘성공할 수 있다’라는 착각을 참지 못하고 성에서 나왔다. 그리고 미카타카라하 전투에서 처절한 패배를 당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도망갔다. 다케다 신겐과 오다 노부나가의 정면 승부만 남았다. 하지만 노다 성을 거의 점령했을 무렵 다케다 신겐이 병에 걸렸다. 전국구 패자 오다 노부나가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그러나 다케다 신겐은 불의의 저격을 받았다. 노다 성을 거의 점령한 어느 날 밤, 성 안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에 다케다 신겐은 평생의 조심성을 잃었다. 피리 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홀리듯 몸을 노출한 그는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았다. 53세, 한창의 나이였다. 그리고 상경을 중단하고 가이로 후퇴하는 도중, 시나노 외곽에서 죽고 말았다. 신겐의 죽음의 원인은 이에야스 군의 저격, 병에 의한 것 등 두 가지이지만 그 어떤 것이든 다케다 신겐의 죽음은 천하의 물줄기를 바꾼 일본 전국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다케다 신겐은 “나의 죽음을 3년간 비밀로 하라” 유언했다. 신겐의 아들 가쓰요리는 ‘가게무샤’ 즉 그림자 장수를 활용했다. 외모부터 말하는 것까지 신겐과 똑같이 닮은 3명의 가게무샤의 존재로 인해 가이는 보존될 수 있었다. 후에 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자와 아끼라가 ‘가게무샤’라는 영화를 만들어 198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가 바로 다게다 신겐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케다 신겐에게는 이와다라는 부하가 있었다. 그는 겁쟁이였다. 가신들은 그가 언제 신겐에게 버려질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 신겐은 자신의 기준이 분명한 리더였다. 그는 원정을 떠나면서 이와다에게 중요한 관저 관리를 맡겼다. 이와다는 신겐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섬세하고 치밀한 성격대로 완벽하게 해냈다. 신겐이 돌아왔다. 관저를 둘러본 신겐은 만족했다. 게다가 이와다는 관저 관리인들의 신겐에 대한 평을 수집해 보고했다. 신겐으로서는 유능한 부하를 얻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신겐은 알고 있었고 이를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것, 이것이 리더의 본모습이다.

다케다 신겐은 전쟁만을 우선하지 않았다. 그는 외교를 중시했고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는 칼을 빼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원했다. 시나노를 공격하기 위해 신겐은 이마가와, 호조 가문과 동맹을 맺고 라이벌 겐신을 견제했다. 호조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겐신은 가이를 떠난 신겐을 보면서도 공격할 수 없었다. 시나노를 손에 넣은 다케다 신겐은 이마가와를 공격하기 위해 동맹을 파기하고 이번에는 노부나가, 이에야스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상경길에서는 노부나가, 이에야스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호조와 동맹을 맺어 후방의 안정을 도모했다. 이처럼 다케다 신겐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이기는 환경을 만드는 데 우선했다. 즉 그는 준비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준비성 철저한 리더였다.

다케다 신겐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은 전쟁터에서다. 그는 혈기왕성하지만 전투 기술이 미숙한 청년들을 맨 앞에, 그 바로 뒤에는 노련한 고참병을 세웠다.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는 경험과 체력이 모두 준비된 중년들을 배치했다. 이는 미숙한 청년들이 혈기만 앞세워 죽는 것을 노련한 고참들이 보완하고 또 신중을 기하는 고참들의 모자라는 힘을 숙련된 병사들로 하여금 마무리 짓게 하는 전략이었다. 또 신겐은 5할을 이기면 최선, 7할을 이기면 보통이고, 10할을 이기는 것을 최하로 여겼다. 이는 미래를 대비하는 리더의 안목에서의 판단이다. 5할을 승리하면 병사들은 다음에는 더 힘을 내면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기지만 7할을 이기면 만족한 마음에 나태함이 생긴다고 판단했다. 또 10할의 승리를 거두면 자만심과 교만심 때문에 노력과 훈련을 게을리해 다음에는 필패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다케다 신겐의 아들 가쓰요리는 노부나가와 맞붙었다. 나가시노 전투, 그는 1만2000명의 기마대를 선봉에 세웠지만 기마대는 노부나가의 3000명 조총 부대에 전멸당했다. 가쓰요리의 군대 중 무려 1만 명이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영지로 돌아간 가쓰요리는 오다, 도쿠가와, 호조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가신들은 배반하고 결국 가쓰요리는 자살하고 만다. 아버지 다케다 신겐이 이룩한 영지는 이렇게 없어졌다. 다케다 신겐의 아들은 호랑이나 용이 아닌 강아지 꼴로 사라진 것이다.

다케다 신겐은 살아서는 ‘군신’이었고 죽어 신화를 남겼다. 다케다 신겐은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인내할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몰아칠 때는 불처럼, 기다릴 때는 산처럼’ 움직인 ‘준비를 가장 우선’시한 리더였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