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돌아왔다! 웰컴백 베니스비엔날레

이마루 2022. 5.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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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티스트들의 독주,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향한 연대까지. 역대급으로 돌아온 베니스 비엔날레
화제의 중심이었던 미국관의 전경.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만국박람회’ 당시 서아프리카관의 모습을 재현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돌아왔다! 제59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는 11월까지 계속될 대장정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개최 선언문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 주제인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는 초현실주의 작가 레오노라 캐링턴의 책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상상의 굴절을 통해 끝없이 삶이 재구상되는 마법적인 세계를 그려왔죠. 그 세계에서는 누구나 바뀌고, 변화하며,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가능성으로 가득한 세상이죠.” 1917년에 태어나 2011년 세상을 떠난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마지막 생존자로 꼽히는 화가이자 소설가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생애 대부분을 멕시코에서 보낸 그의 그림세계는 ‘초현실주의를 여성화했다(Feminized Surrealism)’는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 태생의 여성 기획자인 세실리아가 총지휘를 맡고, 국경을 넘어 58개국에서 참여한 213명 중 여성 작가의 비율이 90%에 육박하며, 평생공로상과 황금사자상 수상의 영예 또한 여성 작가들에게 돌아간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성격을 성공적으로 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인용인 셈이다.

미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시몬 리.
시몬 리는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대 조각상을 통해 기꺼이 드러낸다.

원래라면 2021년에 개막해야 했지만 모두가 아는 이유로 3년이라는 준비 기간 끝에 모습을 드러낸 이 최대의 미술 축제에 모여든 미술 애호가와 관계자들은 순간순간을 만끽했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로 국가가 거의 봉쇄됐다가 올 3월에 조금씩 정상화됐거든요. 4월 부활절 연휴까지 겹치니 비엔날레를 떠나 베니스 자체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어요. 그동안 아트 페어도 문을 닫다시피 했으니 미술계 사람들이 3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거죠. 분위기가 너무 좋을 수밖에요. 물류대란에 국제 운송비가 폭등한 상황에서 규모가 큰 대작들이 기대 이상으로 많았던 것도, 본 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가 아닌 곳에서 열린 대형 전시도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놀라웠어요. 전체 전시를 둘러보고 난 뒤 미국관의 작가와 영국관이 수상권에 들 것이라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비엔날레 개최 첫 날 전시를 돌아본 신은진 큐레이터가 회고하는 현장 분위기다. 그리고 예감에 걸맞게 베니스는 두 개의 황금사자상을 나란히 각국의 흑인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안겼다. 최고작가상인 전시 부문 황금사자상은 미국의 시몬 리(Simone Leigh)에게,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은 영국관 대표 작가인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에게 주어진 것. 영국에 처음으로 국가관 수상을 안긴 작가가 런던 예술대학에서 흑인예술을 가르치는 여성이라는 점, 이번에 선보인 작품 또한 흑인 음악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수상은 비엔날레의 주제 및 작가 선정에 대한 자성을 추구하며 공고한 기존의 주류담론 체계에 관한 전복적인 의미마저 띤다. 여성과 소수자성에 힘을 실은 것은 미국관도 마찬가지다. 지붕을 짚으로 덮어 아프리카 전통 스타일로 꾸민 미국관은 1931년 제국주의를 홍보하기 위해 열렸던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당시 서아프리카관 디자인을 모티프로 삼았다. 그 앞에는 우뚝 세워진 높이 7m에 달하는 시몬 리의 조각상 ‘위성(Satellite)’이 위풍당당하게 섰다.

임시로 조성된 우크라이나 광장. 평화를 향한 예술가들의 연대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요 정서였다.
영국에 처음으로 국가관 황금사자상 수상의 기쁨을 안긴 소니아 보이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전시 주제인 ‘꿈의 우유’를 형상화한 포스터.

“총감독이 주제 자체도 잘 선정했지만 그 의도에 영리하게 화답한 국가들이 상을 받았다고 봐야겠죠. 한국 작가로 본 전시에 초청된 여성 작가, 정금형과 이미래 두 사람도 기량을 잘 발휘했어요. 특히 이미래 작가는 ‘주목해야 될 작가’ 같은 현지 리뷰에서 꾸준히 호명됐고요.” 신은진 큐레이터의 말이다. 지난 2월 유럽 대륙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비극이 발발한 만큼 전 세계인이 모여든 베니스 비엔날레 광장에도 평화를 위한 소원이 깃들었다. 우크라이나관 대표 작가인 파블로 마코프(Pavlo Makov)는 키예프를 떠나 가족들을 대피시킨 뒤 베니스로 향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예술가나 한 개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한 시민으로 느껴진다. 우크라이나가 가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여기에 왔다”고 밝혔다. 지아르디니에 광장에는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후 제작된 40여 명의 우크라이나 작가 작품들이 임시로 놓였으며, 러시아관 기획자를 비롯해 작가들은 전쟁을 비판하며 국가관 참여를 포기했다.

흑인 음악을 주제로 미디어아트를 펼친 소니아 보이스의 전시.
전광영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소개관의 외관. 국내 작가의 위성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관람자의 기쁨과 경탄을 자아낸 또 하나의 요소는 수준 높은 위성 전시다. “페이스 갤러리가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 회고전을 크게 열었어요. 1962년 미국관 대표 작가로 그녀가 비엔날레에 참가했던 6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의도 있죠. 마침 우크라이나 출신의 난민이라는 시의적인 의미도 있고요. 가고시안은 19세기에 지어진 두칼레 궁전을 빌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대규모 전시를 감행했죠.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 뿐 아니라 다수의 수준 높은 전시들이 베니스 섬 전체에서 열리고 있었어요.”

두칼레 궁에서 개최된 안젤름 키퍼의 대규모 전시는 이번 비엔날레 최대 볼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설치미술 작가 김윤철이 ‘나선(Gyre)’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선보인 가운데 전광영, 하종현, 이건용은 위성 전시를 펼치며 대가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오래된 한지를 조형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 전광영 작가가 초대받은 전시는 고택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에서 비엔날레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한층 의미가 깊다. 본 전시에 초청받은 정금형 · 이미래 작가가 80년대생으로 젊은 피에 속하는 한편, 개인전으로는 30~40년대 태생의 원로 작가들이 참여한 것도 흥미로운 대비다.

88년생 이미래 작가의 ‘Endless Dream: Holes and Drips’(2022). 해외 매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총감독 세실리아 알레마니. 고국 이탈리아에서 3년 만에 열린 거대한 축제의 축포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

총감독 세실리아의 남편으로 2013년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전두 지휘했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는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기념하는 2010년 제8회 광주 비엔날레(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광주 비엔날레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이 개최됐다) 예술총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고 백남준이 독일관 대표 작가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그가 각고의 노력을 펼친 끝에 2년 뒤인 1995년 카스텔로 공원 부지 내에 자리한 마지막 국가관으로 한국관이 입성한 것이 30여 년 전의 일이다. 여성과 소수자성이 주제의식을 관통했다고 모두가 말하는 이번 베니스에서 한국은 어디쯤 서 있을까? 다시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상상으로 연결을 꿈꿀 수 있는 시기가 돌아왔다. 지금 베니스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들이 그 멋진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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