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다이어트 중입니까

2022. 5. 2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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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수은주가 30도를 넘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을 중시하는 문화가 유행하고 미디어가 시각적 자극을 중시하다 보니, 오늘날 다이어트는 미적인 목적으로 운동이나 약물 등을 통해 체중을 줄이는 행위를 주로 뜻한다.

다이어트가 원래부터 음식 혹은 체중과 연결된 개념은 아니었다.

이처럼 중요한 다이어트라는 지혜를 인간의 풍요로운 삶에 관심이 지극히 많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놓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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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수은주가 30도를 넘보기 시작했다. 이제 곧 태양의 쨍쨍함과 나무의 짙은 녹색이 힘껏 겨룰 여름이 된다. 성큼 다가오는 더위에 맞춰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짧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많은 사람이 두꺼운 겨울옷 뒤에 숨어 있던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다이어트의 때가 왔다.

여름용 근육을 만든다고 무거운 운동 기구를 들어 올리는 사람이 주위에 하나둘 늘어난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이유는 뻔하다. 삶의 방식을 바꾸면 익숙한 패턴이 주는 편안함과 위로 대신 불편함과 괴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다이어트란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식음료’ 혹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처방된 음식의 종류와 양’을 뜻한다. 그렇다면 다이어트는 나약한 인간이 건강을 지키고자 발전시킨 실천적 지혜인 셈이다. 하지만 몸을 중시하는 문화가 유행하고 미디어가 시각적 자극을 중시하다 보니, 오늘날 다이어트는 미적인 목적으로 운동이나 약물 등을 통해 체중을 줄이는 행위를 주로 뜻한다.

다이어트가 원래부터 음식 혹은 체중과 연결된 개념은 아니었다. 다이어트의 그리스어 어원 ‘diatia’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산다’는 뜻이다. 즉 다이어트란 건강이라는 선의 추구를 위해 몸만이 아니라, 생각과 입맛과 습관까지 의지적으로 가꾸는 종합적 행위이다. 재기발랄한 미국 철학자 리처드 왓슨의 말대로, 제대로 된 다이어트는 특정한 선을 향한 성찰과 추구를 포함하는 ‘삶의 철학’을 요구한다. 현대 주류 문화에 동화되지 않을 대안적 삶, 혹은 타인의 멋진 삶을 모방하고 싶은 욕구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변화’를 요구한다.

다이어트의 적은 ‘지방’이다. 고대 그리스어 용례에 따라 다이어트가 특정 선을 추구하는 의지적 삶이라면, 지방은 좋은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로도 비유될 수 있다. 왓슨은 철학자답게 지방을 “우리가 원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바에서 우리를 떨어트려 놓는 일상적 실재의 불가피성”이라고 어려운 말로 설명한다. 하지만 지방이라는 상징까지 쓰며 그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적절한 식사와 운동을 게을리하면 지방이 생기고 이를 내버려 두면 건강이 안 좋아지듯, 선하게 살려는 의지 없이 지내다 보면 삶에 지방이 끼고 이를 내버려 두면 개인의 삶이나 관계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다이어트라는 지혜를 인간의 풍요로운 삶에 관심이 지극히 많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놓칠 리 없다. 일례로 바울은 십자가를 싫어하는 사람을 다이어트를 못 하는 사람에 비유한다. “편한 길을 걷는 자들은 자신의 배를 신(神)으로 삼습니다. 트림이 그들의 찬양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먹는 생각뿐입니다.”(빌 3:19·메시지성경) 바울 말대로 지상의 삶보다 더 나은 삶에 무관심할 때, 우리 생각은 뭘 먹어서 나의 위를 기쁘게 할까, 아니면 뭘 덜 먹어 내 몸을 주류 사회의 미적 기준에 맞출까에 쏠린다.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다이어트는 단지 ‘덜’ 먹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을 추구하며 먹기이다. 신앙인이 따라야 할 모델은 소위 몸매가 좋은 ‘몸짱’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과 친구가 되고자 ‘먹기를 탐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눅 7:34) 심지어 그분은 우리의 다이어트, 즉 ‘생명의 빵’이 직접 되셨다.(요 6:48) 우리의 관심이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먹느냐로 옮겨질 때 다이어트는 복음이 된다. 현대인을 다이어트 강박에서 자유롭게 하는 다이어트 비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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