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 문희상 쓴소리..'맹자 문구' 꺼내 박지현 사태 때렸다

강태화 2022. 5. 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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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꺼내든 ‘86(80년대 학번, 60년생) 용퇴론’을 놓고 야당이 자중지란에 빠진 가운데 두차례 당 비대위원장을 지냈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당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2020년 3월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전 의장은 26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당의 존재 의미는 선거라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며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자중지란이 일어난다?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정 세대를 겨냥한 용퇴론에 대해서도 “인위적ㆍ의도적 세대교체는 성공한 적이 없다”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위원장이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도 인위적 교체가 아닌 국민이 만든 세대교체이자 정치교체”라고 말했다.

문 전 의장은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맹자(孟子)에 나오는 자모인모(自侮人侮ㆍ자신이 먼저 자신을 업신여기면 남도 자기를 업신여긴다)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박 위원장이 말한 반성과 개혁 다 좋지만, 김대중ㆍ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너무 업신여기는 것은 쥐 잡다 독을 깨는 소탐대실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상임선대위원장(가운데)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Q : 선거를 앞두고 나온 박 위원장의 반성과 개혁안을 놓고 당이 시끄럽다.
A : “나는 박 위원장의 목소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틀린 말을 했더라도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다만 선거를 앞둔 지금 꼭 필요한 말을 했느냐의 여부는 다른 문제다. 한마디로 당장 그만둬야 한다. 특히 자책을 넘어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자모(自侮)를 했다가는 국민들까지 민주당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런 일을 자초해선 안 된다.”

Q : 윤호중 위원장ㆍ박홍근 원내대표도 박 위원장과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다.
A : “당장 자중지란을 끝내고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선거에 100% 올인해야한다. 1주일 남았는데 다른 거 할 것 없이 당장 현장으로 다 나가면 된다.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게 반성이다. 지금 서로 잘났다고 말장난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국민과 함께 뒹구는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Q : 86세대의 용퇴론은 당내에서도 여러차례 제기됐던 문제다.
A : “누구를 지칭해 물러나라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거다. 한국 정치사에서 의도적 세대교체는 성공한 적이 없다. 어느 순간에 딱 끊어서 ‘586 다 나가’라는 식의 주장은 민주적 절차가 아니다. 중요한 건 국민의 판단이다. 국민들이 투표로 보낼 사람을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해왔다. 가만 둬도 물러나는데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Q : ‘팬덤 정치’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A : “정치는 인기로 먹고 사는 일이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팬덤으로 정치적 기반을 쌓았고, 그게 잘 안 되면 안달하고 했다. 인기가 없는 정치인은 소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팬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선거만 생각하며 인기 영합주의로만 가는 것이 진짜 문제다. 정정당당하게 역사와 시대, 국민 앞에서 떳떳한 이야기를 하는 게 정치가다. 그걸 못할거면 정치를 해선 안 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Q :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고전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A : “비대위는 패배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 기구다. 자성과 성찰이 첫번째이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이 두번째다. 그런데 이번 비대위는 대선에서 지고 바로 전국선거를 하다보니 둘다 생략해버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안타깝지만 몇번 패배해야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원로로서 ‘당해도 싸다’, ‘또 당해야 길이 생긴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최악의 자중지란부터 멈추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 전 의장은 민주당의 지향점으로 ‘김대중ㆍ노무현 정신의 회복’을 제시했다. 그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졌지만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에 대한 자존심, 자긍심, 긍지를 가져왔고 이러한 긍지를 국민의 50%가 지지해왔다”며 “개혁을 하겠다면서 이러한 정체성마저 부정하면 민주당을 지지해준 국민까지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열렸던 최고위원회의. 회의실 벽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임현동 기자

Q : 민주당의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나.
A : “당 대표실에 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놨겠나. 인권, 더불어 함께 사는 정의, 평등 등이 두 사람의 진보사상이고 이러한 가치가 어우러지면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것이다. 싸울 때가 아니라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운동을 할 때다. 우리의 정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이 김대중ㆍ노무현 정신으로 꿋꿋하게 쭉 가면 국민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Q : 다른 의견에 대한 강경파의 발언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A : “민주정당은 모든 발언을 다 용인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 비판과 비난은 우리의 정통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독선과 교만, 다른 의견을 무시하는 것, 나만 옳다는 생각 때문에 당이 이렇게 됐다. 독선에서 내로남불이 생기고, 결국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신뢰를 잃은 정당은 더이상 정당이 아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Q : 다시 야당이 됐다. 거대 야당의 스탠스는 어떻게 잡아야 하나.
A : “상대방을 적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존중하지 못해도 최소한 인정은 해야 한다.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화합해야 한다. 이렇게 이분법으로 가다간 사회까지 쪼개진다. 윤석열 대통령도 180석 야당에 ‘나 좀 살려주시오’ 이런 앓는 소리를 했어야 한다. ‘우리 그냥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식의 제스처와 협치는 다르다.”

Q : 윤 대통령에게 참고가 될만한 역대 대통령의 케이스를 들어달라.
A : “대통령의 직무의 필수과목은 국민통합이다. 안보와 경제, 사회, 문화를 아무리 잘해도 통합에 실패하면 그냥 ‘빵점’이 된다. 사실 의회를 가장 존중했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3김(三金)과 모든 사안을 합의해 풀었다. 다수당이 독식했던 국회의장, 상임위원장 등 배분 원칙이 생긴 것도 그때고, 남북기본합의서, 남북 유엔 동시가입 등 무수한 업적을 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 남녀, 나이, 지역 등을 안배한 인사로 탕평을 했다. 어쩌면 능력보다 통합이 더 우선시해야 할 가치다.”

Q : 윤석열 정부를 ‘검찰공화국’ 프레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A :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부를 ‘육법당’이라고 불렀다. 육사가 절반, 서울법대 검사가 절반이란 뜻이다. 이런 일색으로 가면 강대강의 독주가 되고 결국 독재로 가게 돼 있다. 87년 체제 이후 어느 한쪽이 독점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는데, 이번 정부들어 검찰이 정보까지 독점하는 검찰공화국이 될 우려가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문 전 의장은 야당으로부터 ‘소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동훈 법무장관에 대해 “나는 한 장관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2인자’ 소리를 듣는 순간 죽게 돼 있고, 조국 전 장관이 생각나 안타깝다”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죽는 게 사는 길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직 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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