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km 뛴 봉고가 2100만원..자영업, 경유 이어 중고차 비명

백민정 2022. 5. 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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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에 차량들이 빽빽하게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지금 중고차 가격이 거꾸로 가고 있어요.”

서울 강서구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중고차업체를 운영하는 심모 대표는 2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은 연식이 1~3년 지난 중고차가 신차 출고가와 맞먹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연식이 1년만 지나도 중형차급 중고차 가격은 500만~700만원가량 떨어졌다”며 “요즘엔 중고차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르니까 손님 발길도 뚝 끊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류비 상승 등으로 자동차 가격이 계속 오르는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이 중고차 시장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1~3년 중고차가 신차 가격 맞먹어”


올해 들어 신차를 계약하면 출고 대기기간이 최장 1년6개월 걸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신차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고차 수요가 급증했고, 중고차 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통상 매년 내구연한이 떨어질수록 중고차 가격도 큰 폭으로 내려가는데 올해는 떨어지기는커녕 전년과 비슷하거나 신차 가격에 맞먹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 대표는 “중고차 시세는 연식 1~3년차 때 차량 감가 폭이 가장 크고, 3년이 지나면 출고가의 절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며 “하지만 지금은 주행거리가 1만5000㎞ 안팎이면 쏘렌토·스포티지 같은 인기 차종은 연식 1~3년 된 중고차가 올해 신차 출고가 수준으로 팔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에서 2020년식 현대차 투싼(가솔린·인스퍼레이션 트림)은 지난달 평균 3062만원에 거래됐다. 출고한지 2년 지났는데도 신차 출고가(3155만원)와 93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2019년식 현대차 싼타페(가솔린·인스퍼레이션 트림)는 지난해 평균 최저가가 3099만원이었는데, 지난달엔 3167만원에 거래됐다. 작년보다 70만원가량 더 비싸게 팔린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중고차 딜러는 “신차를 계약해 놓고 출고가 6개월, 1년 이상 밀리다 보니 주행거리·옵션이 괜찮으면 신차 출고가보다 값이 비싼 중고차를 사가는 손님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특히 자영업자 수요가 많은 포터Ⅱ, 봉고Ⅲ 1t 화물차가 그렇다. 이 딜러는 “봉고Ⅲ 1t 하이탑차 신차 가격이 1990만원 정도인데 얼마 전 8만㎞를 달린 2018년식 중고차가 2100만원에 팔렸다”면서 “자영업자에겐 소형 트럭이 필수다 보니 웃돈을 주고 사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아 봉고Ⅲ는 신차 출고 대기기간이 10개월 이상이다.


쏘렌토 하이브리드, EV6는 대기 18개월


현재 신차 출고 대기가 긴 차종은 기아 쏘렌토·스포티지 하이브리드 모델 등으로 18개월 정도 걸린다. 기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필요한 반도체 수가 많아 대기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입차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 수입차 관계자도 “유럽 쪽은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커서 국내 신차 출시 일정이 계속 밀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수입차의 경우 중고차가 작년보다 100만~200만원씩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올 초부터 중고차 가격이 오르자 중고차 거래량도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달 거래량은 19만5000여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전달보다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차업계에선 과도한 카플레이션에 저항 심리가 생기며 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본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엔 경윳값까지 올라 특히 자영업자의 고충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취·등록세 감면을 검토하거나 자동차 제조사도 생계형 차종에 대해선 생산을 우선순위로 두는 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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