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탁의 시선] 민주당이 직면한 더 큰 위기
6·1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예상 판세는 국민의힘 우세다. 12년간 지방권력을 장악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조사대로라면 호남과 제주 외에 경기도와 충남·세종 등에서 승리를 기대할 정도다. 하지만 민주당에 닥칠 더 큰 위기는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포하고 있는 변화의 조짐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당선 후 행보는 대선 때와 다른 점이 많다. 국민의힘 후보 시절엔 보수 극렬 지지층에 부합하는 언행을 자주 보였다. ‘문재인 정부 심판’을 주야장천 외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취임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장관·의원 100명을 데리고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도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갔다. 광주와 봉화는 민주당의 무대였는데, 올해는 달랐다.
공직과 로펌을 오간 행보로 비판을 받았지만, 한 총리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호남(전북 전주) 출신인 그를 윤 대통령이 가장 상징적인 자리에 지명했다. 국민의힘도 과거 모습에서 탈피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30대 이준석 대표를 뽑은 것부터 ‘친이’‘친박’의 틀과 ‘꼴통 보수’라는 한계를 벗겠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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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서 보듯 윤 대통령 진영 허물기 시동
여권 실책만 찾다간 중도층 민심 못 얻어
과반 야당으로 현안 해법 내고 경쟁해야
」
민주당에 묻는다. 선거는 텃밭과 적극 지지층만으로 이길 수 없고 중도·부동층이 승부를 가른다. 김종인 비대위 시절부터 국민의힘이 호남에 공을 들인 것처럼 민주당은 대구·경북(TK)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나. ‘노무현의 부산 도전’ 이래 이어지던 영남 껴안기는 시들해진 게 아닌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과거 보수 정부 총리를 영입할 구상을 했겠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 연합’을 하고 TK 출신 김중권 비서실장을 발탁한 게 25년 전인데, 민주당의 확장성과 유연성은 후퇴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의 상대 진영 공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대표를 지낸 김한길 위원장과 새시대위원회를 만들었다. 출범식에서 당시 윤 후보는 “중도와 합리적 진보를 다 포함할 것"이라며 “국민의힘도 실사구시 실용주의 정당으로 확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새시대위는 인수위 국민통합위로 이어졌고, 윤 대통령이 첫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국민통합위를 만든다는 소식이 어제 전해졌다. 민주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원심력은 커질 것이고, 새 정부 지지율 추이에 따라선 2024년 총선 전 정계 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대선 이후 비판 여론에도 ‘검수 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에 매달렸다. 이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 공격에 주력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해 검찰 수사를 동원할 것이란 공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전 정부에 대한 수사를 여러 번 봤다. 여론의 키를 쥔 중도층은 '인위적 보복 수사’인지 판단할 것이다. 국민은 ‘측근 정치’의 폐해도 잘 알고 있다. 인사검증 권한까지 쥔 한 장관이 무리수를 쓰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여권 실책을 찾아내 공격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미래가 불투명하다. 여성 차별 논란이 일자 내각의 추가 인선 세 자리를 모두 여성으로 채우는 등 윤 대통령의 대응은 빠르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스스로 현안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여당과 논의해 처리할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였음을 대선 때 인정했으면서 왜 대안 입법화에 먼저 나서지 않는가. 당 싱크탱크를 강화하고, 의원내각제의 ‘섀도 내각’처럼 상임위별 조직을 꾸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으로 여권과 경쟁하는 야당이어야 등 돌린 이들이 눈길을 줄 것이다.
인적 쇄신도 중요하다. 여권에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꽤 가 있다. 민주당은 폄훼할지 모르나 대부분 팬덤 정치에 질리고 민주당의 확장성 부족을 비판하던 이들이다. 이념과 세대의 폭을 넓혀 실력 있는 전문가를 정당에 접목하려 노력해야 할 텐데, 이번 선거 공천에서 청년층이 벽에 부딪혔다는 한탄이 들린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20대 남성이 왜 떠났는지 분석하고 어떻게 공감할지 논의하고는 있나.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가 극렬 지지층과 당 지도부의 반발을 산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마저 떠나면 민주당엔 재앙이 될 것이다. 당 대표를 뽑는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친명·친문계의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랬다가는 초상 치르고 제사 지내게 생겼는데, 누가 지방 쓸지를 놓고 싸우는 꼴이 될 것이다. 진영을 허물고 갈등 현안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 세력만이 표를 얻는 시대가 됐음을 민주당은 유념해야 한다.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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