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경제적 자유와 혁신

입력 2022. 5. 26. 00:40 수정 2022. 5. 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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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겠다고 했다. ‘자유’를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자유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통령은 모두가 존중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억압과 통제가 심하고 시민적 권리·정치적 자유가 침해되는 사회에서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더불어 보편적 가치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는 시민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적 자유는 자본주의 경제 제도의 초석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교환과 배분, 거래 계약의 집행,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통해 발전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가 경제적 자유가 높아질 때 번영했고, 민주주의도 따라서 발전했다.

「 한국의 경제적 자유도 낮은 편
정부 규제 줄여 경제 자유 높이고
미흡한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서
혁신 촉진하면 경제 번영 이룰 것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은 『선택할 자유』에서 경제적 자유의 본질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소득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국가가 개인의 소비와 교환을 규제하고 세금을 늘리면 이 자유가 침해된다. 둘째는 소유한 물적·인적 자원을 자신의 가치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자유이다. 직업을 선택하거나 기업 활동을 하는데 제약이 없어야 한다. 셋째는 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로, 사유재산권을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 프리드먼은 정부가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가 늘어나면 경제가 번영한다고 했다.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활동 자유에 대한 국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 프레이저 연구소는 각국의 경제적 자유도를 정부 규모, 법 시스템과 재산권, 건전한 화폐, 대외 거래, 규제의 다섯 항목으로 나누어 평가한 후 종합 점수를 매겨서 해마다 발표한다. 최근 자료에서 한국의 경제적 자유도는 세계 47위였다. 정부 규모(99위)와 규제(70위) 부문에서 평가가 매우 낮았다. 이는 정부 소비지출이 많고 소득세 최고세율이 높고, 기업·노동시장·신용시장의 정부 규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입과 규제를 줄여 경제적 자유를 신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가 무조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국가는 적절한 정책과 제도로 시장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경쟁을 촉진하고 법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 인프라를 건설하여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국가는 경쟁에 뒤처진 사람과 취약 계층이 기초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을 높여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최대한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때 평등, 특히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부 개입이 경제적 자유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낮추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경제의 지속적 발전은 경제적 자유가 혁신(innovation)으로 이어질 때 가능하다.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제품, 새로운 생산 방법이 나타나 가치를 창출할 때 일어난다. 조지프 슘페터(J. Schumpeter)에 따르면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술을 파괴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며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혁신이 활발하려면 과학기술 혁신 역량과 기업 활력이 높아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의 『국제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연구개발 지출과 특허 출원 수 등의 과학기술 혁신 역량에서 세계 최상위(6위)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 활력에서는 평가가 세계 25위로 낮았다. 창업비용, 혁신 기업의 성장, 기업가적 위험 감수, 혁신 아이디어 수용 등의 세부 항목에서 순위가 상당히 낮았다. 미래를 위해 당장의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정신을 북돋아 주고 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과도한 규제를 없애 혁신 기업가와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별 자료를 보면, 경제적 자유와 혁신 사이에는 상당한 양의 관계가 성립한다.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북돋아서 혁신을 촉진하고, 혁신이 다시 더 많은 경제적 자유를 가져오는 ‘자유와 혁신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생태계(ecosystem)를 기업과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규제가 한시적으로 완화되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지고 경제적 자유가 신장됐다.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제도화되어 보건의료 전체의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자유와 혁신 모두에서 최강국인 스위스, 미국, 싱가포르를 한국경제의 본보기로 삼아서 미흡한 정책과 제도를 보완하여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 정보의 통제와 조작, 시민의 자유에 대한 구속이 많아졌다. 한국의 새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는 이 시점에서 자유의 가치를 전면에 등장시킨 것은 의미가 크다. 효율적인 시장, 적절한 정책, 올바른 제도를 결합하여 자유와 혁신이 넘치는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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