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요?" 깜짝 초청 전화..칸 단편경쟁 최초 韓애니 '각질'
“칸이요? 거기서도 애니메이션을 뽑나요?”
데뷔작 ‘각질’로 올해 칸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진출한 문수진(26) 감독이 배급사로부터 초청 연락을 받고 했다는 첫마디다. ‘각질’은 그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 타인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사회적 가면을 ‘각질’에 빗댔다. 단편 애니 ‘미용실’(2015) 등 개인적인 습작은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선보이는 건 ‘각질’이 처음이다.
칸 단편경쟁韓애니메이션 최초 진출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에 따르면 ‘각질’은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된 104개국 3507편 단편 중 단편 경쟁 부문 황금종려상을 겨룰 최종 후보 9편에 선정됐다. 이 부문에서 한국작품은 1998년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를 시작으로 꾸준히 출품되며 수상도 했지만 애니메이션이 진출한 건 처음이다. 24일 칸영화제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문 감독은 “지금도 현실감이 없다”면서 웃었다.
‘각질’에는 젊은 여성인 주인공의 본모습이 오히려 각질의 그림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6분여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친구들과 밝게 웃으며 대화하던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 허물을 벗듯 각질을 벗는다. 순정만화 그림체인 각질과 달리 본모습은 현실적인 그림체다. 바람 빠진 고무인형 같은 각질을 빨래하듯 빨았다가, 갑작스러운 친구의 호출에 덜 마른 각질을 입고 뛰쳐나가는 모습이 이어진다. 자주 입을수록 각질은 선명해지고, 본모습은 유령처럼 흐려져간다.
문 감독 스스로 “타인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자존감이 낮은 편인 데”서 아이디어가 출발했다.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을 내보이기 무서워서 다른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는 그는 “개인적인 상황은 안 좋은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밝다 보니 공감을 못 받고 괴리감이 커지면서 안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솔직한 자신을 드러냈을 때 타인이 어떻게 볼지, 마지막까지 그 생각을 놓지 못해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결국 각질이 대신 살아가게 된다. 겉보기엔 예전과 똑같은 주인공이지만 그 안에 많은 게 달라져 있고 거기서 오는 슬픔이 있다”면서다. “어떻게 보면 해도 안 되고, 안되니까 포기해버리고 사랑받지 못할 자신을 버리고 만들어진 자신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 -어떻게 지금 형태의 각질을 떠올렸나.
“주인공이 이걸 입었을 때 압박감을 느끼길 바랐다. 숨이 통하지 않고 땀 배출이 안 되는 환경에서 축축함, 더움, 답답함을 느끼길 바랐다. 장마철에 물이 들어간 장화처럼.”
Q : -각질과 본모습의 그림체가 다르다.
“일본 만화책을 봤을 때 귀엽고 예쁘지만 왜 이런 디자인이 나올까, 생각하면 동양의 미적 기준을 과장시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게 위화감 없이 아름답게 받아들여지는 게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 원래 그림체는 본모습의 현실적 그림체에 가깝다.”
Q : -담고자 한 메시지는.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나와 실제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거울앞에 서있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 과거도 현재도, 외부도 내부에서도 미래에도 인지되지 못하는 내 존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 죽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말을 그렇게 잡았다. 그런 결말과 달리 누군가 용기 있게 자기가 외면해오던 진짜 모습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본다면 사라지지 않는 길을 택할 수 있지 않을까.”
2년 넘게 ‘각질’을 만드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해서 표현했다는 데 해소감과 배출감을 느꼈다는 문 감독이다. 칸영화제에 초청되며 성취감도 얻었다. “애니메이션 기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각질’은 다음달 크로아티아에서 열리는 ‘애니마페스트 자그레브’,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초청됐다. “장편도 해보고 싶지만, 아직 무서운 게 많아요.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계속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진 스트레스를 흘려보내는 배출구로 작품을 해왔는데 직업이 되면 어떨지 생각을 전혀 못 해봤어요. ‘각질’은 완성한 것만으로 됐다고 생각했는데 더 좋은 결과를 받으니까. 우선, 칸영화제를 최대한 행복하게 즐기고 싶습니다.”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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