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음악·사진으로..문화로 복음전하는 마 목사님의 과거는

유경진 2022. 5. 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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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새롬문화센터장 마지원 목사
평범한 주부→희귀 난치병 투병·극복→문화사역자로 변신
"예수님의 사랑, 문화 통해 전달하고파"
마지원 목사가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새롬문화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마 목사는 음악과 커피, 사진 등 문화를 복음의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오거리 인근에 있는 새롬문화센터(센터장 마지원 목사·61). 건물 2층에 들어서자 진한 커피향이 가득했다. 오는 8월 예정된 커피 원두 대회 ‘마스터 오브 로스터’를 앞두고 봉사자들이 다양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다.

새롬문화센터는 커피·음악·사진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커피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겐 커피 교육 세미나를 열어주고, 사진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사진 촬영 기법 교육을 제공한다. 스튜디오와 조명 등을 빌려주기도 한다. 센터에서 각종 행사가 열릴 때마다 수백 명의 청년들이 찾는 곳이다. 센터는 마 목사가 ‘지역 주민들과 문화 생활이 여의치 않은 청년들이 질 높은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자’는 사명을 품고 10년 전 만든 공간이다.

오는 8월 열리는 커피원두대회 '마스터 오브 로스터'를 앞두고 새롬문화센터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참가 예정자들.

쉰살 넘어 목회자 직함을 가진 마 목사는 원래 목회에 뜻이 없었다. 대학에서 교회음악을 전공하고 공무원 남편과 결혼해 교회 봉사와 선교단 활동을 하며 한 아이의 엄마로서 평온한 인생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를 출산한 1991년을 기점으로 그의 인생은 180도 틀어졌다.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은 물집으로 뒤덮였다.

‘수포성 표피박리증.’ 희귀 유전성 질환으로 살짝 긁히기만 해도 피부에 물집이 생기는 병이다.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 병은 마 목사를 9년이나 따라다녔다. 1993년 의사는 그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 치료법도 없었고 약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물 때문에 온몸에 거즈를 두르고 있었고, 체중은 33㎏까지 줄어 마른 장작 같았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뿐이었다. 기도원을 다니며 오롯이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몸에 난 물집이 마르기 시작했다. 통증은 여전히 심했지만 병세는 호전됐다. 그때가 1995년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갈 2:20) 이 성경구절과 함께 ‘목회’라는 새로운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2년 뒤 그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신학생 시절 사역의 방향성을 놓고 기도하던 그는 문화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 2012년 목사 안수와 동시에 새롬교회를 개척했다. ‘샌드위치 콘서트(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공연관람)’를 시작으로 문화사역을 확장해 나갔다. 10년간 ‘빨간우체통 치유 콘서트’ ‘인디밴드 버스킹 콘서트’ ‘마다가스카르 사진전’ ‘월드영바리스타챔피언십(WYBC)’ ‘마스터 오브 로스터’ ‘마스터 오브 카페’ ‘열린예배’ 같은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진행했다. 타깃은 지역 주민과 청년층이었다.

버스킹 콘서트는 공연장소를 찾지 못한 인디밴드를 위해 장소와 각종 장비, 홍보, 포스터·티켓까지 모두 제공했다. 공연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줬다. 마다가스카르 사진전은 여행 사진 작가를 섭외해 여행기와 사진을 함께 녹여낸 특별한 전시전이었다.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하지 못한 이들에게 간접적으로 현지인의 삶을 공유했다.

새롬문화센터에서 2016년에 진행한 인디밴드 공연 프로젝트 '버스킹 콘서트'의 홍보 포스터. 새롬문화센터 제공

이런 공연과 행사 등 센터 사역의 목적은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센터 방문자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하나님을 만난다. 바리스타를 꿈꾸던 한 40대 여성은 커피교육을 받기 위해 새롬문화센터를 찾았다. 비신자였던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교육을 받던 중 돌연 암판정을 받았다. 그는 투병 중 마 목사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로 하나님을 영접한 뒤 천국으로 떠났다.

새롬문화센터의 선교 전략은 교회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마 목사는 “주변 지역(신촌)은 이미 이단과 신천지의 놀이터가 됐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전도지를 이용한 전도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직접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센터가 주는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복음의 진입장벽을 낮추자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롬 12:2) 10년 가까운 투병을 계기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기로 결심한 마 목사가 품은 말씀이다. “우리는 그저 먼지 같은 존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 삶을 얻었습니다. 그 사랑을 문화를 통해 전하고 싶어요.” 그는 오늘도 일상에서 만든 문화를 복음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유경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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