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차 선후배 모인 '햄릿'..원로배우는 조연·단역

센세이션 일으킨 2016년 이해랑 100주년 기념작 재연..7월 13일 개막

신시컴퍼니가 제작하는 연극 ‘햄릿’의 출연 배우들과 연출가, 프로듀서가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제작발표회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아랫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손진책 정동환 김성녀 손숙 박정자 전무송 권성덕 박명성 길해연 김수현 박건형 유인촌 강필석 박지연 이호철 김명기 손봉숙. 신시컴퍼니 제공

지난 2016년 고 이해랑 선생 100주년을 기념해 평균연령 66세의 원로배우들만으로 이뤄진 ‘햄릿’이 공연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신시컴퍼니와 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햄릿’의 출연진은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그리고 개막 20여 일을 앞두고 권성덕 대신 합류한 한명구까지 9명. 배우들 외에 연출가 손진책과 무대디자이너 박동우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였다.

당시 ‘햄릿’은 원로배우들의 경로잔치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었다. 하지만 개막 이후 ‘배우의 예술’인 연극의 본질을 보여주는 원로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무대로 찬사를 받았었다.

다시는 성사될 수 없는 캐스팅으로 이뤄졌던 ‘햄릿’이 오는 7월 13일~8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돌아온다. 다만 재공연에는 2016년의 내로라하는 원로 배우들과 함께 강필석 박지연 박건형 김수현 김명기 이호철 등 현재 한국 공연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스타 배우들이 새롭게 가세했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박정자부터 2010년 뮤지컬 ‘맘마미아!’로 데뷔한 박지연까지 출연진 간 경력 차이는 무려 반세기에 가깝다. 원로 배우들은 6년 전과 달리 이번 공연에서 조연과 단역으로 물러나고, 젊은 배우들이 햄릿과 오필리어 등 주역을 맡았다.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햄릿’ 제작발표회에서 박정자(80)는 “배우는 무대 한구석에서 조명을 받지 않더라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숙명이다. 극 중 단역인 배우1을 맡았지만, 배역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이런 전무후무한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공연을 비롯해 그동안 여섯 번이나 ‘햄릿’을 연기한 유인촌(71)은 이번에 햄릿과 대척점에 있는 비정한 숙부 클로디어스 역으로 나선다. 유인촌은 “2016년 공연을 끝으로 ‘햄릿’이란 작품을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젊은 배우들과 함께 평생 연극 무대에 삶을 바쳐온 어른들이 모이는 의미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기쁘게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주인공 햄릿 역에는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해온 강필석(44)이 맡았다. 강필석은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무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또 출연진 중 막내로 오필리어 역을 맡은 박지연(34)은 “얼마 전 첫 연습을 박정자 선생님의 첫 마디로 시작했는데 그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감격스러워했다.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햄릿’의 재공연에 대해 “최근 한국 연극계에서 제대로 된 틀을 갖춘 작품이 드물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여기 있는 동료들이 서로 짐을 나눠 갖고, 격이 있는 연극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번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만들었다면 이번엔 전 배역에 맞게 다시 캐스팅했다”면서 “‘햄릿’을 가로지르는 기본 이미지는 ‘죽음’이다. 이번 공연을 ‘죽음 바라보기’의 측면에서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민간 단체로서 쉽지 않은 제작에 나선 신시 컴퍼니에 대한 감사 인사도 이어졌다. 배우 손숙은 “박명성 프로듀서가 제정신이 아니다. 2년 넘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생한 상황에서 제정신이면 이런 기획을 할 수 없다”면서 반어적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박명성 프로듀서는 “완성도 높은 대극장 연극이 실종되다시피 한 요즘, 선생님과 후배들의 손을 잡고 이런 연극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을 보탰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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