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교향곡으로 다가와 시로 남는 걸작 [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㉟

홍종선 2022. 5. 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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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이하 CJ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파도소리가 난다. 화면에 파도가 있든 없든 계속해서 파도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마치 감독 박찬욱이 빚어낸 교향곡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 가득 마스터 박찬욱의 지휘가 느껴지고, 극장을 나설 때면 마치 매혹적 선율의 ‘깐느 박 심포니’를 보고들은 듯한 감상에 가슴이 저리다.


그 파도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다로 표현되는 송서래(탕웨이 분)가 단단한 바위산 같은 장해준(박해일 분)에게로 달려와, 모래사장을 넘어 산까지 달려오는 송서래 바다를 장해준 바위산은 온몸으로 받아내, 커다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생성한다.


산까지 달려온 바다는 돌아갈 곳이 없고 거센 파도는 바위산을 모래로 무너뜨린다. 영혼의 밑바닥까지 부딪히는 장해준과 송서래의 감정 파고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고 어느 순간 인생을 덮칠 만큼의 풍랑과 해일이 된다. 그 중간에 서서 거센 파도에 옴팍 가슴을 적시노라면 이보다 깊게 파고드는 멜로를 본 적이 있던가 싶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감독 박찬욱은 지난 23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세계 최초로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 배급 CJENM)을 공개하기에 앞서, 하루 전 마련된 티타임에서 “말랑말랑한 소품”이라고 소개했지만 지나친 겸손이었다.


사건 중심으로 전개하지 않아도 감정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음을, 자극적 사건의 기계적 나열로 대형 기획영화를 제조하는 숱한 세계 영화인들의 눈앞에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카메라 워크와 조명, 무대미술과 효과, 음악과 음향의 정석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은 이를 두고 “기본을 지키려 했다”고 겸양하지만, 실제론 각 요소들에서 ‘영화의 정석’을 확인할 수 있다. ‘미장센이란 무엇인가’를 말이 아닌 작품으로 보여온 감독 박찬욱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마스터 박찬욱 ⓒ

각 요소들은 결코 튀지 않는다. 가시적으로 뽐내며 존재하지 않고 배우들에게 옷을 입히고 작품을 채운 공기에 DNA를 각인한다. 마치 여러 악기의 소리가 분명 존재하되 따로 들리지 않고 교향곡이라는 하나의 풍부하고도 아름다운 덩어리로 다가오듯 말이다. 그리고 그 DNA는 당연히 ‘감독 박찬욱 작품’이라는 워터마크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으로 내 영화인생이 완전해졌다”는 탕웨이, “박찬욱 감독, 그와 함께한 아티스트들이 제대로 만든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도 타보고 바이킹도 타며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박해일. 이 두 배우 역시 ‘깐느 박 심포니’의 중요한 악기다. 박해일이 제1바이올린이라면 탕웨이는 하프처럼 스며든다.


상영 다음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에게 물었다. 영화 상영 내내 교향곡이 들리는 듯했다, 혹시 미리 염두에 두신 연출일까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질문을 받고 떠올려 보자면, 말러 교향곡도 생각이 나고 브루크너 교향곡도 생각납니다. 두 사람이 큰 액션 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감정은 격렬하게 몰아치는 소용돌이가 있는 영화예요. 실내악에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교향곡(이 맞겠네요). 그런 스케일 말하는 건 아니고 다양한 악기들이 따로 소리 내지 않고 같이 풍부한 소리를 내는 측면에서 그러기를(영화가 교향곡으로 느껴지길) 바랍니다.”


흔히 영화를 각 분야 예술의 집합체인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헤어질 결심’은 다양한 악기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5부 2악장의 교향곡이다. 당연히 작곡가이자 지휘자는 마스터 박찬욱.


그들은 언제 서로가 같은 '종족'임을 알아봤을까. 형사 장해준 역의 배우 박해일과 살인사건 용의자 송서래 역의 탕웨이(왼쪽부터) ⓒ

박찬욱 감독은 실제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OST(영화 삽입곡) 중 하나로 쓰기도 했다. 말러가 마흔한 살에 만나 한눈에 반한 알마 쉰들러에게 바친 연예편지라 불리는,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의 선율이 서래와 해준의 비극적 멜로에 깃든다. 악보에 적힌 대로 “힘 있게” “격렬하게” “진정 진심을 담아” 마침내 폭발한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은 파도에 휩싸인다.


해준과 서래의 멜로는 연예편지지만 아다지에토, 아주 느리게 연주하는 4악장의 애상을 닮았다. 슬프지만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슬픔, 기쁘지만 기쁨을 드러내지 못하는 기쁨. 서래와 해준의 멜로는 “사랑해” 한 번 소리내 뱉지 못해도, 얼굴 보고 한 마디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는 사랑이다.


공자는 ‘시경’의 첫 번째 작품 ‘관저’에 대해 락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哀而不傷)이라 평했다. 즐거워하되 정도에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시란 무엇인가에,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언급이었지만 모든 예술에 해당될 터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무드가, 해준과 서래의 애닯은 사랑이 딱 그러하다.


인생을 뒤엎을 만큼의 사랑을 만나고도 짐짓 현재의 자리를 지킨다.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없이, 몸 한 번 섞지 않고도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고도 함께 있기조차 어렵지만 목을 놓아 통곡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사랑, 어른들을 위한 멜로, 박찬욱 감독이 보여주는 인간관계 그중에서 사랑은 바로 그런 풍광이어서 보는 우리의 심상도 가슴이 미어지되 값싼 눈물을 흘리지 않고 행복하되 소리 내 웃지 않는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 교향곡으로 다가와 시로 남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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