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학교의 슬픈 일상회복

2022. 5. 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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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대학 캠퍼스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 대다수 대학이 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데다, 3년여 만에 대학 축제도 재개될 예정이라 다들 기대감에 부푼 눈치다. 코로나19 대유행 첫해에 입학한 이들이 벌써 대학 3학년이니, 그간 못 누린 대학 생활에 대한 갈망이 오죽할까. 대학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코로나 블루’를 걷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누리는 요즈음이지만, 어떤 이들은 일상회복으로 더 불행해졌다는 게 문제다.

질병관리청에서는 매해 ‘청소년건강행태조사’를 진행한다. 음주나 흡연 여부 같은 부적절한 건강 습관은 물론이고 식생활·신체활동은 물론 정신건강까지 설문의 형태로 응답을 얻는데, 그중 주목할 대목이 하나 있다. 수년째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자살 위험이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자살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진지하게 자살하고 싶단 생각을 하는 단계인 ‘자살 생각’이 처음이고, 구체적으로 자살 계획을 세우는 ‘자살 계획’이 뒤를 이으며, 실제로 자살을 감행하는 ‘자살 시도’가 마지막의 가장 위험한 단계다. 2020년 이후를 제외한 최근 5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중고등학생의 12.5% 정도가 ‘자살 생각’을 해봤으며 4%는 실제로 ‘자살 계획’을 세워본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등학생 인구가 300만 명 정도니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워본 학생만 전국에 12만 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엔 달랐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2020년 조사 시점에서는 ‘코로나 블루’로 인해 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악화했을 것으로 짐작하여 ‘외로움’이나 ‘불안장애’ 같은 새로운 항목까지 추가했지만, 정작 중고등학생들은 ‘자살 생각’이 예년 평균보다 1.6%포인트 감소하고, ‘자살 계획’은 0.4%포인트 줄어드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 되려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좋아진 것이다. 이런 추세가 유지됐으면 좋았겠지만, 정상 등교가 진행된 2021년 조사에서는 ‘자살 생각’과 ‘자살 계획’이 거의 예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정상 등교를 시작했더니 학생들이 죽고 싶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명확하게 짚긴 어렵다. 매년 진행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2020년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예년보다 두드러지게 감소한 것을 보면 학교생활에서 경험하는 또래의 괴롭힘이 원인일 듯도 싶지만, 등교 일수는 학업 부담과 같은 다른 스트레스 원인과도 연관이 깊어 속단이 힘든 상황이다. 이유야 어쨌건 등교가 자살 경향을 높인다는 건 정부가 해결해야만 할 숙제다. 일상이 비정상이면 일상회복은 고통의 재발일 뿐이지 않은가. 곧 새로이 지명될 교육부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이런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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