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어쩌면책'이 말하는 것

2022. 5. 2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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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팀 오브라이언이라는 작가가 있다. 미국 작가다. 베트남전쟁에 징집됐고 2년 동안 겪은 전쟁통의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그를 흔히 ‘전쟁 작가’라고 부르는 까닭은 몇 편의 소설과 산문에서 어김없이 그 기억을 되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던 10부작 ‘베트남전쟁’의 다큐 필름에서도 꽝응아이라는 지방에 주둔한 오브라이언 이병의 목소리가 실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몇 분 후 저기를 행군할 텐데, 내 시체가 저기 있을까’라고 생각한 이병. 그저 다리를 움직이는 게 용기였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청년 시절이 담겼다.

필력이 대단한 이 작가의 소설들은 여러 상을 수상하고 중고등학교와 대학 교재로도 쓰였다. 1973년부터 쓰던 글은 2002년 마지막 소설 이후로 끊겼다. 작가의 소식은 17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으로 전해졌다. 신작을 반가운 마음으로 서둘러 펼쳐 보았다. ‘아빠의 어쩌면책’이란 산문집은 얼핏 보아 두 아들의 성장에 대한 기록인 듯했다. 책의 인상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오브라이언은 노년 가까이 홀로 살았다. 자신의 의지였다. 사랑은 의지를 뛰어넘어 운명을 이끈다. 쉰일곱 살에 첫아이를 본다. 그리고 둘째도 낳았다. 아이들이 청년이 됐을 때, 백발이 된 자신이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르겠는 심정은 ‘어쩌면책’을 쓰게 했다. 확실한 책이 돼 출간될지 알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쩌면 책이 될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쓴 것이다. 번역본의 페이지는 448쪽. 얇지 않은 산문집에는 작가의 깊고 넓은 생각들이 펼쳐져 있다. 그저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남기는, 잔소리로 읽힐 수도 있는 교훈조의 뻔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너한테 배우길 갈망해. 나는 네가 막 알기 시작한 것에 관해 몇 번이고 가르침을 받고 싶어. 이를테면 행복해서 꺅꺅거리는 소리. 아장아장 다가오는 기적 같은 발소리에 다 큰 어른이 이렇게 기뻐할 수도 있다는 거.” 늦깎이 아버지의 기쁨이다. 지울 수 없는 피와 죽음의 냄새가 스민 작품을 쓰던 작가는 신생의 날을 맞이했다. 인생의 어떤 순간은 만족감으로 충만하다는 걸 아이에게서 다시 배운다.

어쩌면 5년, 어쩌면 20년 뒤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깨지기 쉬운 인생을 자각한다. 젊은 아빠가 제 자식에게 사랑한단 말을 평생 6만번 한다면 자신은 6만번의 사랑해를 10여년 안에 때려 넣어야 할당치를 채운다는 부담을 털어놓는다. 작가가 일흔이 돼도 두 아이는 겨우 열 살을 넘길 테니까.

공포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으라고, 체면과 겸손이라는 선물을 잘 간직하라고, 옳은 것만큼이나 그를 때도 많다는 가능성을 오만하게 억누르지 말라고 부탁하는 말은 겁먹은 아버지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겁쟁이가 돼버린 작가지만 그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이 글쓰기를 추동한다.

인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 온몸으로 알려주던 아이들은 십대가 돼 어린 시절을 갉아먹는다. 아버지는 세상과 척진 사춘기의 아이들 머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도저히 알 수 없게 된다. 무뚝뚝한 사춘기 아들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더욱 박차를 가한다.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1, 2분 더 늙어 있을 거라며, ‘어쩌면책’을 아이들과 함께 쓰고 있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2046년 자신의 100번째 생일에 중년이 된 두 아들과 골프를 한 라운드 돌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털어놓는 작가의 ‘아빠의 어쩌면책’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둘 다 중년이니까 어떤 후회들이 쌓였을 텐데 그 후회들을 이야기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골프가 끝나면 둘이서 맥주나 한잔해. 용서가 필요한 건 용서하고, 웃어넘길 건 웃어넘기고. 그러고들 집에 들어가렴.”

귀가하는 두 아들의 발걸음이 가볍기를 바라는 늙은 아버지의 부탁이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일깨운 글에 울컥하는 독자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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