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가 뜬다]③ '내 몸'에 대한 이해, 그 황홀한 체험
‘만 50세’ ‘공대 교수’ ‘남자’…. 발레를 배운 지 어느덧 3년차인 세종대 전자정보통신공학과 배진수 교수의 얘기다. 5년 전 발레 공연을 처음 관람한 뒤 발레에 빠져, 직접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발레에 관한 책까지 썼다. 그 역시도 처음엔 ‘발레 배우는 일이 높은 벽처럼 보였다’고 한다. 날씬하고 유연해야 배울 수 있단 생각 탓이었다. 운동과 담쌓고 지내는 우리 모두가 실은 같은 걱정에 발레 배우길 주저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발레에 도전해볼 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력을 버티며, 건강하고 아름답게 서자
배진수 교수는 저서 ‘물리의 쁠리에’에서 발레를 ‘근력으로 중력을 이겨내는 일’이라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살짝 기운 채 서 있다. 신체 압력은 발바닥의 아치가 받아낸다. 아치와 몸의 무게중심이 일직선을 이뤄야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 없이도 편히 설 수 있다. 그런데 무게중심은 배꼽 부근 몸통 한가운데에 있다. 아치보다 살짝 뒤쪽이다. 몸통을 앞으로 기울여 줘야 무게중심이 비로소 아치와 일직선 상에 선다.
발레의 ‘풀업(pull up)’ 자세는 기운 몸을 바로 서게 한다. 발바닥 아치로 몸의 압력을 받아내면서, 몸의 무게 중심을 뒤쪽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누군가 위에서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등과 허리를 곧게 펴야 한다. 배진수 교수는 “척추는 몸의 무게를 감당하고 보행의 충격을 완화하려 S자로 구부러져 있지만, 풀업 자세를 할 땐 1자에 가깝게 펴진다”며 “아무런 압력을 받지 않은 척추 본연의 모습으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셈이니, 발레는 골격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발레는 이외에도 나쁜 자세 탓에 무너진 신체 균형을 바로잡는 데 이롭다. 배진수 교수는 “발레 동작을 하려면 몸이 바르게 정렬돼야 한다”며 “그 덕에 뼈와 근육의 불균형에서 오는 통증을 개선하고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발레에 빠지면 ‘나’에게도 몰입하게 돼
발레는 운동이자 예술이며 ‘나에게 몰입’하는 경험이다.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현실에 대한 걱정은 잊은 채 나의 움직임에만 몰입할 수 있다. 발레 스튜디오 릴드당스(lilededanse, 프랑스어로 ‘춤의 섬’)의 김유경 원장은 “발레를 배울 땐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디에 근육이 더 필요한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며 “발레를 배우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다듬어나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진지한 여가로서의 성인 발레 참여경험과 삶의 질(허진무 등)’에서도 발레를 배우며 신체가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발레 하려고 산다’는 취미 발레인도 많다. ‘성인발레학습자의 경험실태 연구(유은혜)’에서 발레를 배우는 성인 132명에게 설문조사 한 결과, 절반 이상인 88명(66.7%)이 ‘발레가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고 답했다. 몰두할 것이 생기니 일상도 덩달아 즐거워진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이 전문가처럼 몰두하는 경우가 발레에선 꽤 흔하다. 무용 비전공자도 작품을 연습해 콩쿠르에 도전하곤 한다. 한국체육대학 대학원 스포츠심리학전공 윤영길 교수는 “발레든 리듬체조든 모든 운동은 실력이 늘수록 이전엔 몰랐던 면모가 새로 보인다”며 “취미로 시작하더라도 배우다 보면 실력이 생기고, 실력이 늘면 또 배우고 싶은 게 생겨 아마추어도 전문가처럼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발레는 특히 더 그렇다. 이전에 안 됐던 고난이도 자세를 성공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 굉장해서다.
◇공간과 타인에 대한 이해까지 높여
발레를 통해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발레에 빠져드는 이유다. 김유경 원장은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유연해질 뿐 아니라 음악과 공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발레를 배우면 공간 이해력이 느는 것은 ‘고유 수용성 감각’ 덕분이다. ‘제6의 감각’이라고도 하는 고유 수용성 감각은 개인이 자신의 신체 자세와 움직임을 스스로 인지하는 감각이다. 무용수가 가장 많이 활용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춤을 출 땐 동작을 머리로 계산할 수 없다. 훈련을 통해 습득한 ‘내 몸이 이때쯤 이렇게 움직였지’ 하는 느낌을 따라야 한다. 이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자신의 몸이 인접한 물체까지도 자신의 몸으로 인식할 수 있다. 좁은 주차 공간에 차를 능숙하게 주차하는 사람, 공을 현란하게 제어하는 축구선수는 각각 ‘차’와 ‘공’을 자기 몸의 연장으로 인식한다. 나와 인접한 다른 사물까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니, 공간 속에서 사물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하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고유 수용성 감각은 내 몸을 이용한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도 이롭다. 이 감각이 발달하면 타인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움직임의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그것이 내 움직임이라 생각하면, 지휘자가 느끼고 있을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다. 발레를 비롯한 무용은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일상적 대화에서도 동작 언어는 자주 사용된다. 움직임을 모방하는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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