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풍계리 폭파' 결국 쇼였나.."다음 도발 메뉴는 핵실험"
닷새 간의 침묵. 그리고 엿새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택은 미사일 도발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방문(20~24일)이 끝난 직후인 25일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다시 꺼냈다. 북한은 그간 한·미 및 미·일 정상회담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상황을 관망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를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이웨이' 행보를 재개했다.
2017년 11월 이후 북한의 ICBM 도발은 올 3월에 이어 두번째인데,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는 처음이다. 여기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압박을 유지하는 대북 원칙론을 재확인하자, 노골적으로 선을 넘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을 가늠해보자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北 다음 도발은 핵실험?
이런 북한의 선 넘기는 이제 시작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 '도발 메뉴'는 핵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하루, 이틀 내에 핵실험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그 이후 시점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다른 장소에서 7차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한 핵 기폭장치 실험을 하는 것이 탐지됐다"고 밝혔다.
기폭장치는 핵물질, 운반체계(미사일)와 함께 핵무기를 구성하는 3대 요소 중 하나다. 북한은 높은 폭발력과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평안북도 구성시 용덕동 등에 위치한 고폭 실험장에서 실험을 계속해 왔다.
이처럼 착착 진행되는 7차 핵실험 준비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2018년 5월 '선제적 신뢰조치'라고 주장하며 북한이 진행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가 '폭파쇼'였음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풍계리 핵실험장이 더는 대규모 핵실험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지만, 북한이 복구 중인 3번 갱도는 최대 50kt 규모의 폭발력을 견딜 수 있다. 한국을 노린 전술핵(최대 20kt 미만) 규모의 실험은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한 및 방일을 통해 확장억제력 강화에 합의했는데, 김정은은 한국과 일본을 노린 전술핵 고도화에 미국이 어떤 방위 공약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인지 '간보기성'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든 떠난 직후로 택일한 北
25일 미국을 겨냥한 ICBM과 한국을 노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섞어 쏜 것도 한·미를 동시에 노리려는 의도다. 그러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에 머무는 기간은 피해 귀국길에 오른 이후, 그가 최종 기착지인 앤드류스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미사일 버튼을 눌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택일(擇日) 배경으로 우선 한반도 인근에 전개한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인한 부담을 꼽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으로 미국이 전반적인 대비태세를 격상시켰기 때문에 북한이 부담을 가졌을 것"이라며 "항공모함 전단이 역내로 진입했고 공개되지 않았지만 핵추진잠수함 같은 전략자산이 배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있을 때 움직이면 북한의 전략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에는 도발한 적이 없다.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직전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통화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직접적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윤 정부의 강경한 대북 접근법 때문에 고강도 도발을 했다는 식으로 안보 역풍 조성 의도다. 김태효 차장도 북한의 의도에 대해 "정부 출범 초기 단순히 북한이 해오던 핵·미사일 능력의 개량 과정 측면이 있다"면서도 "임박한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도 있다"고 말했다.
도발로 위기 고조, 북한 구습 회귀
이처럼 도발로 위기를 고조시키며 대미·대남 협상력을 높이는 건 북한이 지난 20∼30년간 북핵 협상 과정에서 반복해온 전술이다.
'도발→위기 고조→국면 전환→협상→합의 파기→도발 재개'의 악순환이다. 이번에는 위기 고조를 위한 '벼랑끝 전술'의 재료로 ICBM과 전술핵 실험 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정권은 향후 남북연락사무소 통신선 차단, 9·19 남북 군사 분야합의 파기와 동시에 핵실험, ICBM 시험발사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반도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에도 '마이웨이'
결국 코로나19 확산이라는 내부 위기도 김정은의 마이웨이를 막지는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이 한·미의 지원 제안은 뿌리친 채 자체적으로 방역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민들의 동요를 차단하고 방역 호전세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가 내부 결속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면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포함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지체 없이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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