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현대차 노조 '업무방해 사건' 합헌.. 10년 만에 결정

허경준 2022. 5. 26. 15: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합헌 의견 "경제활동 자유 침해 등 영향.. 단체행동권 제한 가능"
위헌 의견 "근로자 대등한 협상력 무너뜨려 단체행동권 형해화 위험"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6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 특근을 거부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10년 만에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6일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간부 A씨 등이 형법 314조 1항 중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일부 위헌 의견이 5명이었으나 위헌 결정 정족수(6명 이상)에 이르지 못해 합헌 결론이 나왔다.

A씨 등은 2010년 3월 비정규직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 휴일근로(특근)를 3차례 거부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 항소심에서 위헌 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2012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A씨 등은 해당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어긋나고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대해서 "구체적 사건에 있어 어떤 행위가 법적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지에 관해 의문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형법규범의 일반성과 추상성에 비춰 불가피한 것으로 그런 사정만으로 형법규범이 불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는 "심판대상조항이 대부분의 노동조합법상의 처벌조항보다 형이 더 중하다 하더라도, 이는 보호법익이나 죄질이 다르고 법정형을 정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고 대상 조항이 법정형의 하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침해 여부에 대해선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렸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단체행동권은 집단적 실력 행사로서 위력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단체행동권 행사라는 이유로 무조건 형사책임이나 민사책임이 면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용자의 재산권이나 직업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하고 거래 질서나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정한 단체행동권 행사 제한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심판 대상 조항은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해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대한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집단적 노무 제공 거부에 한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단순 파업 그 자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실상 근로자의 노무제공의무를 형벌 위협으로 강제하는 것이고, 노사관계에 있어 근로자 측의 대등한 협상력을 무너뜨려 단체행동권의 헌법상 보장을 형해화할 위험도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번 사건은 만 10년간 헌재에서 계류돼 헌재의 대표적인 장기 계류 사건으로 불렸다. 심지어 2016년 이후에는 헌재에서 심리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A씨 등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노동자들의 파업 등 쟁의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고 있었다. 합법적인 쟁의행위 요건을 갖추지 않는 한 대부분의 파업도 업무방해죄를 규정한 형법 314조 1항을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헌재는 법원행정처의 의견서까지 받았는데, 의견서에는 특근이 위력으로써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헌재가 한정위헌을 결정하면 안 된다는 내용만 들어가 있어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도 연관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께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파악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A씨 등 사건에 대한 헌재 재판관들의 논의 내용과 연구관 보고서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벌인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 사건을 청와대에 보고해 헌재를 압박하려 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